결혼한지 10여년. 그녀도 많이 지쳤을 것이다.
결혼 초반 우리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뒤돌아보면 우리 두사람은 모두 확고한 자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공간과 서로를 사랑하는 공통된 공간, 도합 세공간으로 구성된 결혼생활을 시작했었고, 아이가 태어나 분쟁을 일으키며 그 공통된 공간을 집어삼키는 일이 그리 달갑지 않게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공간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할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 커플이 서로를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는 상황에 잠시라도 빠지게 되는 날이 왔을때, 아이가 없다는 점은 순간적인 공통 공간의 부재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단절을 야기할 수도 있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 같다.
결혼 초기 우표를 붙이던 편지가 지금에는 컴퓨터 앞에서 뚝딱 보내는 이메일로 변해버렸다. 세상은 빠른 속도록 변해가고 있고, 이는 우리 부부가 각자 속한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문제였다. 각자 일 하는 곳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는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미덕이고, 우리가 함께하는 공통의 공간에서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 미덕인 것이다.
우리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혼동해 버렸다. 사랑의 모양과 방식이 변해갈 기회를 주지 못한 채, 둘 모두의 사랑이 변해버렸다. 각자의 공간이 공통된 공간을 잠식해 버렸다. 누가 먼저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먼저 회복을 하려는 시도를 안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어느날은 이런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회복을 할 필요는 있을까?"
그녀는 오늘 아침 먼저 출근하면서 식탁위에 자신의 서명이 담긴 이혼서류 봉투를 놓고 나갔다. 무심결에 그 서류와 그 서류를 고정시켜놓던 카메라를 서류가방에 쓸어넣고 나왔다.
거래처를 들르러 회사를 조금 일찍 나섰다. 서류가방에는 거래처에게 넘겨줄 서류 한뭉치와 그녀가 건내준 이혼 서류가 나란히 들어있었다. 한쪽 구석엔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모양으로 작은 카메라가 자리를 잡고 있다.
바쁜 발걸음으로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갈 무렵 의외의 따뜻함을 느꼈다. 제법 쌀쌀했던 아침에 챙겨입고 나온 외투를 한손에 걸치고 옷매무새를 만지다가 공원을 빙 둘러보았다. 늘 거래처를 가기 위하여 자주 지나던 곳이지만, 나는 그제서야 주변에서 봄이 왔을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먼 거리에서 한손에는 외투를 한손에는 서류가방을 든, 공원 한가운데 서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내 입에서는 작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가방을 뒤적거리며 카메라를 꺼냈다.
그냥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느낌을. 변함없는 이 계절을.
거래처를 지나 현상소에 들러서 현상을 부탁했다.
아직은 내 서류가방에 그녀가 서명한 서류 봉투가 들어 있고,
현상한 사진을 찾아 봉투에 동봉한 다음 다시 식탁위에 올려놓게 될, 이혼서류에 내가 서명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저,
나는 그 사진 속의 이야기를 찬찬히 그녀에게 해주고 싶다.
- just a fiction from this pic. (in Frankfurt)
.







우울한 얘기인 줄 알았는데,
끝을 보니 새 봄의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은행(?)앞 공원에서 어슬렁 거리는데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가 저벅저벅 지나가다가 갑자기 외투를 벗고는 서류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서 내가 찍고 있는 나무앞에 성큼오더니 석장정도 찍고 다시 저벅저벅 사라지더라고.
괜히 멋있었다 ㅎㅎ
봄되면 다~~~~~ 나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