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쿠프에서 자코판(Zakopane)은 그리 먼거리는 아니었다. 삼십분 남짓 지나서부터 자코판의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휴양지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눈이와서 그런지 한시간 정도 걸린다는 버스가 조금 더걸려서 자코판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눈, 정말 많이 온다! 으하하하하 이렇게 눈 많이 내리는 거 처음 보았다.

짐들고 잠시동안 미친듯이 뛰어다니다가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 들어갔다. 내가 타트라 산맥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고 했지만 안내하는 사람은 바깥의 내리는 눈을 가리키기만 했다. 그래도 뭐 날씨가 좋아지지 않겠어요?? 라는 한마디를 던진다. 조금 고민했다. 방을 일단 잡고 그래도 타트라 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를 탈까 하다가 일단 그냥 짐을 바리바리들고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지도에서는 여러 케이블카가 있었는데 가장 좋은 곳을 추천받아서 무작정 택시를 타고 갔다.


자, 어디 한번 올라가보자. 날씨야 천천히 좋아지길 한번 기다려 보지 뭐. 윗쪽에 좀 쉬는데가 있겠지. 오홍 산위에서 밥도 먹어야지?? 어라 옆사람이 스키를 들고타네??




눈의 무게에 추욱 쳐진 침엽수림을 하나하나 작아지더니 멀어져만 갔다. 아. 여기 올라갈때 비록 산맥의 전망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분 최고였다. 펑펑내리는 눈과 아득해진 침엽수림 말이다. 정말 이 케이블카는 끊임없이 올라가는 듯했다. 중간에 내려서 또 다른 케이블카로 갈아탔다.




으하하하. 케이블카에서 나와보니 전방 2미터 앞도 안보였다. 그리고 내가 탄 케이블카는 산위의 어느 마을 내지는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닌, 보드나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내가 그렇게 관광용으로 추천해달라고 했건만. 내가 올라간 곳이 좌측의 Kasprowy Wierch였다. 앞이 아무것도 안보여서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돌아다닐 수가 없는 곳이었다. 돌아다니다간 눈이 펑펑 오는 천연슬로프에서 케이블카 타던곳으로 슬라이딩할 참이다. 샤샤샥-

암튼 나는 아무것도 못보고 내려왔다. 흑. 산 정상의 매점에서 아래의 엽서를 한장 구입했다. 엽서를 쓸 요량으로 우표까지 붙였다. 아래가 실제 날씨 맑은 날에 내가 그곳에서 볼수 있었던 view임. 아! 아쉽.




타고 올라온 케이블카. 저거 타고 다시 내려가도 될까? 덜덜덜.




내려오며, 으다다다 연사로 정상의 아쉬움을 달랬다. 옆의 영국에서 온 일행 셋이 첨에 소리에 놀라더니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sorry." 씨익 웃었다. ^_____^;



자, 내려왔다.. 그래도 이렇게 신나는 눈꽃들을 본게 어디야. 아무튼 펑펑 내리는 눈에 질퍽질퍽 거리며 온 몸이 젖어왔지만 신나게 걸어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갈까 하다가 그냥 국경을 넘어서 슬로바키아의 포프라드로 가기로 결정했다. 결국 크라쿠프 민박주인이 적어준 음식들을 못먹어봤다. 흑.

국경을 넘으려면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한 40분 정도 Lysa Polana로 가서 도보로 건넌다음 다시 그곳에서 버스로 포프라드까지 한시간 가량 가야했다. 사람들이 말이 안통해서 물어보는데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버스를 탔고, 버스는 산길을 내달렸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깊은 산중에 슬쩍슬쩍 스치는 작은 마을들이 참 멋져보였다. 순간 내려버릴까??하다가 방을 구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참았다. 내가 탔던 버스가 그날의 마지막 버스였다. ^.^;

자, "리사 뽈라냐~"를 버스운전자에게 외쳐댔던 나는 버스운전자가 내리라고 이야기해준 곳에 내렸더니 언듯 둘러보면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첩첩산중 산길 한가운데 였다. 뭐지? 버스도 마지막이고 이거 내가 잘못 온거면 오늘 산길에서 비명횡사하는거 아냐??;;;;;;;;

두리번두리번 조금 걸어내려가니 그제서야 낮은 건물의 국경관리소가 나온다. 얏호! 살았다!
눈은 이미 멈춰있었다.



출입국 심사가 어느 버스의 단체손님으로 늦어졌다. 오래 기다리게 하는게 미안했는지 그 경찰 제복같은 것을 입고있던 착해보이는 아저씨가 '쏘리, 웨잇'을 반복했다. 돌아보니 그 버스는 한 무리의 동양인을 태우고 있었고, 그중 한사람이 걸어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 이 첩첩산중에서 혹시나 한국인을 만나면 반갑겠다.. 싶어서,
- "혹시 한국인이세요?"라고 반갑게 말을 건네니
- (무척 경계를 한다.)"네, 무슨일이시죠?!" - 아뿔싸. 무슨일이시죠무슨일이시죠무슨일이시죠?????
- "아닙니다"
하고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 버스는 여권심사를 마치고 유유히 내 옆을 미끄러져 갔다. 안에서는 누가 이런 곳을 걸어서 건너?라는 듯 잔뜩 짐을 든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쑥덕거린다. 쳇, 한국사람들 머 이래. 인사를 용건으로 되묻다니, 그것도 기분 나쁜 어투로 말이다. 누가 태워달랠까봐??

생각해 보니 유럽에서 이렇게 걸어서 국경을 건넌적이 없었다. 비록 도장은 자동차 모양의 도장을 받았으나 걸어서 국경을 건너는 기분은 꽤나 삼삼하게 좋았다. 폴란드 돈을 모두 슬로바키아 돈으로 환전하고 길을 나섰다. 어익후 우표까지 붙인 폴란드 엽서는 기념품이 되어 버렸군~




작은 개천을 돌아 내려오니 그곳에 버스한대가 서있었다. 무조건 '뽀쁘라드'라고 외치니 타란다. 짐을 놓고 나왔다. 보아하니 조금 있다가 출발할 듯 싶어서 사진기를 가지고 나왔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내생에 다시는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첩첩산중에는 와볼일이 없을 것 같았다. 눈이 멈추니, 눈이 너무! 시원해졌다.






자, 이제 포프라드로 가자! 버스는 하얀색이 점점 적어지는 시골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해가 지고 나서야 포프라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에 한 저녁 7시쯤 되니 길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책에서는 이곳저곳이 우범지대;;라고 했다. 그나마 괜찮다던 옛날 독일식 건물이 늘어선 곳에서 호텔을 찾아서 하루 묵었다.




호텔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닭가슴살 요리를 추천해 주었는데 음! 완전 맛났다. (메뉴 두번째. 읽어보시라! 으하하)




이곳도 길가에 다니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산책도 할겸 카메라를 들쳐메고 나왔으나 사람도 없고 특별히 눈이 즐거운 곳이 없어서 멀리 보이는 편의점을 들러서 간단히 장을 보고 들어왔다. 들어오는 길에 열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 둘이 담배를 빌려달라고 말을 걸어와 깜짝 놀랐다.
짐을 들고 너무 오래 걸어다녔나 보다. 늘어지게 잤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난후 호텔의 뒷마당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비수기라 아직 깔끔하게 정리가 안되어 있지만 그래도 나름 귀엽게 꾸며져 있었다.




머리속에 동화가 천개 이상 들어가 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




자, 이제 기차역에 가서 Zillina로 가는 기차를 타고, 사촌형을 만나러 가자!
호텔에서 콜해서 올걸, 길거리에서 택시가 없어서 결국 걸어나갔다.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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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짱아 2007/08/22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오빠 여행기 사진들 중 개인적으로 이 편이 최고같아!
    내가 사실 설경사진을 아쥬 좋아해 :)
    +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인사에 야박하긴해.

    • Favicon of http://www.henbros.com BlogIcon minchul 2007/08/22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으흐흐 눈이 안내려서 타트라 설원의 view를 만끽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나도 눈 많이 내리니까 좋더라.

  2. 짱아 2007/08/22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모티콘이 생겼어. 신기하네 ㅋ)





여행관련 글이 읽기에 많이;; 긴 것 같아서 짧게 쓰려고 했는데, 카즈메르 지역에 관련된 내용은 길어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지구가 있었던 이곳에서 찍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screen shot과 내가 찍은 사진으로 글을 남겨보려한다. 이곳은 단 하루를 돌아보았지만, 동유럽에서 다른 분쟁이 있었던 지역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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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서 맛나게 차려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사진기와 책을 가지고 나섰다. 이 책은 관련 역사에 관한 시간 순서대로의 설명과 카즈메르 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루트로 구성된 책이었다. 그중 나는 실제 이곳에 남겨진 유대인 지구의 유적들을 돌아다니는 루트3번과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를 돌아보는 루트4번을 중심으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예전에 그 영화를 보았지만 그저 나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역사적인 슬픈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는 것이었고, 이러한 슬픈 사건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으나 사실 실제로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배경이 폴란드 인지도 몰랐었고 그 안에서 순차적으로 벌어졌던 사건의 순서도 사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밖의 것이었다. 전날에 쉰들러 리스트를 다시 본 후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순서대로의 사건에 대하여 읽어 내려간 다음 실제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돌아보았다. 그 영화속의 울부짖음이 마치 70년전의 그들의 울부짖음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을때 때때로 멍해져 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어찌되었건 전쟁이라는 것의 참혹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스필버그의 힘을 빌어 전세계에 publish할 수 있었던 유대인들이 힘이 부러웠고, 우리나라도 역량있는 감독들을 통해서 우리의 힘들었던 20세기초 역사를 세상으로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그러게, 전쟁은 참 슬픈 것이다.




(난 이렇게 깔끔하게 읽기 좋게 편집된 책이 좋다. 책에도 인터페이스가 숨어있다는 사실.)




일단 게토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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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 (Ghetto)
-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역사적으로는 1179년 제3회 라테라노공의회에서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교도와의 교류를 금지한 데서 발단하였다. 1280년 모로코에서 회교도들이 유대인을 분리된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게토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4세기에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자 유대교도에 대한 차별정책은 더욱 심해져 일반적으로 유대인 거주지역은 그리스도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게 되었다. 게토라는 말은 이탈리어이며 어원(語源)은 히브리어 ‘절연장(絶緣狀)’을 뜻하는 ‘get’에 유래한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게토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다른 지역과 분리되어 있었다. 또 그 내부사회는 유대인의 공동체로서 어느 정도의 자치가 허용되었으나, 시민권은 허용되지않았다.

중부 유럽에서는 특히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체코의 프라하 등지의 유대인 거주지역이 전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서 ‘게토’라는 말은 당시까지는 사용되지 않고, 1516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설치된 유대인 거주지역에 처음으로 사용되고 1555년 로마에 게토가 설치된 후 일반화되었다. 18세기 말 이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유대교도 해방과 더불어 이 차별주의는 붕괴되었으나, 러시아·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년 이후에는 나치스 독일이 폴란드 등 그들의 점령지 곳곳에 게토를 설치하고 유대인들을 강제로 수용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바르샤바의 게토는 유명하다. 나치스의 게토는 중세의 게토를 부활시킨 것처럼 보였으나, 인종론(人種論:안티세미티즘)에서 발상한 것이어서, 중세의 게토와는 다르다. 이 유대인 거주지역은 보통 벽이 둘러지고 그 바깥 지역으로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통행이 금지되었으며, 외출할 때는 특정한 모자 또는 두건을 쓰고 윗저고리에는 황색의 표지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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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쪽에 오래된 Synagogue(유대인 교회)가 있는 이곳 광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루트를 따라 걸어갔다. 이 Synagogue의 뒷편에는 많은 무덤이 있었고, 벽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벽에 붙여놓은 동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65,000명의 학살된 유대인을 기리는 비문이 있었다.



이 광장은 영화 내에서 필수 근로자를 뽑기 휘하여 유대인들을 줄세워놓고 근로허가증을 발급하던 광장으로 사용된다. 이곳에서 근로 허가증을 받지못한 유대인들은 트럭에 태워져서 어디론가로 끌려간다. 슈탠(쉰들러의 회계사)의 유대인들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루트를 따라 몇군데를 지났고, 전날 보았던 장면중 인상깊었던 장면중의 하나를 촬영한 장소에 이르렀다. Ghetto Liquidation 중인 어느 건물이었는데, 이곳에서 아직 꼬마였던 카포가 자신의 친구 어머니를 숨겨서 살려주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 Ghetto Liquidation : 유대인 지구의 사람들을 플라초프 수용소로 옮겼던 사건을 일컬음. (1943.3.13)
* 카포 : 일종의 독일군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유대인의 자치경찰








코너를 돌자마자, 영화초반 쉰들러가 자신의 회계사 슈텐을 처음으로 찾아가던 건물이 보였다.







바로 비스와강을 건넜다. 영화에서 촬영된 다리는 아니지만, 실제 사진속의 다리를 건너서 1941.3.20일까지 유대인들은 모두 Ghetto 지역으로 이주된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과거 Ghetto 지구였던 곳이 나왔다. 사진에 보이는 길을 가로막으며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입구가 설치되었고, 이 구역의 사방을 둘러싸는 벽이 설치되었다. Getto입구 첫번재.






과거 jewish counsel이었던 건물. 첫번째 Ghetto입구 바로 우측에 있다.




우측편을 따라 낮은 언덕을 물어물어 올라갔다. 물어물어 올라간 공원은 전날의 비로 질척거렸고 멀리 지금은 아무도 드나들것 같지 않은 작은 교회예배당이 언덕을 내려다 보면서 서있었다. 언덕끝을 돌아들어가 옆의 흉칙해 보이는 둥그런 건물 뒷편으로 오스카 쉰들어가 Gthetto liquidation 당시 언덕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장면과 동일한 view를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유대인 Ghetto지역이 한눈에 보인다. 쉰들러는 그곳에서 빨간 옷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이 공간은 마치 폐가 처럼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공간 같았다. 이 공간과, 희뿌연 안개와, 그들의 역사를 써내려간 책자와, 이를 실감나게 그려낸 영화 모두가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다시 언덕을 돌아내려왔다. 가슴아픈 곳을 지났다. 저 철창 너머의 안쪽의 공간에서 여러 단계에 거쳐 병들고 나이든 유대인들을 집합시켜서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플라초프 수용소로 모두 이동했던 Ghetto liquidation이 일어나기도 전 일들이다. 저곳에 모여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동일한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낡은 아파트였다.







이곳이 유대인 Ghetto내에 있던 병원이다. 영화에서는 Liquidation때 환자들이 독일군에게 비참한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직접 독약을 먹였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곳.



이곳은 게토의 다른입구에 위치한 유대인 격리병원 자리.




Bohaterow Getta Square. 유대인 지구의 또다른 입구에 있는 광장에는 덩그라니 빈 의자가 놓여있는 전시물이 있었다. 근처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미 오래 되어버려서인지, 혹은 다른 나라 사람의 역사여서 인지(세계2차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폴란드의 유대인은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 그저 그들의 삶의 한 공간인 이곳은, 지나치는 이곳 폴란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가끔씩 폴란드 사람으로 안 보이는 고등학생 정도의 관광객 무리들이 까르르 대며 지나갔다. 처한 현실은 다른 것인데, 난 왜 자꾸만 저 의자에 시선이 가는지 잘 모르겠다.






이곳을 벗어나, 쉰들러가 공장을 만든 곳을 가보려고 했으나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곳을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실제 이 공장은 현재 다른 공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Ghetto의 세번째 입구를 지났다. 이곳은 플라초프 수용소로 가는 길목이다.




게토를 나오면서 그곳을 둘러싸고 있었던 Ghetto wall의 남아있는 조각을 보러갔다. 이곳은 누군가가 끊임없이 꽃을 걸어두는 듯 이제 막 시들어 보이는 꽃들이 이곳 저곳에 놓여 있었다.




한 20분 남짓 큰 길을 따라, 계속 가면 크라쿠프를 벗어날 것 같은 외곽길을 걸었다. 큰길에서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들어가는 샛길에 작은 간판이라도 하나 있을 것 같았는데 꼭 힘들었던 과거를 애써 숨기려는 듯, 한참을 헤멘 오솔길가 언저리에 저 간판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오던길에 버려진 단층짜리 굴뚝이 있던 건물이 보였고, 영화에서 처럼 뒤로 낮은 언덕이 보였다. 저 간판 옆으로 한사람 정도가 밟고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수풀사이의 오솔길이 나있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갔다. Liquidation이후 게토의 모든 유대인이 수용되었으며, 이곳의 소장 아몬 괴트 소위 등에 의한 노동력 착취와 많은 학살이 이루어 지고, 전쟁 말기에 그동안 학살된 만여구의 시체를 소각 했던, 그곳은 현재 어떠한 건물도 없이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없는 그렇게 버려진 땅처럼 아무렇게나 팽겨처져 있는 듯 했다. 수풀 사이를 걸어들어가면서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옅은 안개에 촉촉한 바닥의 느낌에 일순간 어느 공포영화를 보던 순간 보다 서늘해졌다. 음. 이것은 실제였다.

조금더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그당시 사람들이 뭍힌 비석하나 없는 공동묘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진 두장을 찍고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다시 길가로 나왔을때 이 곳으로 가는 다른 입구에는 학살당한 Unknown들을 위한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 묘비 옆으로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이 건물이, 플라초프 수용소 당시 독일 SS대원들이 유대인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장소였다. 수용소 건물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듯 했다.



빠꼼히 보이는 지하 창문의 창살이 그리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싹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까의 나즈막한 언덕이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에서 플라초프 수용소장인 괴트말고 딱 한명 부하의 이름이 거론된적이 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열차에 쉰들러가 물을 뿌려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쉰들러가 이곳에 도착하자 괴트 소위가 반갑게 맞으면서, 의자를 내어주기 위해서 앞의 앉아있던 부하에게 "Go, Hujar. Move"라는 대사를 한다. 굳이 이 Hujar에 대한 설명도 행적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굳이 이름을 거론한 저의는 바로, 이 사람이 SS대원들 중에 가잔 잔인한 대원으로 알려진 Hujar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학살을 저질르고 시체를 소각했던 바로 그 언덕을 그의 이름을 따서 Hujar Hill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위인의 이름을 따서 지역의 이름을 통용할 터인데, 이 사람은 악명이 높아서 그 이름을 따서 언덕이름을 붙였다니.. 아마도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누군가에 의해서 이름이 붙여진 듯 하다.
영화를 유심히 보면, 스토리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 이 Hujar라는 사람은 가끔씩 주목을 받는 행동을 하는 화면을 보여줄 때가 있다. 스필버그는 하고 싶었던 말을 장장 3시간이 넘는 스토리에도 모두 포함시킬 수 없었을 만큼 할말이 많았던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의 시체를 발굴해서 소각하는 장면에서 분노하며 그 불길더미를 향해 총을 난사하는 Hujar를 잠시 비추어 준다.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자리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바로 2분정도 다른 쪽으로 걸어나오니 단촐한 아파트와 낮은 건물들이 나왔다. 가판에서 담배를 한갑 사서 꺼내물고 난 후, 길건너 전차 정류장으로 나왔다.

8시간의 카즈메르 지구 걷기를 마치고, 전차를 타고 다시 크로카우 구 도심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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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구도심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여전히 안개는 뿌옇게 서려 있었지만 부슬거리던 비가 멈춰서 다행이었다. Main square의 St. Mary's Church가 꼭 멀찌감치 서있는 것만 같았다. 광장의 동쪽에서 북쪽으로 나있는 길은 쇼핑거리여서 그런지, 사람을 한명도 못마주쳤던 플라초프 수용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광장 중심부 건물. 이 광장의 많은 간판들이 더이상 기존의 '동유럽'의 이미지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맥도널드 역시 사진에서 중심부 건물의 건너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군데의 서점에 들렀다. 주인장이 빌려주었던 카즈메르 관련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꼭 사가지고 가고 싶었으나 여러군데의 서점에 들른 결과 한곳의 폴란드어 버전 말고는 동일한 서적을 구할 수가 없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숙소로 들어와서 또 주인장 부부와 술을 한잔 했다. 그날의 육체적 혹은 그보다 심했던 정신적 피로때문인지 맥주를 자주 들이키게 되었다. 자꾸 플라초프의 그 쓸쓸한 초원이 떠올랐다. 그 심적 먹먹함을 달래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슬로바키아 쪽으로 서둘러 가기로 했다. 론리플레닛에서 국경을 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고, 나는 자코판(폴란드)에서 포프라드(슬로바키아)로 국경을 넘어가기로 정했다. 마침 자코판은 주인장 부부가 추천한 휴양 도시였다. 그곳에는 론리플레닛에 추천이 되어 있을 정도로 멋진 타트라 산맥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주인이 그곳에서 먹어보았던 맛나는 음식을 직접 적어서 주고, 자코판에 대해서 이런 저런 정보도 주었다.
급하게 예약했는데도 친절하게 맞아준 이 분들에게 감사했다. 한인민박은, 2002년도 유럽행을 포함 몇군데 들러보지는 않았지만,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으로 여행을 나와서 굳이 한국사람을 만나러 숙박을 잡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젊은 부부의 아직 오래되지 않은 이 민박은 그래서 오히려 훨씬 편안하고 친근하게 머물렀다가 갈 수 있던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2시가 넘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러 가면서, 문득 이 카즈메르 지역을 둘러본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 먹먹함을 느끼고 가는 것이 나의 삶에 대한 감사와 그들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남겨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행여 유럽을 가는 친구가 폴란드를 들른다면 꼭 크라쿠프의 이 카즈메르 지역을 한번 둘러보기를 권한다. 비록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무겁고, 관광을 하라고 특별히 도통 꾸며놓지도 않은 이곳이 여행자에게 팽팽한 inspiration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게토지역을 돌아보면서 영화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도 사뭇 인상깊은 기억이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다음날도 비가왔지만, 마지막의 크라쿠프를 보기위해서 걸어서 버스터미널로 갔다.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사촌형에게 전화를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연락을 드리고 서둘러 미니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아마 르노차지?? 오래된 이 깜찍한 파란색의 차가 잠깐 가지고 싶었다;;







여름이 되면 풍성하고 아름다운 길 모양새를 선사해줄 것 같은 곳.





자, 이제 자코판이다. 타트라 산맥. 넌 꼭 보고싶다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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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타 2007/08/19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이번 여행기 진짜 멋진걸...
    영화 속의 장면들과 매치되는 사진..
    이런 건 꼭 올블로그로 보내줘야지..

    • Favicon of http://www.henbros.com BlogIcon minchul 2007/08/19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갑자기 올블로그 타령이냐?
      암튼 기억이 잘 안나서 여행기 올리기가 쉽지 않네. 바로바로 올려놓을껄. 으하하



한참을 가물가물 해진 기억을 벗삼아;; 4월14일에 돌아왔던 유럽여행의 '시즌2. 동유럽에서 독일까지'를 올리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그때의 사진을 펼쳐보니 마치 참 오래된 여행처럼 꿈같이 느껴집니다.
 


자, 파란선이 시즌2! 입니다.


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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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동유럽으로 여행을 나선 다는 것은 서른 둘의 아저씨에게도 참 묘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는 혼자 차를 몰로 이곳 저곳 가봤지만, 결정적으로 어디서 보았던, 혹은 누구에게 들었던, 그런 멋스러운 싱글여행객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했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영어도 잘 안통한다는 동유럽이다.
어떻게 다니는 것이 좋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어차피 한국사람은 없을 것이고, 관광다니는 다른 외국애들과 말을 터봐?? 별로 낯설게 말을 트는 성격이 아닌 나는, 가능하다면 그저 로컬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늦은 저녁 크라쿠프 공항에 내렸다.

공항 인포메이션에서 이런 저런 정보를 얻고 환전을 한 뒤, 바깥으로 나오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생각보다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날씨였다. 공항을 지키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버스정류장을 물어보는데는 영어가 아닌 바디 랭귀지가 이용되었다.
버스는 낡았으나 그리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 가운데는 짐을 싣는 공간이 있었고, 짐하나당 얼마씩을 내어놓아야 그곳에 짐을 놓을 수가 있었다. 구도심까지 한시간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한 삼십분 남짓 지나자 갑자기 버스 기사가 나보고 내리라는 제스처를 보여줘서 헐레벌떡 그 어둔 정류장 앞에 내렸다. 노트북을 꺼내어 지도를 살피고 사람들에게 물어 구도심 근처로 걸어갔다. 어느새 빗줄기는 굵어져 있었고 가방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우산을 꺼내지 않고 미리 예약해 놓은, hostelbooker.com에서 무려 96%의 지지도를 가진 giraffe hostel을 찾았다. 거리는 한산했고 가끔 지나는 사람들도 모두들 굵어진 빗줄기에도 우산하나 받쳐든 사람이 없었다. 분위기는 약간 음산할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유명한 호스텔이라 간판이라도 크게 있을 줄 알았는데 한참만에 찾은 호스텔은 조그만 간판을 가진 허름해보이는 곳이었다. 들어가서 체크인을 했고 방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지못한 나는 리셉션을 통해 할인된 가격의 피자한판을 시켜먹었고, 방으로 들어갔더니만... 으하하 또 나말고 어린 여학생이 다섯명, 모두 일행인, 폴란드 친구가 끌고온 네명의 미국인이었다. 다섯명의 여자가 샤워를 하고 블라블라 수다떨던 곳에 아저씨가 뚝떨어지고 나면 그 어색함은 참 이루말할 수 없다. 인사를 나누고 몇분 이야기를 하다가 영 불편해서 노트북을 들고 바에 나갔다. 맥주를 한잔 하면서 검색도중 크라쿠프에 한인민박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다음날 숙소를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바텐에게 담배불을 빌리는데 농염한 어투와 표정으로 빌려줘서 어익후. 했다.

암튼, 다음날 아침 일찍, 전날의 남은 피자를 뎁혀먹고선 '오로라 민박'이라는 곳을 향했다. 이곳은 여름방학의 손님맞을 채비를 하기 위하여 최근에 이사를 했었고, 그래서 아직은 침대가 많지 않았다. 으하하하 호스텔과 같은 값을 지불하고 혼자 편히 쉴 수 있는 곳, 맘에 들었다.




이곳 주인장이 많은 책과 근처 관광정보를 알려주었고, 이것 저것 알아본 다음 일단 소금광산에 나가보기로 하고는 길을 나섰다. main market square를 중심으로 한 구도심은 5분거리에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보다 생기있는 이곳을 구경할 수 있을뻔 했다.




이곳에서 우산을 쓰고 잠시 머물면서 사람들을 구경했었는데, 그동안 유럽에서 보았던 사람들과 확실히 인종이 달라 보였다. 눈이 더 깊었고,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쓸쓸한 감상을 머금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가운데에 있는 메인건물의 남북으로 통하는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했다. 이곳의 기념품들은 물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이라도 보다 차분한 색감이었으며 보다 옛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광장을 지나 남동쪽으로 내려와서 소금광산을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렸다. 폴란드의 전차 한컷.




조금 큰 봉고같은 버스에 올랐다. 다행이 노선의 출발지점이었기 때문에 앉아갈수 있었지만, 비가 오는 가운데, 아주 붐볐던 그 작은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랐다가 내렸다.

드디어 소금광산 도착!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나는 시골동네 한가운데 우두커니 내렸다. 길을 물어 소금광산으로 내려가다가, 햄버거를 파는 아주 작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버거세트를 시켜서 먹었다. 동유럽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콜라나 스프라이트를 주문하면 항상 나오는 콜라는 한국에서는 보지못한 작은 병에 들어있는 녀석이었다. 동네사람들이 지나면서 수염을 기른 키큰 동양인이 햄버거 먹는 것을 유심히들 쳐다보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한참을 걸어 소금광산에 도착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고, 영어안내를 하는 시간에 맞추어 기다렸다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금광산은 오래전 바다였던 곳에서 물이 증발하여 남은 염화칼슘이 암염으로 변한 것을 캐내던 곳으로 소금이 귀했던 시절의 나라의 재정에 큰 보탬이 되던 그런곳이라고 했다. 20세기 후반에 소금채취를 멈췄고 지금은 유네스코가 자연유산으로 지정해서 관광지화 되어 있다고 한다. 헝가리로 시집을 갔던 공주가 이 금광을 발견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이곳은 소금을 캐낸 빈공간을 활용해서 다양하게 꾸며놓은 방들을 중심으로 관광이 이루어졌다.

일단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몇백계단 내려갔다. 자주 한글로 씌여진 낙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어발음이 통~통~ 튀는 폴리쉬 아저씨가 가이드를 맡았다. 발음만큼이나 유머러스한 아저씨였다. 이곳은 처음 들어갔던 방. 천장에 하얗게 응결되어 있는 것들도, 샹들리에도, 조각들도 모두 소금이다.

응?? 어. 그렇다. 슬쩍 벽에 혀 대보았다. 짜다;;;;




사실 이곳은 '소금''광산' 이 자체가 신기하고 대단했던 거였지, 사실 그리 신기한 볼거리가 많거나 하지는 않았다. 인디아니 존스에 나올법한 여러방들을 스쳐지나갔고, 이곳에 얽힌 전설과, 일하던 모습을 담아놓은 밀납 인형, 여러 조각상들, 심지어는 작은 호수 같은 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원래 처음에는 호수에서 배를 띄워 타는 관광 코스가 있었다는데 20세기 초에 오스트리가 군대가 단체관광와서 열몇명이 그대로 익사한 뒤로는 그러한 코스가 없어졌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호수가 제법 다크 포스를 유발한다.)

가장 유명했던 커다란 예배당. 실제로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사실 암염으로 이런 조각을 만든 것더 신기하고, 약간 투명한 느낌을 주는 것도 신선했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입체감이 잘 살아나는 이러한 최후의 만찬 같은 조각이었다. 민박집에서 준 자료에 자세하게 나와있던 내용이 명확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저 조각은 미적 재능이 있던 광부가 만든 것으로 나와있었다. 그것도 온전히 한 사람이 아닌 그 자식의 후대에 걸쳐서 완성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사진을 보면 잘 와닿지 않겠지만,




위의 것도 아래 그림과 같이 정밀하게 입체로 조각된 작품이었다. 그 완성도가 한참이나 시선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암염의 회색톤이 더욱 진한 고난의 여운을 남기는 그리스도 상이다.




생각보다 길었던 두시간의 관광이 끝나고 이곳을 나왔다.




바깥에 나와보니 벌써 어두워져 있었고 추웠으며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이미 빗줄기는 굵어져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잡아타고 크라쿠프 시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덜덜덜.. 가지고 왔던 점퍼를 영국에서 잃어버려서 아쉬웠다. 다음날 부터는 옷을 더 껴입고 나가야겠군.

돌아오면서 광장 한컷. 민박집 주인장이 친절해서 혼자온 관광객의 식사를 제공해 줄것 같았지만 민폐끼치는 것 같아서 스파게티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 먹었다.




이날 저녁 비로서 이곳 오로라 민박집의 주인과 간단히 맥주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린 두사람이 한국에서 결혼을 한뒤에 한국인 민박이 없는 이곳에 오게되었다고 한다. 안주인 되시는 분이 유럽여행중에 이곳의 유대인 지구를 둘러보고 이곳이 좋아져서 무작정 오게된 사연을 들으면서 대단도 하였고, 처음 해보는 일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을텐데 일견 대견도 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두분의 꿈이 잘 영글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아무튼 다음날에는 민박집 주인에게 추천받았던 2차세계대전 중 유대인의 게토(getto)가 있었던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에 비치되어 있는 영어책자가 이 카즈메르 지구에 대해서 잘 나와있었고, 이곳에 올때까지도 몰랐던 이 카즈메르 지역의 역사적 사실에 흠뻑 빠져들어 버렸다. 나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장소가 이곳 폴란드 인지도 몰랐다. 주인이 권해준 쉰들러 리스트를 늦은밤 모두 보고, 저 책을 한참이나 읽고 나서야 새벽잠이 들었다.

밖에 내리던 비는 어느새 펑펑 내리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불과 열흘전에 스페인 바닷가에서 태닝했었는데... 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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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겨울의 휴양지, 폴란드의 자코판이란 곳에 들렀습니다.
눈이많이 와서 멋있는 타트라 산맥의 모습을 보지를 못했네요.




바로 슬로바키아로 이동했습니다. 눈내리는 날 첩첩산중에서 걸어서 국경을 건넜습니다.




자, 이곳은 슬로바키아의 질리나 입니다.
오늘같은 날씨에 타트라 산맥을 올랐으면 정말 좋았을뻔 했습니다. 하루차이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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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떡 2007/03/23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서 국경까지~. 좋군. ^^ 눈 쌓인 숲 사진 끝장나 주시고.



GoToEurope - Kracow

travEl 2007/03/20 08:39
이곳은 폴란드의 크라쿠프입니다.
도착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지금은 함박눈이 내리내요.
짐을 더하더라도 점퍼를 하나 구입해야겠습니다.

동유럽은 웬지 한구석이 시린 느낌이 듭니다. 서울에서도 못본 눈이 와서 그런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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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ogomo.net BlogIcon 보고모 2007/03/20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헨님 정말 언제봐도 사진 잘찍으시는거 같아요..^^ 사진만 봐도 유럽의 향취가 물씬~^^

  2. 메떡 2007/03/23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쇼핑도 구경만 해라. ㅋㅋㅋ

  3. 봉봉 2008/10/23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유럽 사람들의 눈에서는 왠지 고독함과 쓸쓸함이 보이는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www.henbros.com BlogIcon minchul 2008/10/25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지만 그들도 고단했던 지난 백여년을 넘어,
      분명 좋은 길로 가고 있을 겁니다.

      눈이 깊죠. 동유럽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