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유럽 | 50 ARTICLE FOUND
- 2010/02/17 바르셀로나 출장
- 2008/11/07 로드무비
- 2007/09/02 2007유럽여행 시즌2 마지막. 프랑크푸르트 (7)
- 2007/09/02 2007유럽여행 시즌2. 뉘른베르크 (4)
- 2007/09/02 2007유럽여행 시즌2. 에얼랑엔
- 2007/09/02 2007유럽여행 시즌2. 뮌헨
- 2007/09/02 2007유럽여행 시즌2. 스투투가르트 (2)
- 2007/09/01 2007유럽여행 시즌2. 스플릿. (4)
- 2007/09/01 2007유럽여행 시즌2. 두브로브니크 (4)
- 2007/08/31 2007유럽여행 시즌2. 모스타르 (2)
- 2007/08/31 2007유럽여행 시즌2. 사라예보 (2)
- 2007/08/27 2007유럽여행 시즌2. 빈 (2)
- 2007/08/24 2007유럽여행 시즌2. 부다페스트 (12)
- 2007/08/24 2007유럽여행 시즌2. 브라티슬라바 (4)
- 2007/08/23 2007유럽여행 시즌2. 질리나에서 브라티슬라바 (2)
- 2007/08/22 2007유럽여행 시즌2. 폴란드의 자코판에서 슬로바키아의 포프라드까지 (4)
- 2007/08/19 2007유럽여행 시즌2. 폴란드의 크라쿠프 두번째 (2)
- 2007/08/19 2007유럽여행 시즌2. 폴란드의 크라쿠프 첫번째
- 2007/07/27 유럽 - 런던 (2)
- 2007/07/12 유럽 - 옥스포드 again! (7)
어느 여행사에 작년 유럽여행 다녀온 컨텐츠를 제공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몇가지가 동영상으로 만들어졌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옥션 여행의 어느 카테고리에 '로드무비'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벌써 지금 잘 기억이 안나는
그때 여행길을 생각해 보다가 하나 찾아서 올림.
내가 쓴 글은 어느 분이 편집해 주신 듯 한데, 지금 보면 괜히 웃김 ㅎㅎ
It was London,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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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타2 2007/09/02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국회의사당은 구케으이사당이라고 해야대? 하우스 어브 파알리아먼트라고 해야돼? 대학로는? 서울대 입구는? 그니깐 고유명사를 번역하기 시작하면 결국 어디까지 가야할지 애매해진단 얘기. 을지로2가도 숫자와 쉬운단어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결국 고유명사의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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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타 2007/09/14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헨형.. 나 옛날 다이어라 뒤지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더라?
97년 7월 5일. 신천에서 너,승우랑 술 먹고 너네 집에서 잤어.
근데 "홍콩 마스크"라는 비됴를 봤대.
크하하 이거 혹시 주성치 나오는 그거냐?
우리 이런 유치한 비됴 집에서 보고 그랬었나보다...
그리고 혹시 이 무렵이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땐가? -
luna루나 2008/08/29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들어와선.. 여행 관련 글 하나하나 다 읽어봤네요.^^
제가 직접 가 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집니다.
동유럽이 특히 좋았어요. 보는내내 눈이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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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날씨가 좋은 다음날, 여유있게 아침을 보내고 집을 나서서 출발했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무슨일인지 시끄럽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게 이나라 말이 원래 그런지 머 싸우는 건진 알수없으니 원. 암튼 아주머니가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셨다. 집으로 데려갈때랑 버스터미널로 태워줄때가 분위기가 영 딴판이다. 암튼 헤어질때는 밝은 얼굴로 많이 추천해 달라고 하더라.
암튼암튼 스플릿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쪽은 버스 아래칸에 짐을 실을때 사람과 마찬가지로 돈을 받는다. 어딜가나 비슷하게 1-1.5유로 정도 받는데 미국아가씨가 짐을 싣는데 돈내기 싫단다. 가지고 타겠다고 우기다가 결국 돈을 낸다. 나중에 휴게소에서 이 아가씨가 말을 걸었다. 대구에 가봤다면서 몇마디 나누고는 버스에 먼저 오르더라. 혼자 여학생이 여행을 참도 많이 다니는 친구같다. 스플릿에 갈계획은 아니었던거 같은데 중간에 표를 바꾸더니 씨익 웃으면서 자기도 스플릿 가기로 했다면서 지나갔다.
날씨 좋은 날의 아드리아해를 끼고 가는 드라이브는 꽤 삼삼하다. 좌석이 좀 덜 불편했으면 좋았을뻔 했다. 꼬불꼬불 길이긴 하지만, 200km에 다섯시간은 좀 넘했다. 그치??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구도심 근처 private room을 잡고 어둑해지기 직전 스플릿의 구도심을 돌아다녔다. 다음날 배타고 섬에 들어가려고 알아봤는데 여의치 않아서 크로아티아는 스플릿으로 마감해야할 것 같다.
구도심 근처. 살짝 우범지대 삘이다. 이곳 구도심은 그리 넓지 않아서 금방 돌아다닐 수 있었다.
구도심을 나와 알지도 못하는 길을 완전 그냥 걸어다녔음. 한참을 가다가 지도 보고, 또 내키는 대로 가다가 지도보고. 알지 못하는 스플릿의 어두운 밤거리를 무작위로 걸어다녔다. 생판 낯선 동네의 가판에서 늦은 시각 햄버거를 주문해서 먹었다. 양이 한 네배는 되는거 같다;; 생각보다 맛나서 다음날에도 오기로 마음먹었다. 또 비가온다. 그래도 해만지면 길거리에 사람이 사라지는 이곳의 밤거리 풍경이 낯설고도 편안했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입구에서 보았던 낙서. 낙서그림이 너무 멋지잖아.
스플릿 첫날밤에,
다음날 아침 론리플레닛에 있는 추천레스토랑에 나갔다. 오랜만에 레스토랑에서 serve를 받으며 밥을 먹었다. 메뉴는 소고기 요리였는데 신기하게 중간중간에 야채가 들어가 있었다. 짭잘했지만 오랜만에 잘 먹었다. 메뉴판에 잔뜩 비싼 메뉴들이 있었는데,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니까 리즈너블한 가격을 추천해 주어서 참 솔직하고 착해 보였다. 환한 대낮에 지하 어두 컴컴한데 들어와서 아점이라니,, 이 레스토랑은 완전히 밤에 왁짜지껄하게 떠들며 술마시는 그런 분위기다. 생기발랄한 이곳 전통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조금은 신기한 기분으로 밥을 먹고 환한 대낮에 빨리 길을 나섰다.
역시 낮에 돌아다니는게 더 좋다. ;)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항상 주위에 벽을 쳐놓고 나란 사람에 대한 생각들로만 가득 채워놓고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으면,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것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안부를 여쭤봤고 편안히 주무시라는 말을 남겼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둘러보니 스플릿의 고대 로마 유적이 남아있는 성당앞의 작은 광장이다. 이곳 사람들도 해가 좋은지 광장 계단에 마련된 푹신해 보이는 방석에 앉아서 나와 햇볕을 즐기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습한 여름이지만, 이곳은 옆의 산도 모두 완전 돌산이라 나무도 별로 없고 날도 건조해서 빠짝 마른 더위라고 해야할까. 그렇다. 땀은 많이 안나서 좋긴한데, 옥스포드에서의 그런 촉촉한 맑은 날이 그립긴 하다.
구도심을 구석구석 통과해서 Marjan언덕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니들도 해나니 좋구나??
marjan 언덕에서는 스플릿의 도시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역시 이곳은 휴양지 답다. 시원한 아드리아해를 마주하고 있는 야자수들이 즐비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큰 배가 들어오는 거 보니,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오는 배인가 보다.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배로 오기 편리하다. 서유럽 여행을 가는 사람이라도 배로 이곳 듀브로브니크나 스플릿에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또 여름에은 어떨지 모르지. 비수기라 차라리 난 편하고 좋다.
독일에서 온 부부 일행들이 내 카메라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똑딱이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줬다. 엄지를 치켜올리며 오 잘찍었다고 좋아라 했다. 내 씨어리어스한 사진기를 보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이 많았다. 여긴 DSLR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항상 직업이 포토그래퍼냐는 질문을 받는다. ;)
참 편안한 곳이다. 어느 엄마도 공부하라고 안할 것 같고, 어느 아이도 학교에서 경잼심에 불탈것 같지 않다. 그냥 주어진 자연에서 관광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공부고 나발일 것 같기도 하다. ㅋㅋ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대한 답은 아직 찾기 힘들다. 의미있게 살아보자고 시작한 골똘함인데. 글쎄 사람의 생각과 의미가 이렇게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거라면, 그 의미를 찾는게 조금 웃기지 않은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과연 나는 또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것인가. 으하하 2002년도 생각해 보면 여행중 여러가지 담아갔던 생각들이 일주일도 채 안가서 완전 한국 적응되어 버린다;; 그중 하나가 아마 그때 어린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을 배워서 좋은 일에 써보고 싶어했었지. 2002년에 원했던 동유럽을 이렇게 찾아나선 바로 그 무의식의 반응처럼 언젠가는 그걸 배우게 되겠지?? ㅎㅎ
좋다. 이곳도, 날씨도, 그냥 이렇게 바다를 멍하니 응시하는 나도, 그리고 너도. 참 좋구나.
혼자서 여행할때는 음악을 듣는 것이 좋다. 생각해 보니, 여행중에 음악을 별로 안 듣고 다닌거 닽다. 듣는 노래의 풍에 따라서 밝은 햇살이 싱그럽다가도 아련히 반짝거리기도 하고 이내 힙합리듬으로 신나진다.
자. 이제 언덕을 떠나서 극장을 지나 숙소에 들어가 볼까나..
내려가는 길.
아.. 극장에 영어 프로그램이 없단다. 제목이 Billy Holiday인 연극을 하길래 영어로된 프로그램 좀 읽어 보고 들어가면 크로아티아 어로 말하고 노래해도 좀 알아들으려니.. 했는데 영어로된 정보가 '전혀' 없다고 했다. 오 신기할세. 상점의 모든 사람들이 그래도 영어를 하는 비영어권 관광지는 드물어서 다 갖추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안보기로함.
일단 방으로 오는 길에 수퍼에 들러서 물과 와인 한병을 샀다. 신기했던건 1리터 짜리 멀롯 품종 와인이 한 5유로 정도 해서 동일한 와인인데 좀 작은 750ml짜리를 사서 계산하는데 6유로인거다. 이상해서 계산후 큰녀석을 가지고 가서 가격을 물어보니 5유로라는 거다. 내가 신기하다는 투로 말하니 점원은 별로 안신기 한듯 "바꿔줘?" 라고만 묻는것이다. 당연히 바꿔줘야지;;
여행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냥 보고싶어지는 사진중 하나.
극장을 포기하면서 시간이 좀 떠버렸다. 늦은 오후 숙소에 들어가서 와인 한잔 하면서 노트북에 글을 끄적거렸다.
둘째날,
와인 병나발 컨셉 샷. 폐인의 이미지가 솔~솔~ 풍긴다. 첫번째 사진 원츄. -_-b
에잇! 컥-
으윽.. 후우-
그렇게 해가 져버린 스플릿의 마지막 밤에 또다시 산책을 나갔다. 전날에 갔던 햄버거집에 가서 저녁으로 먹을 햄버거와 아침으로 먹을 작은 피자를 한판샀다.
음식을 들고 숙소로 가는 도중, 누가 말을 걸더니 피자를 낚아 채서 짤라먹는다. 뭐지??;;;;;
길가의 한 귀퉁이에 저런 빠가 있었고, 바깥의 서서먹는 바테이블에는 한무리의 사람이 있었다. 그중 취한 한 친구가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은 방법으로 너털대면서 내 피자를 먹는다. 사실 사실만 가지고서는 황당할만도 한데 나도 와인 한잔 한지라 그냥 웃고말았다. 일행중 다른 친구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더니 맥주를 한잔 사겠다고 한다. 이때부터 우린 친구가 되었다. ^.^;;
피자를 먹던 녀석은 들어가고 나머지 하나둘 멤버가 바뀌더니 한참 동안 이곳에서 같이 맥주를 마셨다. 어느새 나의 호칭은 "Kim, my friend."가 되었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이 사람들은 비수기처럼 덜바쁜 시기에는 이렇게 동네에서 다들 행어라운드 하는 듯 했다.
자기네 나라 이야기, 사는 이야기, 축구이야기 등등 화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카톨릭을 믿는 이곳 사람들은 이슬람을 여전히 싫어하는 듯 했다. 외마디로 외쳤던 "뻑킹 무슬림!"에 좀 안타깝더라. 암튼.
주인장이 자기 동생이 유명한 축구선수고 일본여자와 결혼했다면서 동생이 선물로 준 사케를 꺼낸다. 오오~ 한일월드컵 기념 사케다 ;)
같이 기념사진도 한장.
끊임없이 담배를 피던 할아버지.
바 주인장.
축구를 잘하게 생긴 아저씨. 이 아저씨가 그나마 영어를 잘해서 주로 같이 이야기 했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사케에 이어 데킬라까지 이어졌다. 환호성을 지르며 돌아가면서 무려 한병을 비웠다. 이 사람들 모두 유부남이라는데 집도 안가고 2차를 간다면서 같이가잰다. 순간 좀 망설였지만 이 순해보이는 로컬들과 어울려 보기로 했다.
바를 나오는데 너무 이곳 바의 술을 축내서 돈을 내려했더니, 사람들이 정색이다. 기념으로 천원짜리를 벽에 붙여주고 왔다.
아무튼 얘기치 않게 즐겁고 순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날밤 낯선곳이라 긴장하면서 다녔지만, 동유럽 여행을 깔끔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마지막으로 동네를 산책하고, 비행기를 타러 스플릿 공항으로 나섰다.
전날의 숙취로 어질어질 찾아간 스플릿 공항.
이제는 독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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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10시에 두브로닉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표를 사고 2KM(1유로. KM:카이엠 or 마르크) 짐 티켓을 찍어주길래 보스니아 돈을 다 써버렸는데 운전기사가 또 2KM 더 내랜다. 슬로바키아 폴란드 돈이 몇유로씩 남아서 처치곤란인데, 아흘 또 잔돈이 남아버렸다. 암튼 어서 유로화로 화폐가 통합되어야지, 동유럽 여행하는데 여간 환전하는 게 피곤한게 아니다.
네바트라 강을 따라 두브로브니크로 출발하였다. 남쪽행 버스에서 아드리아 해를 보려고 버스 우측편에 자리잡고 앉았다. 나름 크로아티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다 잘 살아서 그런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는데 꽤 까다롭게 여권검사를 했다. 한사람이 문제가 생겨서 버스에서 30분정도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낯선 나도 여권을 따로 한번 검사받았다. 그 다른 사람처럼 짐이라도 풀어서 검사받지 않은게 어디야.
동유럽이었던 나라들이나, 그중 특히 내전을 겪었던 옛 유고연방 국가들이 현재는 가난하지만, 이 나라들이 차후 유로연합에 편입(현재 진행중)되고, 후에 통화까지 유로로 통합(차후 진행예정)된다면 이곳또한 무서운 저력을 가질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마 현재로서는 이곳 사람들의 서유럽으로의 이주가 활발해지고 있고, 지금이야 서유럽을 배불일 일들만 우선적으로 촉진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게 나라가 힘이있어야해.
계속 비가 온다고 투덜댔었는데, 이루마의 Spring rain을 듣고 나서야 기분이 나아졌다. 정말 말그대로 봄비아닌가 ;)
신기했던 것은, 모스타르에서 버스로 두브로브니크를 가는 길에는 크로아티아로 국경을 넘어, 한참을 가다가 또 다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넘고, 금방 다시 크로아티아로 국경을 넘는 재미난 길을 따라서 가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 길이 해안길임을 감안하면, 크로아티아는 나라 중간이 잠깐 끊어져 있는 것이고, 내륙에 위치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그들만의 20km정도의 해안선을 가질 수 있게 국경이 형성되어 있다.
이 두나라를 두번이나 번갈아 보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덜 발전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자 비교적 깨끗한 건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다나알프스의 낯설은 돌산을 등지고 가파른 언덕마다 집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아래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드리아해가 반짝이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 도착!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손님을 맞는 엄청난 숙소 주인의 인파속에서 통통튀는 영어발음을 가진 어느 맘좋아보이는 아주머니를 따라 그집에 묵기로 했다. 사실 순전히 그 아주머니가 첫번째로 내밀었던 한글로 쓰여진 광고문구가 반가워서 아주머니를 따라갔다고 생각하니, 좋은 pr방법이군..싶었다.(단번에 국적을 알아맞춰야 하는 운도 따라야 하지만 말이다. ㅎㅎ) 가는길에 travel agency에 들러서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지도를 얻고, 환전을 했다. 생각보다는 방이 깨끗하지는 않았고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바깥에 숙소..라고 써붙여놓은것 보단 난 이런 홈스테이식의 private room이 좋다.
듀브로브니크에서 주변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
암튼 이날은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퍼붓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후에 숙소에서 한발자국도 못나갔다. 뒷쪽의 숲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파닥파닥 빗소리를 듣는게 기분이 좋기는 했다.
이제는 여행이 후반을 달리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다음 여행계획을 짰다.
여행 마지막에는 독일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비가 계속 되는 이 근처의 날씨와,
조금더 늦으면 부활절의 영향으로 훨씬 비싸지는 비행기 가격과,
이동시 50km를 한시간을 훌쩍 넘겨야 지날 수 있는 도로사정과,
몬테네그로의 코터르를 지나 세르비아의 코소보 지역을 갔다가 가능하면 불가리아 소피아까지 가려했던 무리한 여정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지금 생각에는 코소보까지는 질러볼껄.. 아쉽아쉽)
결국 모든 교통편을 알아보다가 스플릿에서 독일 스투투가르트로 가는 GermanWings를 타기로 결정하고선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마지막 여행지인 독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여행이 끝난것만 같았다. 저녁거리를 이것 저것 장봐와서 간단하게 만들어먹었다. 스파케티 소스를 이상한 것을 사와서 스파게티는 완전 못먹음;;
다음날 아침 일찍 바깥에 나갔다. 어디 영화속에서나 들어보던 아름다운 도시명, 이곳은 듀브로브닉 아닌가!
일단 스쿠터를 한대 빌렸다. 대만과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렌터카와 별 차이가 없을정도로 가격은 높은 편이었다. 신용카드가 정지된 상태로 현금밖에 쓸수 없어서 예산을 생각해 보다가, 하루를 덜컥 빌려놓고 스쿠터 투어에 나섰다. 대만에서 너무 즐거웠던 스쿠터 여행을 생각하고 빌렸으나, 예상보다 거리에 차도 많고, 혼자타니 그때 그기분을 만끽하지는 못했지만. 역시 스쿠터 여행길은 보다 편하게 이곳 저곳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도 먹지 않고, 구시가지로 나가서 성벽에 올랐다. 이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두시간 가량 바다와, 성과, 그안의 빨간지붕과 밝은 벽돌로 이루어진 멋진 건물들을 구경했다. 이곳이 괜히 유명한 것이 아니다. 내딛는 발 하나하나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1991년 내전때 세르비아인들에게 오랫동안 폭격을 받아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며 다시 복구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구도심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밝으면서도, 파스텔 톤으로 부드러운 이곳의 지붕과 건물들이 보여주는 낭만적임은 내가 기대했던 이상이었다.
이곳 철옹성과도 같은 성벽을 지켜주던 대포. 실제 이곳은 바다로부터의 많은 침략을 받았던 곳이다.
성벽을 반쯤 맞은편으로 섬이 보였고, 물살을 막아선 방파제 근처에는, 휴양지에 어울리는 많은 보트가 정박해 있었다.
이때부터 슬슬 날이 개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의 나른한 산책이 참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일단 점심을 먹고 스쿠터를 타고 비교적 먼거리에 있는 바다에 들었다. 날이 맑아져서 휴양지 와이셔츠 차림으로 지도하나 달랑들고 가장 바다쪽으로 나와있는 부분으로 무작정 스쿠터를 몰고 갔다. 그곳에는 얕으막한 호텔이 있었고 호텔 뒷편으로 산책로가 펼쳐져 있었다.
위의 아저씨가 앉아있던 곳에서 삼십분 넘게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도시의 분위기 때문인가,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아름다운 휴양지는 혼자 올곳이 못된다는 생각을 그제야 깨달았다. 혼자 동유럽을 돌아다니면서 한가지 알게된 것은, 며칠이면 모를까 생각보다 장기간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양면성이 있겠지만, 나란 사람은 그렇게 홀로 자유롭고 싶어서 복작대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그리 반겨 하지 않으면서도, 반면에 한켠에 사람 냄새에 대한 그리움 또한 가지고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그립다.라고 생각했을때가 그립기도 하다.
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완전 기절.
해변이 아니라 해안 절벽이어서 그런지,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곳부터 바다의 색이 짙어 녹색이 되는 푸른색을 띤다. 낯선 바다색과 낯선 아드리아해는 너무도 평온하고 따뜻했다. 금새 날이 전날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아졌다. 독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매했는데 말이다. 이 뭐.
저 곳 산책로를 구석구석 돌았다. 오랜만에 햇빛으로 완전 기력충전되다 못해 기력이 넘쳐버려서 나른해질 지경이었다.
다시 스쿠터를 타고 구시가지 근처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언덕위에 이곳저곳으로 길이 나있어서 길을 헤메기도 하고, 아주 밝은 햇빛아래 잠시 쏟아지는 비도 맞으며 구석구석을 구경다녔다. 돌아오는 길에 듀브로브니크에서 유일한 해변가인 플로세 해변에 들렀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계단. 저렇게 남다르게 있는 녀석들을 보면 애정이 서려 지나치지를 못하겠다. 웬지 자신의 무게를 알아버린 어느 고집센 나 같기도 하고.
해변에 앉아서 노트북에다 글을 쓰고 바다 가까운 바위에 앉아서 한동안 음악을 들으며 쉬어갔다. 사실 아주 어릴적에 그랬던 것처럼 평안한 가운데 시를 한번 써보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단 한구절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종류의 일들은 그런 종류의 나이의 의미를 남기는 방법이었으리라.
해변으로 밀려들어오는 깨끗해 보이는 파도의 소리를 가져왔다.
자, 이제는 구도심 도보여행. 성곽에서 내려다 보던 것과 또 다른 묘연한 느낌을 주는 골목이다. 입구에 널린 귤을 하나 따먹고 싶었다;;
몇개의 넓은 메일도로가 있고 그 사이사이는 좁은 길이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었다. 좁은 길 양쪽으로는 빼곡하게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실제로 이 성안의 구도심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바다쪽 끝에서 등대의 의자에 기대어 잠시 쉬어갔다.
구석구석이 정말 미로같이 되어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출렁대는 마음을 사진 셔터소리로 다듬어 댔다.
저녁시간 무렵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내 애마가 되어준 스쿠터 녀석. 아주 처~음에는 유럽여행도 스쿠터를 타고 하고 싶어했던 나는 듀브로브니크에서 잠시 그 소원을 풀었다. ㅎㅎ
이곳은 나중에 또 와보고 싶다. 나중에 같이 오게될 사람에게, 나는 이곳에 혼자 와서 그 나중을 그려봤노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리고는 같이, 그 반짝이는 아드리아해 만큼이나 그 가까이서 반짝이며 걸어보고 싶다.
웃지말기. 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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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떠나기 전에, 동유럽 관련 영국에서 론리플레닛을 산것을 제외하고 두권의 책을 가져갔었다. 하나는 루마니아 헝가리 등을 둘러본 일본서를 번역한 일러스트 위주의 여행서와 나머지 하나는 '예술의 도시'라는 기행문 형식의 여행서였다. 이 예술의 도시라는 책에 모스타르라는 낯선 도시를 보고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발칸반도의 리틀 터키라고 불리운다는 이곳은 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했고 상징적인 스타리 모스트라는 다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마침 론리플레닛에 사라예보에서 모스타르로 가는 기차길이 멋지다고 추천해 놓아서 아침일찍 기차를 타고 모스타르로 나섰다.
이른 아침의 객차에는 한동안 나밖에 없었다. 대략 직선거리로 70Km 정도 되는 거리를 기차로 두시간 반이나 가야한다고 해서 기차가 아주 낡아서 그럴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것 보다도 길 자체가 험해서 천천히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험한 돌산에 기차길을 건설한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바깥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출발하고나서 얼마후부터 기차는 산 능선을 따라 가면서 아래로 많은 시골마을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낯설고도 친근한 이런 마을의 모습은 난데없이 마음이 설레일 지경이었다. 날이 흐려서 사진으로 그대로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웠음.
기차는 초반 한시간 넘게 높은 산의 중턱을 달렸다. 막히면 뚫고, 높으면 다리를 놓고 그렇게 한시간 가량 가면서 드문드문 시골역에 정차하였다.
어느 역에서 보았던 전쟁중 망가진 객차.
후반 한시간 가량은 옆에 강을 끼고 산아래쪽으로 달렸다. 달리면서 정말 3초마다 터널이 나타나거나, 그 터널안에서 3초만 머무르는 경우가 부지기 수일 정도로, 모스타르로 가는 길에 많은 터널이 크지 않은 뾰족한 돌산을 뚫고 있었다. 강건너 산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모스타르 도착!
아싸 비온다. 동유럽 가는 곳마다 tourist information에서 하는 말이, "이상해요, 3월말에 이렇게 비가 다 오네요..." 아- 나는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더냐?!
택시 요금을 바가지 쓰고 기차역에서 스타리 모스트가 있는 다리로 내려왔다. 이 다리를 중심으로 근처에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론리플레닛에 있던 여행사에 들어가서 숙소정보를 얻었다.
이곳의 첫인상은.. 음, 너무 "예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 하다!"
사실 숙소를 잡을 계획은 아니었는데,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고민하다가 하루 머물다가 가기로 했다. 여행사 아주머니도 '에이 우리동네서 하루 자고가요~' 그런다;;
암튼 private room으로 널찍한 곳을 저렴하게 빌렸다. 주인장에게 포크와 냄비를 빌려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불이 느무느무 약해서 느무느무 뜨뜨미지근한 라면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암튼 밥을 먹고 나와보니, 억수같던 빗줄기가 개어있다. 일단 스타리 모스트 다리로 나갔다.
이곳 구도심의 건물들은 밝은 파스텔 톤의 돌로 장식이 되어 있어서 건물들이 생기있어 보였고, 돌길 또한 아담하고 예뻤다. 생각보다 인상적인 건물들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비가 그치자 관광객이 하나둘 보이다가 우르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다리 양쪽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관광지를 제외한 다리 양쪽의 건물이나 사람들의 모습들이 사뭇 달랐다.
사실 이 모스타르도 보스니아 내전시 격전지중 하나였다. 초록색의 네레트바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눠야 했던 이곳에서, 스타리 모스트라는 이 다리가 주는 의미는 색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었다. 한쪽은 이슬람 사람들이, 다른 한쪽은 크로아티아계 카톨릭을 믿는 사람들과 세르비안계가 살고 있었던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계가 일으킨 내전에서 크로아티아 카톨릭계도 이슬람의 반대편에 서서 싸우게 된다. 아직도 다리의 양쪽에는 양 종교의 상징적인 높은 첨탑이 그때의 대치 형국을 보여주는 듯 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울려퍼지는 코란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말이다.
정말 가파른 어느 계단;; 저 느낌표가 클만 하다.
관광지를 조금 벗어나자, 사라예보보다 훨씬 더딘 재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그저 말을 아끼고 싶은 사진들이다.
"the WAR"..
그래도, 봄은 오고 저렇게 새순도 난다.
동유럽을 돌아다니며 늦은 겨울을 길게 겪다보니 봄이 오는 소식을 깜박할뻔했다. ^.^;
현재 이 모스타르는 너무 작고 예쁜도시다. 관광객이 많이 들어서 부자 도시 되었으면 좋겠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니, 시끄러운 소리가 윗층 주인집에서 들린다. 한참을 참고 들으니, 아 글쎄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소리더라. 아까 밖에서 길을 물어보는데 왜 성을 내지??라고 생각했던 궁금증이 이제사 해소 되었다. 원래든 아니면 그 이후가 되었던, 사람들이 조금 호전적이다.
소화 시킬겸 야경을 시그마 30.4로 찍으니 불빛이 쩌억 갈라져 나왔다. 호호호
이 예쁜 동네는 다음번에 누군가와 같이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가 화사해진 초여름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저 스타리 모스트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맛난 와인을 곁들인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방에 그 흔한 라디에이터도 없다. 추워죽겠다. 코끝이 시렵다. 덜덜덜.
다음날, 나는 그 유명하다던 휴양지! 듀브로브니크로 떠난다.
아 기대기대기대. 그토록 기다려왔던 아드리아 해를 보러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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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출발할 당시 나는 모든 루트를 정하지 않았었다. 사실 일러스트가 멋진 어느 일본 여행서에 나온대로, 아마도 폴란드에서 슬로바키아로 내려와서 헝가리를 지나 루마니아까지 들어가겠거니.. 운이 좋으면 불가리아 까지 한번 들어가 보자.. 이런 심산으로 처음에는 유럽 여행길에 올랐었다. 하지만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의 유대인 지구를 둘러본 영향때문인지, 루마니아의 예쁜 건물이 있는 브라쇼보 같은 곳보다 최근 복잡한 역사를 지닌 구 유고연방의 여러곳을 둘러보고 싶어졌었다. 그래서 어느날 버스에서 잠을 깨어보니, 아침 7시의 사라예보에 있더라.
결국은 궂은 날씨과 무거운 공기로 휴양지 쪽으로 들렀다가 독일로 비교적 일찍 올라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사라예보 - 모스타르 - 듀브로브니크를 지나서 동유럽의 지속적으로 오는 비에 안되겠다 싶어서, 비행기를 타러 스플릿으로 와서 독일로 와버리게 된다. 웃긴건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나니 듀브로브니크 둘째날에서부터 날씨가 좋아졌다. 교통편이 조금 어렵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세르비아, 코소보 지역과 몬테네그로를 향해 꿋꿋하게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사라예보. 나 어릴적 세계사를 배울때만해도 '유고 연방'란 이름이 익숙했던 곳. 대학교 언저리의 TV뉴스에 '보스니아 내전'으로 이름을 기억했던 곳. 1차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되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이 벌어진 '사라예보'. 세계 정세를 논할때 '불안'한 지역으로 꼽았었던 '발칸 반도'의 한 중심에 난 서 있었다.
이곳에 읽어볼만한 글이 있다. 필요한 내용을 발췌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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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 울타리 안에서 살던 사람들이 상대에게 무서운 증오심을 품고 끔찍한 폭력을 자행했던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앞에서 보았던 몇몇 국가들의 독립선포였다. 옛 유고 연방은 3개의 언어, 3개의 종교 그리고 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였다. 여러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수백년간 지속된 민족, 종교 갈등이 마침내 폭발한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포하자 세르비아 공화국 주도의 유고 연방군이 침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유고 내전 초기에는 세르비아 공화국과 나머지 공화국의 전쟁이었지만, 곧 사정이 달라진다. 각 공화국 내의 세르비아계가 독립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문자 그대로의 내전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독립을 선언한 대부분의 공화국은 내부로부터의 전화에 휩싸이게 된다.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포하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세르비아 공화국의 지원을 받는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가 무장 투쟁을 벌이면서 내전 발발 1년만에 보스니아 지역의 70%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한다. 보스니아에서의 내전은 민족 갈등 뿐 아니라 종교 갈등의 측면도 강하다. 이 지역의 인구분포를 보면 그리스 정교를 믿는 크로아티아계가 18% 정도이다. 각 분파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그리고 민족의 이익을 앞세워 극렬하게 맞부닥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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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연방의 해체와 보스니아 혹은 코소보 사태에 대한 글을 검색하면 할 수록 사실 좀 복잡했던 것이 사실이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구 유고연방의 중심에 있던 세르비아 공화국이 일으킨 국가전쟁에서,
각국의 세르비아계가 동조하고 세르비아 공화국이 이를 지원하게 되여 결국 국가내 민족분쟁으로,
또한 이러한 민족 분쟁 가운데에 그동안 쌓여왔던 종교에 대한 분쟁으로 까지 확대된,
아주 비참한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유대인을 모두 잡아들였던 2차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는 세르비아계의 다른 인종에 대한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다. 그의 일환으로 남자는 죽임을 당하고, 낙태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면서 이슬람의 여자를 범하는 대목이 가장 극에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웃긴건, 이 모든것이 불과 10년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사실 낯선 이방인으로서 이곳의 뿌리깊은 갈등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크로아티아-세르비아계, 알바니아계-무슬림.. 등과 같이 나라-인종-종교가 모두 뒤섞인 이 지역에 사람들이 현재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이곳은 아직도 온전히 평화가 정착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평화적이어 보인다고 할지라도, 또다시 그 뿌리깊은 갈등을 내부로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족이 뭐길래, 종교가 뭐길래.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소의'를 저버린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왜 아직 어린 세르비아계 군인이 전쟁중에 다른 종교의 친구에게 총을 쏘아대던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넓은 '대의'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보통, 정도나 등급의 차이로 사람들은 저버릴것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임의로 판단하긴 하지만 말이다.
발칸반도라는 세계의 중심부는 아닌, 비교적 최근의 전쟁은 후에 역사속에서 어떠한 조명을 받고 어떠한 결과로 그려질지 궁금하다. 세르비아 공화국이 전쟁을 시작한 것이지만, 3자의 입장에서 '전쟁'이라는 것에 있어서 이런 다름에서 출발한 전쟁의 선악구분이 참 어려워 지는 것을 느낀다. 그저, 전쟁은 안쓰러운 것이고, 내가 속한 입장이 있는 것일뿐. 탈레반과 항일 광복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뭐 이런 어리석은 질문 말이다. (실제 차이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다.) 답은, 현실속에서는 결코 바뀔수 없는 나의 입장..이란게 있다.. 이겠지?? 그래서 광복군은 좋고, 탈레반은 나쁜가?? 만약, 세상을 아우르는 신이 있고, 그 신이 데려가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공간이 있다면 대체 누굴 데려가야 한단 말이더냐. 이것은 믿음의 여부로 공간을 가르는 특정종교에서보다 훨씬 원초적인 문제다. 바로 공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말이 잘도 샌다;;)
그냥 그만큼 망연자실하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곳이 이곳,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였다.
암튼.
숙소를 잡고 짐을 푼다음 날이 잔뜩 흐린 길을 나섰다. 무슨 홈스테이 같이, 화장실과 샤워실을 쉐어한 그런 private room을 잡았다. 꼬득꼬득한 영어발음을 하던 travel agency 아주머니와 숙소까지 안내를 해주던 이빨 빠진 아저씨가 생각난다. 전후, 이런저런 후유증으로 딱히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니면서 나를 숙소에 데려다 주었다.
이곳은 카톨릭 성당.
이곳은 이슬람 모스크.
최근의 내전으로 인해서인지, 많은 건물의 곳곳이 이렇게 벌집이 된 상태로 그대로 건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의 흔적을 촬영하는 것이 혹시 이곳 사람들이 보기에 상처를 들추는 일이 될까 싶어서,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Latin Bridge. 국립도서관에서 강변을 따라 이곳으로 오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가브릴로라는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한,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시초가 되었던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론리 플레닛에 케밥이 이곳에서 유명하다고 써있었다.
이 곳의 케밥은 내가 알던, (영국에서 먹었던) 터키식의 케밥과 달리, 다진고기를 떡볶이 떡처럼 만들어서 양파를 넣어주는 방식이 제일 많았다. 사실 저거 먹고 나서까지도 금방 저것이 케밥인줄 몰랐다;; 무슨 특산요리 이름이 Cevapi 인가 했네..
시내는 생각보다 좁았다. 구석구석 돌아다녀도 한두시간이면 모든 골목을 구경할 수 있을 법 했다. 시내 가운데에는 낮은 건물의 기념품가게가 줄지어 있었고, 사이사이 모스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도심을 나와서 외곽을 걸어다녀 보기로 했다. 국립 도서관 앞에서 둘러보다가, 길건너의 언덕과 멀~리 보이는 호텔위의 전망대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문득 길을 건너려는데, 도서관 샛긴 건너편에서 히잡을 쓴 여인과 전쟁의 상흔를 한 시야에서 볼 수 있었다.
길을 건너자 사람이 한움큼 사라졌다.
관광객님아~ 요기를 봐요..라고 말해주는 것 보다, 골목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올라갈때는 아무생각없이 올라갔는데, 저 언덕의 끝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깜짝이야.
묘지를 가까운 곳에 두고 산다.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거나, 혹은 죽음이라는 것이 익숙해져서..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언덕을 내려와 시내와는 반대편 길로 한참을 걸었다. 시외각으로 빠져나가는 도로위로 마땅히 인도가 없었다. 아마 사람이 올라가는 길은 따로 있나보다.. 하면서 헥헥.. 오르막길을 올랐다. 오르는 길에 보았던 언덕위의 집들.
저 묘지의 우측 끝에 아까 서성거렸었다.
분홍색 집 한채를 보고, 쉰들러가 보았던 빨간코트의 여자애가 생각났다.
드디어 올랐다~
사실 올라오면 view가 좋을 거라고 내심 기대했었으나, 결과적으로 훨씬 더 많은 공동묘지 place만 찾아버렸다;;
꼬마아이를 데리고 올라온 어느 부인과, 노는 아해들로 보이는 몇몇이 질척거리는 정상위에서 머물고 있었다.
다시 도심길로 내려왔다. 내려오늘 길은 올라왔던 길보다 훨씬 안가파르고 훨씬 가까운;; 길이었다. 모스크의 빈도와 차림새로 보았을때, 이곳의 이슬람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생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무얼 믿는다기 보단, 그 안에서 존재해야되는 이유 자체가 그들의 생활인거다.
내려오는 길에 작은 슈퍼에서 귤4개, 사과1개, 물 1.5리터를 1유로 주고 샀다.
다시 도심으로 내려와서, 근처 호스텔의 바에 가서 인터넷을 잠깐 사용하고, 맥주를 한잔 마셨다. 나오니 그나마 날이 개고 있었다.
다시한번 시내구경 고~고~. 이사진 마음에 든다 ㅎㅎ
다음 목적지를 위해 travel agency에 들렀다. 사라예보 교통편 올림.
사라예보에서 모스트르로 가는 기차의 풍경이 좋다는 론리의 말을 믿고, 모스타르..라는 낯선곳으로 다음날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건물은 내 숙소건물.
목적을 가지고 발사된 총에는 맞힐 대상이 있었다는 말이다. 총알 구멍 앞에 멍하니 서있다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나뭇가지에 잎이 몇번 나왔다 떨어져 갈수록, 그 총알 구멍의 깊이도 얕아지겠지. 나같은 관광객이 폐허와 같은 건물을 보고 쓴웃음으로 지나칠때, 이곳 사람들은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재건에 온힘을 쏟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역설적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이 날밤, 독주를 한잔 마시고 잤다. 그 왜, 슬로바키아 군인이 가르쳐 준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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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에서 깨끗한 기차를 타고 한시간 남짓 달려서 빈의 남부역에 도착했다. 원래 크로아티아를 가는 기차가 빈에서 출발해서 브라티슬라바에서 이곳으로 왔지만, 열차시간 미스로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로 가는 기차가 오전 5시 넘어서 있는 한대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결국 당일 이동은 포기하고 하루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남부역 tourist information의 퉁퉁한 아저씨는 참 불친절했다. 숙소정보를 물어보니 아무말 없이 손가락으로 브로셔가 있는 곳을 까딱-하고 가리켰다. 내 다음차례의 백인에게 친절했던 것을 보고 컴플레인을 할까 하다가 참았다. 동양인을 뭘로보는 거냐?! 음. 흥분했다. 암튼, 다음날 일찍 나오려면 남부역 근처의 숙소를 잡아야 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도통 만만하게 가볼 만한 곳이 없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결국 서역 근처의 한인민박행.
빈은 미리 준비해간 자료도 없고, 사실 계획에 없던 도시라 무얼 둘러봐야 할지 몰랐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과 음악회가 유명한 이곳. 일단 짐을 내려놓고, 숙소에서 받은 지도하나 달랑 들고 길을 나섰다. 부다페스트에 이어 날씨는 맑아서 그래도 다니기가 좋았다.
서역에 있던 샌드위치 가게. 메뉴가 뭔지는 모르지만 하나 집어먹고선 맛나서 으하하하 거리면서 나중에 한번 더 사먹었다.
부랴부랴 했던 웹검색에서 봤던 코스를 걷기로 하고 시청청사 건물로 지하철을 타고 나갔다.
센스 반점의 흡연 벌금광고.
큰 길가에서 시청을 관통해서 뒷쪽으로 나갔다.
와, 이것이 그 유명하다던 시청건물. 건물은 완전 멋있었지만, 이젠 슬슬 옛스런 건물에 감흥이 덜해간다.
여행중에 시기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풍성한 나무의 모습을 담지 못한 거였다. 여름이 되어 뭉글뭉글 거리는 나무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이 길을 걷으면, 같은 길이어도 또 다른 기분을 선사해 줄것 같았다.
길을 내려와 호프부르크 왕궁에 도달했다.
역동적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크게 느껴졌던 카를4세의 기마상 앞에서 꽤 한참을 머물렀다.
슈테판 성당을 보기 위해서, 헬덴 광장을 돌아나온 곳으로 계속 걸어갔다. 빈의 왕궁을 비롯한 건축들은 부다페스트의 그것들 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길도 널찍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이 합스부르크 왕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왕가의 대표하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그 막내딸 마리 앙뜨와네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얼추 상당히 번화한데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인지를 잘 모르겠네... 싶었던 영화는 거의 이 합스부르크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찍었더라.
신왕궁의 이 조각상의 사실적인 묘사는 좀 섬뜩했다.
암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슈테판 성당으로 가는 번화가에는 역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사람들을 사이로 한낮의 산책을 즐기던 중, 'Bitte foto~"라고 외치는 귀여운 여자아이 두명을 찍어줬다. ^.^
슈테판 성당. 헉. 생각했던 것보다 웅장하고 장식이 화려했다.
성당 입구 기준 좌측의 첨탑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랐다. 생각보다 빈은 크고, 생각보다 빈은 작은 도시 모습을 보여주었다. 뭐랄까, 역사는 위대했고, 현재는 아기자기 하다고나 할까??
내려오면서 성당안에서 초를 하나 구입하여 불을 붙여놓고 돌아섰다. 그때 소원을 빌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게 되어버렸다.
음. 아쉽게 되어버린 기원이 잦아질 수록 소원을 비는 마음이 조금 덜 경건해져 가지만서도, 대략 10년전 어느 밤 묵묵히 떠올렸던, 욕심도 많은 내 다섯가지 소원 중, 세개나 이루어졌었던 기억 하나 만으로(나머지 두개 중 하나는 노력중이고, 하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이후 트레비 분수 이런데서도 동전 꼭 던진다. ;) 나는 여전히 '소원을 빈다'는 것은, 쉬이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과도 같은 내안의 공간에, 특정 사건에 대하여 언젠가는 발현될 능동성을 심어놓는 것이라고 믿는다.
오른쪽이 내꺼!
오페라 극장. 건물을 못나게 지었다고 해서 건축가가 자살을 할 정도 매도 당하던 건물이 예전 빈의 유적들이 소실되었을 당시 복원 1순위로 뽑혔다는 아이러니 함을 간직한 건물이다.
이런 친절한 시스템을 우리의 거리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빈에 왔으니, 비엔나 커피 한잔!
날은 저물기 시작했고,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우연히 비어있는 가족실에 짐을 옮겨 혼자 머물수 있었다. 나이스!
사실 처음에 빈에 머무르게 되면서, 5년전 머물렀던 짤쯔부르크가 생각났었다. 다정다감했던 건물들과 그 아담했던 도시의 분위기를 생각했으나, 빈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있었다. ^.^;; 빈은 부다페스트와 닮았으며, 그 권력 또한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이 두 도시가 20세기 격동의 시간을 거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웹검색을 해보니, 빈 또한 야경이 멋있던데. 해가 진 직후쯤 숙소에 도착해서 다음 일정을 짜느라 다시 못나가본 것이 아쉽다. 숙소아저씨가 크로아티아로의 이동에 있어서 기차보다는 버스를 추천해 주었다. 실제 가격도 Euroline이 기차의 반값이었다. 사촌형네서 생각보다 더 머물고, 빈에서도 하루 머물게 되어 일정이 빠듯할 것 같았던 난 고민 끝에 자그레브가 아닌 훨씬 남쪽의 사라예보로 바로 직행 하기로 결정했다. 부랴부랴 자그레브의 민박집에 보내놓은 메일을 취소하고 사라예보로 가는 무려 13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온라인으로 예약하려 했으나 잘 안되서 다음날 그냥 오프라인으로 가서 사기로 했다.
늦은밤 한참 웹질중인 내 옆으로 술파티가 벌어졌다. 한국민박의 요즘 트렌드인 듯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재미 또한 이들에게는 여행의 재미인 듯 했다. 실제로도 이들에게 들어보니 여행을 다니는 동안만 커플이 되거나, 혹은 그냥 숫자맞추어서 동행하거나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듯 했다. 한잔 하시라고 참하게 권하는데 웬지 안끼면 왕따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열살은 어려보이는 친구들 사이로 잔을 들고 앉았다. 실제로 아래 사진 속의 친구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즘의 유럽여행은 굳이 남녀관계를 떠나서도 여러종류의 일탈이 이루어 지는, 현실위에 떠있는 그런 공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나도 5년전 아무생각없이 유럽에 왔었지.(사실 난 입사로 바빴고, 남들이 세워놓은 계획에 숟가락만 담근 경우긴 했다.) 그때는 차로 다니면서 남들이 못가본 곳을 가보는게 좋았다. 5년전보다 지금의 좀더 나이들어 다니는 내 모습은 어떤가 그냥 잠깐 생각해 봤다. 지금은 낯선도시에 하루이틀 머물면서 겉보기로 사진을 찍고 기억으로 남기는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좀 반성했다. 그러게 여행의 중반을 넘어가면 습관적으로 아무생각없이 돌아다니게만 되는게 못내 아쉬웠나 보다. 그래서 더욱 남들이 덜가본 곳을 빠득빠득 가려고 했나보다.
암튼 어린 친구들과 술한잔 마셨다. 일본 녀석에게 한국 비속어를 가르쳐 주던 한 재미난 친구가 있었다. 늦은밤 군대가기전 마지막 여행이라면서 아쉬움을 달래던 한 친구도 생각난다. 이사람 저사람이 자리를 바꿔가면서 숙소에 있던 사람은 다본것 같다. 처음에 그들이 모두 같이온 일행인줄 알았다. 전날 술먹으면서 친해진거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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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에 지하철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사라예보 행 버스표를 구입하러 나갔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사진정리를 하고 노트북에 이런저런 글을 적은다음, 민박집 홈페이지에 올릴 사진을 찍어 주고는 신라면 4개를 답례로 받아서 좁은 배낭에 챙겨 넣었다.
한시간이나 일찍 남부역 옆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렸으나, 버스 놓칠뻔했다;;; 아무도.. 남부역의 반대편으로 돌아선 외진 주차장에 먼 곳으로 떠나는 버스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짐들고 막판 20분 완젼 쑈했다. 표파는 아가씨는 왜 이상한 곳을 가르쳐준거야;;;
장장 13시간에 걸친 여행. 오스트리아 out - 슬로베니아 in - 슬로베니아 out - 크로아티아 in - 크로아티아 out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in까지 여권꺼내는 재미에 1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하면 믿을사람!!
사라예보에 도착한 것은 폭우가 쏟아지던 오전 7시.
환전을 했다. 저 예쁜 동전 하나면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시내로 들어가려고 짐을 메고 우산을 받쳐들고 나오는데,
버스터미널 맞은 편 건물이 보였다.
그 3층짜리 건물 한켠에 수백발의 총탄 자국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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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이게 웬일이냐. 동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날이 맑았다. 비가 오고난뒤의 청명함이 느껴지는, 그래서 오랜만에 힘이 뽀짝뽀짝 나는 그런 아침이었다. 부지런히 부다페스트로 가려고 했으나, 이런 그날 서머타임 적용으로 인하여 한시간이 늦춰졌다. 얼른 아침을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사촌형의 지인도 그곳에서 지낸지 얼마 안되서 길을 모두 알고 있던게 아니라서 열심히 부다페스트로 네이게이션에 의존해서 고!고!
날씨 좋고~ 바람도 좋고~ 아.. 이날 오랜만의 좋은 날씨에 설레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동유럽 내내 비 또는 눈이었다.)
헝가리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일정기간 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을 구매하여야 했다. 가장 짧은 기간의 이용권을 구매하여 차 앞에 샤샥- 붙인후 부다페스트로 직행. 폭스바겐 웨건은 참 잘도 달렸다. 그렇게 두시간쯤 달려 그리 멀지 않은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같이 이야기 하느라 금방 시간이 흘러버렸다.
부다페스트도 날이 맑았다. 그리 청명한 하늘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의 햇볕을 느끼기에는 충분할 정도였다. 나나 그 지인분이나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다니는 편이 아니어서 페스트의 구시가지 근처에 차를 세우고,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브라티슬라바와는 정 반대로, 부다페스트의 첫인상은 상당히 남성적이고, 시원시원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예전의 권력이 강성했던 왕조의 수도로서의 위엄이 느껴지는 그런곳이었다. 툭하면 멋진 건물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우연히 지난곳은 홀로코스트 박물관이었다. 2차세계대전때 헝가리 또한 많은 이주와 학살을 당했더 당사자여서 그런지 박물관으로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서 일단 센타의 tourlist information으로 향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붐볐다. 오, 이곳은 상점이 많고 유난히 사람들이 많다 했더니 유명한 Vaci 거리였다. 왜 브라티슬라바만 온통 조용했을까..??
근처 상점에서 어라 히틀러 피규어가 있네.. 싶더니만, 역시 이곳 사람들은 특히나 히틀러를 싫어하겠다..란 생각을 했음.
이런 멋진 건물이 유난히도 많은 부다페스트 거리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계란들.
Vaci거리를 지나 거리의 끝에 이르니, 광장에서 기념품과 음식을 파는 제법 널찍한 곳이 나왔다. 매주 일요일 이곳에서 이렇게 장이 선다고 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데 민속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관광객들과 어우러져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여자아이 특유의 샤우트 목소리로 합창을 하면서 구석구석을 다녔다.
밥을 맛깔나게 해치운다음, 환전소에 들렀다. 오 1유로에 250포린트면 환율 괜찮군 하는 생각으로 환전을 하고 나니, 1유로당 200포린트가 안되는 것이다! 유로를 '파는가격'이라고 코딱지만하게 써놓고서는 가격만 큼지막하게 써붙여 놓은 것이었다. 아, 아무리 관광객이 늘고 있는 부다페스트의 오늘이라지만 이거 환율 너무 후려치신거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론리플레닛에 나와있는 환율과 가장 차이가 큰곳이 헝가리이다. 그만큼 관광이 줄을 잇거나, 나라가 부자가 되어가고 있나보다)
암튼 information에서 지도를 구한후 다누(빈의 도나우강의 지류인듯)강변을 따라 의사당으로 향했다. 올림픽대로 처럼 고속화 도로가 아닌, 일반도로 다음의 전차길만 지나면 바로 강변이라 강가로 접근하기가 쉬웠고, 그래서 그런가 편한차림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는 등, 한낮의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강건너 건물을 그리는 있는 아저씨도 마주쳤다.
강변을 따라 걷다보니, 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을 기억하는 장소를 지났다. 이렇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한켠에 묻어두고, 그들은 독재정권이후 또다른 변화의 장으로 나아가나보다. 역사란 참으로 많은 사람이 개입되는 하나의 이야기다. 그속에서 크레딧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언듯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일단 의사당을 기점으로 페스트 지역의 구경은 끝났다. 특정 건물들을 돌아보는 것 보단 이렇게 산책하듯 걷고 또 걷는 것이 난 더 좋다. 사람들 얼굴을 구경하고, 자질구레한 그 나라의 표정을 구경하는 것이 더 좋다.
전차를 타고 주차시켜놓은 곳으로 가려는데, 유모차 전용 승하차를 위한 공간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전차는 강변을 따라 갔다. 늦은 오후의 눈부신 강물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대~충 짐작한 정류장에 내려서 차로 걸어들어왔다.
큰길에서 벗어난 길로 걸어들어오면서 발견한 녀석들.
자, 이제 부다 차례!
우선 엘리자베스 다리를 건너서 왕궁아래 주차시켜놓았다. 엉뚱하게도 부다 왕궁은 안가고, 왕궁으로 올라가는 길 위에 있던, 지인이 작년여름 들렀다던 지하동굴로 들어갔다. 참고로 부다페스트에는 지하동굴에 관한 우화가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22km짜리 지하동굴도 발견되는 등 이 동네는 참 재미난 동네다. 이 동굴은 유사시 비상탈출을 위한 것으로, 귀족들의 땅굴파기 취미생활의 일부라고 한 책은 소개한다. ('부다페스트'에서 참고, 김성진 저)
이름하야 "Labyrinth of Buda castle" 사진에서 보이는 지도와 같은 미로의 각 방에, 조각품이나 특이한 작품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정말 역사 물품 전시인줄 알았는데 속았다. 으흐흐흐
입장료를 지불하니, 램프를 하나씩 준다. 사람이 별로 없었던 이곳을, 램프 이외의 다른 조명 하나 없고, 길이 어디로 통하는 지도 모르는, 어둡고 축축한 동굴속을 걸어다니는 것, 오호호 지금 떠올려보면 이만한 피서가 없다;;;; 램프도 그리 밝은 녀석이 아니어서, 1미터 앞도 잘 안보이는 동굴을 한발짝한발짝 탐험하는 기분으로 다녔다.
이 곳에서 가장 기이했던 전시물. 4방향의 꼭지에서 와인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방 한가득 와인의 시큼한 냄새로 가득찼다. 오! 이건 정말 공포영화스럽잖아!! 덜덜덜
역시 사진에서는 '빛'이 중요하다. 마음에 드는 사진. 지인분의 분위기가 제일 잘 잡힌 사진이다.
동굴을 빠져나오니 아이쿠나 공기가 상쾌하다. 어부의 요새에 들러 남들하듯, 찰칵찰칵 사진찍으며 놀았다. 어부의 요새는 참 낭만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너편의 의사당건물도 한눈에 들어오고 다른 페스트 지역도 한눈에 볼 수 있다.
해가 지고 있다. 헝가리는 야경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야경을 찍기위해서 게레르트 언덕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길을 헤메다 일방통행 몇개 역주행 해서 겨우 찾아간 그곳에는 인상적인 기념물이 우뚝 서있었다. 밤이 되니 사진을 찍는 손이 시려울 정도로 바람이 차다. 하지만 야경은 우리를 실망 시키지 않았고, 바리바리 싸간 삼각대를 이용해서 야경을 몇컷 찍었다. 니콘의 아빠번들 렌즈는 조리개를 아무리 조여도 빛갈라짐이 안나온다는 걸 저때 처음 알았다. 담번에는 꼭 빛이 샤샤샥 갈라지는 렌즈를 들쳐메고 가서 더 예쁜 야경을 찍고 싶어졌다.
어느새 11시가 훌쩍 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내 운전 차례였다. 200km가 조금 넘는길이지만, 이래저래 갈길은 바빴다. 피곤해서 혹시나 졸릴것 같았는데 한개도 안졸리더라. 고속도로를 타고 서둘러 돌아오는데, 높낮이도 없이 직선 도로가 많아 엑셀을 끝까지 밟아보니 190km/h 까지 올라간다. 그동안 최고 시속은 2002년 로마로 가는 고속도로에서의 어느 내리막길에서 잠깐 올랐던 175km/h가 최고 시속이었는데 경신했다. (그당시 로마에서 175km/h가 잠깐 나왔을 당시 부들부들 헨들을 잡고 있던 내 옆으로, 우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페라리가 옆으로 쌩- 하니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이뭐..) 차가 생각보다 잘 나갔다.
동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거의 유일하게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부다페스트의 인상은 선명하게 남는다. 과거의 권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동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으며, 아마도 기존의 동유럽의 이미지에서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만에 같이 다녔던 지인과의 출사도 충분히 즐거웠다.
원래 그날 밤 일찍 돌아와서, 바로 빈으로 가는 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야경 찍느라 늦기도 했고, 또 피곤해서 푹 자버렸다.
다음날 아침, 사촌형 가족에게 인사를 드리고 빈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형수님께서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셨다. 감사합니다.
어익후, 여행자가 이렇게 호강하면 버릇 나빠져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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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타 2007/08/25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헨님의 작문 교실.
과목번호: HEN101
과목명: 헨수사학의 활용과 이해
선수과목: [HEN100]공감형 대화법 이론과 실습
비고: [HEN201]헨스타일 정물 사진 촬영법, [HEN203]낭만 가득한 블로그 제작 및 운용. 이상의 과목을 수강시 선수강 필요
경고: [HEN402]메떡 난장 사진 촬영법 수강생은 수강 금지
실러버스:
wk1~3: 수사1 감탄사+용언 순서의 활용
용언 앞에서 감탄사를 이용해 수식하는 수사법. 특히 동사 보다는 형용사에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
e.g)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은 어익후~ 정말 힘들어~
wk4~6: 수사2 사건의 서술 + 감탄사 + 감정 표현 순서의 연결 수사
사건의 기술문과 감정 표현문을 복문으로 연결 시 감탄사 삽입을 통한 수사법
e.g) 퇴근하고 집에 와 침대에 누워보니, 어이쿠나~! 졸리구나야~
wk7~9: 수사2 문단 끝맺음 시 추임새 문장 삽입
문단의 끝은 발랄한 느낌의 문장으로 추임새를 넣어줌. 삽입문은 감탄문이나 명령문이 적당.
e.g) -전략- 오늘 업무는 이렇게 마쳤다. / 그럼 이제 다들 헨형과 함께 퇴근해 보자구~!
레퍼런스:
1)브라티슬라바 성에 올랐다. 으하하하 그 넓은 성에 단 세명만 보인다.
2)동굴을 빠져나오니 아이쿠나 공기가 상쾌하다.
3)오랜만에 외출하지 않은 12월31일 가족과 함께 푸짐한 저녁을 먹었고,
그렇게 다다다다사다다다다난했던 2006년을 그렇게 평안하게 마무리 하였다.
2007년, 어디 이제부터 촛점좀 맞춰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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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아 2007/09/17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경이 정말 근사한걸-
빛이 조금 더 갈라져서 별모양으로 찍혔어도 괜찮았을듯~
그래도 저리 깨끗한 야경도 똑! 떨어지는듯한 느낌이 멋지다!
+ 난 저 신발들.. 비둘기로 잠시 착각을 ㅋㅋ -
짱아 2007/09/1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사진계의 종착역 인물사진이라~
정말 찍기 어려운게 인물사진이라던데, 인물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래 ^^
오빤 워낙 잘 찍어서 근사하겠는걸!
어여 지르고 신고식해죠 ㅋㅋ -
빗줄기를 뚫고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사촌형 내외 이외의 다른 가족분들은 이곳에서 식품점을 운영하고 계셨고, (우연히 안 사실이지만 먼저 묵었던 크라쿠프의 한국인 민박도 이곳 식품점에서 한국 식품을 조달받는 다고 했다.) 사촌형의 설명을 따라 비교적 쉽게 이곳을 찾아올 수 있었다. 형수님이 잠깐 들러서 라면을 끓여주셨다. 으하하하 맛나!맛나!
요녀석은 둘째 사촌 조카 보군이. 지난번에 한국에 왔을때는 보질 못했는데, 첨 보는 요녀석의 귀여움은 장난아니었다!
이 녀석과 노닥노닥 거리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이 녀석 완전 에너자이저다. ;) 이녀석의 사진을 찍어서 형수님께 드렸다.
이른 시간에 일단 사촌형 집에 와서 짐을 풀었고, 마음을 푹 놓은 탓인지 이날은 형수님이 차려주신 푸짐한 저녁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첫째 조카인 관보와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난 이 녀석의 애기일적 기억만 나는데 훌쩍 커버렸다. 몇년전 초등학교 3학년때 한국인이라고는 슬로바키아 전체에 8가족만 있을때 이곳에 와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훌쩍 커버린 조카녀석과 저녁을 보냈다. 아마 사촌형도 나를 이렇게 느끼며 보아오지 않았을까. ^.^
아~ 오랜만에 먹어보는 새콤달콤함~ 형수님 요리솜씨 쵝오! budget traveller가 너무 호사스럽게 대접을 받았다. 냐항.
다음날 여전히 비가왔다. 집 뒷편의 마당. 서울시내에 딱 저만큼만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형수님을 따라 브라티슬라바 한인교회인 은혜교회라는 곳에서 바자회 하는 곳에 나갔다. 바자회때 사촌형네 지인들을 많이 만날 줄 알았다면 면도도 좀 하고 깔끔하게 나갈걸 그랬다. 사람들이 초췌한 여행객에 허걱 놀랬을것 같다. 재외 한인사회를 아주 조금 느껴볼 수 있었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카메라와 혹시 돌아올때 필요한 이곳 주소를 들고 토요일 오후의 브라티슬라바 시내거리를 나섰다. 아니 토요일인데!!!! 거의 모든 상점이 닫았다. 아차차 우산을 안가져 왔다. 비가 조금 거세졌다. 맥도날드와 몇몇 레스토랑 빼고 가판대 조차도 연곳이 없는 이 암울한 곳에서 어디서 우산을 사야하는지 한참 헤메고 다녔다. 결국 멀리 보였던 테스코에 가서 구입하였다.
아무리 비가 온다지만 토요일 오후의 강남역을 생각해 보면 참.. 다르다;; 참고로 이곳이 쇼핑이 밀집된 지역이었다.
대도시를 제외한 보통의 유럽의 도시는 "구도심" 관광 시스템이다. 옛스러운 곳을 보존시켜놓고 그곳을 관광 거점으로 주변에 수많은 소비를 위한 가게를 밀집시킨다. 보통은 그 구도심이 그리 넓지가 않고 도보로 이용 가능하다는 점이 특색이다. 그리고 성당 내지는 성이 그 구도심의 정점을 이룬다 ^.^; (우리나라도 관광을 위한 아름다운 거리를 만든다고 하던데, 이쁘게 좀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곳 브라티 슬라바의 구도심의 특색은, 바로 길거리 조형물이다. 길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섞이는 저런 형태의 작품이 훨씬 더 이 거리를 보다 생기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물론 토요일 오후 길거리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하수구에 빠지는 유명한 녀석도 있다고 했는데 아쉽게 발견하지 못하였다.
은행에 붙어있는, 오! 남다른 금지품. 총의 압박;;
은행과 커피의 조합?? 하지만 궁금증을 풀어줄 open 표시는 어디도 없다;;
St. Martin's Cathedral의 길 안쪽의 무너질듯 한 건물의 유리창에 고흐의 흔적들로 치장을 해놓았다. 비가와서 우산을 받쳐들고 사진을 찍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지만, 이곳 사진을 제대로 찍어볼 껄 그랬다.
아직은 매마른 나뭇가지에 쌀쌀한 비는 내리고, 앞에 한무리떼의 외국인 관광객이 지나갔다.
자 골목을 돌아, 멀리 보이는 브라티슬라바 성으로 가자. 저곳은 아마 합스부르크 왕가의 별장(?)격인 곳이었다지?? 주변국들을 보면 슬로바키아의 역사도 그리 순탄했을 것 같지만은 않다. 그냥 비가 오는날 사람도 적은 이 작은 도심의 색이 짙어져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어느 한 까페에 들렀다. 으하하하 기괴하다. 홀 한가운데는 마치 윗층에서 빠지다 만 듯한 사람의 형상이 있고 여러 눈길을 끌만한 녀석들이 벽에 가득히 매달려 있다.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 맥주한 잔을 주문했다.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고, 결국은 보내지 못한 편지도 쓰고, 일기도 적었다.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주인장 둘이 내 카메라와 작은 고진샤 노트북을 신기한듯 와서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닭이 먼전지 달걀이 먼전이 모르겠지만, 원래 토요일에는 상점들도 문을 닫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댄다;; (테스코만 붐볐다.)
낯익은 음악의 굉장히 올드한 버전이 나오길래 슬로바키아 노래냐고 물어봤더니 40년전에 녹음한 슬로바키아 노래랜다. 계속 틀어대는 노래가 아주 오래된 노래들이라고 했다. 주인장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나오는 길에 안쪽의 바 테이블로 가서 데킬라 두잔을 마셨다. 내가 낯선곳에서 혼자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내가 '사람'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면 이곳에 눌러앉아서 그로테스크한 주인장들과 기이한 이야기를 한참 더 나누었을 법하다.
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참 궁금하다.
항상 정리를 하러 여행을 떠나지만, 늘 정리가 안된채로 돌아오지만,
또 언제 정리가 필요했었던 듯 살아간다.
브라티슬라바 성에 올랐다. 으하하하 그 넓은 성에 단 세명만 보인다.
앞쪽의 구도심의 건물과 멀찍히 자리잡은 현대식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브라티슬라바는 작고 낡았지만, 화려하지 않은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구도심을 비롯 근저 지리를 외울만큼 걸어다녔다. 그 허름한 론리플레닛 지도를 보고도 이젠 잘 걸어다닌다.
대통령 궁을 보기 위해서, 다시 걸어서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비는 멈췄고 도시는 고독했다.
짜잔~ 이곳이 대통령궁. 대로변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특별한 경비도 보이지 않는 이곳은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세부장식 한번 화려했다.
이곳 근처에서 간단히 먹을 과일과 장을 본 후, 물어물어 버스를 탔다. 영어가 간혹 통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대부분 적어온 주소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곳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동네 할머니, 버스기사 아저씨 등등 몇몇에게 물어봐서 해질녘에 이상한 병원 앞에서 내릴 수 있었다.
형집에서 내가 잤던 방의 창밖으로 빠꼼히 보이던 인상깊었던 어느 건물의 간판이 보이던 방향을 쫒아서 겨우 집까지 걸어들어올 수 있었다.
조금은 무거웠던 비오는 브라티슬라바의 관광 종료. 사실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외국으로 찾아온 형님댁에서 조금더 머물기로 하고, 다음날 그곳에 있던 형수님의 친척 한 분과 동행해서 부다페스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미놀타 7D를 얼마전에 구입했다던 그분과 같이 부다페스트 '출사'를 다녀오기로 한것이다. 흐흐 사촌형님이 '차'를 제공해 주셨음. 오호호 내일은 드라이브다!
형과 오랜만에 둘이 맥주한잔 하면서 가족이야기를 나눴다. 먼 타국에서 가족 이야기는 항상 한켠이 뽀얗게 서려오는 종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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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프라드의 호텔을 나와 일단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찾아서 큰길로 걸어나갔다. 기차역이 어딘지 물어보는데, 영어로 물어보면 일단 사람들이 외면.
물어보는 과정이 : "Train Station??" --> "칙칙 폭폭 Station??" --> 제스처로 기차를 그림 --> 결국 그림을 그려서 물어봤다. 으하하.
아침부터 짐들고 한참 걸어서 진땀이 바작바작. 대체 표지판이 없다. 정말 의외의 건물로 보이는 곳에 기차역이 있었다.
시간에 맞춰서 승강장에 서있는데, 누군가 담배를 빌리러 온다. 돌아오니 영화에서 조폭으로 나올법한 뽀스의 스타일을 지닌, 한쪽 눈이 하얀;; 사람이 서 있었다. 담배를 빌려주고 나니 계속 주위를 맴돈다. 이 사람 뭐지??
질리나로 떠나는 기차에 올랐다. 대략 3시간 정도 걸리는 듯 했다. 기차는 우리나라에서 타던 열린 공간이 아니라 4명씩 앉은 칸막이가 있고 한쪽으로 긴 복도가 있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까 하얀눈의 일행은 세명으로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건장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칸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같은 칸의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이 친구와 우연히 말을 트게 되었다. 이친구는 그곳나이로 서른둘의 군인이라고 했다. (군인이라고 했을때 속으로 얏호!를 외쳤다 ㅎㅎ) 시리아에서 일하고 있으며, UN에서 파견된 부대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휴가에서 돌아오는 길이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깥은 세명은 그대로 옆칸 정도에서 이쪽을 흘끔거렸다. 나는 말이 통하는 이친구를 통해서 역무원을 불렀다. 역무원도 많이 본 녀석인 듯 다른 곳으로 쫒아버렸다. 이 친구 말로는 저런 도둑들이 슬로바키아의 큰 문제라고 했다.
암튼 나를 주시하던 도둑들을 쫒아내고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돌입했다. 선한 초록눈을 가진 이친구는 자신의 카메라에 있는 아내와 아이 등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참 귀여웠다. 그리고 일하는 사진을 보여줬는데 다양한 인종이 섞인 그 부대에서의 사진들과, 러시아산 기관총, 폴란드산 권총 등등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 복잡한 제원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원래 자신의 아버지 이전으로는 헝가리 국적의 사람이었는데, 그 세계대전 이후 나라가 분할되면서 자기는 슬로바키아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표현을 빌리자면 'war is shit!'라고 하더라. 실제로 살고있는 동네도 헝가리와 접경한 지역이었다. 그쪽이 특히 문제가 많은 지역이라고 했다. 사람이 중요하지 국적은 상관없지 않느냐.. 하면서 그런 인종전쟁 또한 반대한다는 의견을 이야기 하더라. 그래서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 군이 되었나 보다.
취미를 묻길래 사진이랑 섹소폰 불기라고 했더니 자신의 취미는 사냥과 낚시란다. 아무래도 남자다운(?) 취미를 묻는데 엉뚱한 답을 한것 같아서 스포츠 종목을 몇개 거드름 피면서 열거해 주었다. 으하하
뒤적뒤적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독한 슬로바키아산 과실주라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라고 했다. 이 독주를 서너잔 나눠 마셨다. 마시는 법도 이야기 해 주었는데, 일단 숨을 들이 마시고 과실주를 단번에 넘긴다음 숨을 내쉬라고 친절히 시범도 보여가면서 설명해주었다. 배가 슬쩍 고팠는데 이친구가 간식거리도 꺼내주어서 참 고마웠다.
이 친구는 착하고 밝은 사람이라 마음에 들었다. 여행자로서 늘 조심하느라 이친구가 건낸 술도 사실 처음에는 미적거렸던 내 모습이 오히려 조금 미안했다. 같이 사진도 찍고, 밝은 표정으로 오늘 만나서 너무 즐거웠다고 먼저 일어서던 그 큰 덩치 친구가 쫌 귀여웠다. 헤어질때는 악수는 한 세번은 했나보다. 선물로 책갈피를 주었다.
드디어 질리나에 도착! 이곳은 그리 크지 않은 도시였고, 사촌형이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가족은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 있고,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계셨다.
몇년만에 사촌형을 낯선 질리나에서 만나게 되었다.
형이 일이 끝날때 까지 잠시 동네를 돌아다녔다. 사실 관광 목적으로 온게 아니었지만, 여행자 정보센터에서 이곳관련 브로셔를 얻고서는 한 세시간정도 걸어다녔다. 기차역에서 큰 광장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고, 그 광장에서는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몇몇 놀이기구가 한쪽에 있었다. 유럽에 와서는 이런 놀이기구가 따로 있는 놀이 공원은 보질 못했다. 항상 축제가 벌어질때 잠깐, 혹은 광장옆에 한두개. 이런식이다. 남녀노소 모두 즐긴다 ^.^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오 생각보다 맛난다. ;)
시간이 그리 넉넉치 않아서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 골목을 그저 돌아다녔다. 이곳에서 전차버스(??)를 처음 보았다. 버스인데 전차처럼 상단의 전깃줄에서 전기를 공급받는다.
광장앞의 큰 교회에 서있던 상. 정보 모름;;
그렇게 시내 중심부를 돌아다니다가 퇴근길의 사촌형과 동행했다.
마침 그날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먹을복이 있나보다. 예전에 중국집에서 요리사를 했다던 전라도 말씨의 구수한 사촌형 부하직원 분이 탕수육을 만들어 주셔서 배불리 먹었다. 으하하 김치찌게에 탕수육에 밥한공기를 배부르게 먹었다. 제일 좌측이 사촌형님.
사촌형은 몇년전 이 슬로바키아에 한국인이 몇명 없을때 이곳에 가족을 이끌고 와서 이쪽 지역 물류 관련해서 지금은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고있었다. 지금은 수많은 회사들이 이곳에 진출해 있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에 늦은 나이란 없다 ^.^
이날 저녁은 사촌형과 부하직원들과 어울렸다. 그리고선 회사 숙소에서 푹 잤음.
다음날 사촌형이 자동차 열쇠를 내민다. 자신은 일이 있어서 늦게 다른 사람 차편으로 갈거라고 하면서 먼저 차를 가지고 브라티슬라바로 가라고 하신다. 으하하하 좋아좋아.
비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제한속도인 시속 130km로 달렸다. 크루즈 기능이 있어서 편하게 오래 운전을 해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국내 차종에는 왜 이 기능이 안들어가나 몰라. 중간에 배가 고파진 나는 작은 휴게소에 들러서 아침을 먹었다. 오~ 마침 닭가슴살 요리를 맛볼수 있었다. 여전히 이름은 모르겠으나, 여행중 맛나게 먹은 음식중 하나다. 이름하야 슬로바키아 닭가슴살 사이 햄과 치즈 요리! ;)
자, 브라티슬라바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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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에서 자코판(Zakopane)은 그리 먼거리는 아니었다. 삼십분 남짓 지나서부터 자코판의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휴양지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눈이와서 그런지 한시간 정도 걸린다는 버스가 조금 더걸려서 자코판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눈, 정말 많이 온다! 으하하하하 이렇게 눈 많이 내리는 거 처음 보았다.
짐들고 잠시동안 미친듯이 뛰어다니다가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 들어갔다. 내가 타트라 산맥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고 했지만 안내하는 사람은 바깥의 내리는 눈을 가리키기만 했다. 그래도 뭐 날씨가 좋아지지 않겠어요?? 라는 한마디를 던진다. 조금 고민했다. 방을 일단 잡고 그래도 타트라 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를 탈까 하다가 일단 그냥 짐을 바리바리들고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지도에서는 여러 케이블카가 있었는데 가장 좋은 곳을 추천받아서 무작정 택시를 타고 갔다.
자, 어디 한번 올라가보자. 날씨야 천천히 좋아지길 한번 기다려 보지 뭐. 윗쪽에 좀 쉬는데가 있겠지. 오홍 산위에서 밥도 먹어야지?? 어라 옆사람이 스키를 들고타네??
눈의 무게에 추욱 쳐진 침엽수림을 하나하나 작아지더니 멀어져만 갔다. 아. 여기 올라갈때 비록 산맥의 전망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분 최고였다. 펑펑내리는 눈과 아득해진 침엽수림 말이다. 정말 이 케이블카는 끊임없이 올라가는 듯했다. 중간에 내려서 또 다른 케이블카로 갈아탔다.
으하하하. 케이블카에서 나와보니 전방 2미터 앞도 안보였다. 그리고 내가 탄 케이블카는 산위의 어느 마을 내지는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닌, 보드나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내가 그렇게 관광용으로 추천해달라고 했건만. 내가 올라간 곳이 좌측의 Kasprowy Wierch였다. 앞이 아무것도 안보여서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돌아다닐 수가 없는 곳이었다. 돌아다니다간 눈이 펑펑 오는 천연슬로프에서 케이블카 타던곳으로 슬라이딩할 참이다. 샤샤샥-
암튼 나는 아무것도 못보고 내려왔다. 흑. 산 정상의 매점에서 아래의 엽서를 한장 구입했다. 엽서를 쓸 요량으로 우표까지 붙였다. 아래가 실제 날씨 맑은 날에 내가 그곳에서 볼수 있었던 view임. 아! 아쉽.
타고 올라온 케이블카. 저거 타고 다시 내려가도 될까? 덜덜덜.
내려오며, 으다다다 연사로 정상의 아쉬움을 달랬다. 옆의 영국에서 온 일행 셋이 첨에 소리에 놀라더니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sorry." 씨익 웃었다. ^_____^;
자, 내려왔다.. 그래도 이렇게 신나는 눈꽃들을 본게 어디야. 아무튼 펑펑 내리는 눈에 질퍽질퍽 거리며 온 몸이 젖어왔지만 신나게 걸어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갈까 하다가 그냥 국경을 넘어서 슬로바키아의 포프라드로 가기로 결정했다. 결국 크라쿠프 민박주인이 적어준 음식들을 못먹어봤다. 흑.
국경을 넘으려면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한 40분 정도 Lysa Polana로 가서 도보로 건넌다음 다시 그곳에서 버스로 포프라드까지 한시간 가량 가야했다. 사람들이 말이 안통해서 물어보는데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버스를 탔고, 버스는 산길을 내달렸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깊은 산중에 슬쩍슬쩍 스치는 작은 마을들이 참 멋져보였다. 순간 내려버릴까??하다가 방을 구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참았다. 내가 탔던 버스가 그날의 마지막 버스였다. ^.^;
자, "리사 뽈라냐~"를 버스운전자에게 외쳐댔던 나는 버스운전자가 내리라고 이야기해준 곳에 내렸더니 언듯 둘러보면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첩첩산중 산길 한가운데 였다. 뭐지? 버스도 마지막이고 이거 내가 잘못 온거면 오늘 산길에서 비명횡사하는거 아냐??;;;;;;;;
두리번두리번 조금 걸어내려가니 그제서야 낮은 건물의 국경관리소가 나온다. 얏호! 살았다!
눈은 이미 멈춰있었다.
출입국 심사가 어느 버스의 단체손님으로 늦어졌다. 오래 기다리게 하는게 미안했는지 그 경찰 제복같은 것을 입고있던 착해보이는 아저씨가 '쏘리, 웨잇'을 반복했다. 돌아보니 그 버스는 한 무리의 동양인을 태우고 있었고, 그중 한사람이 걸어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 이 첩첩산중에서 혹시나 한국인을 만나면 반갑겠다.. 싶어서,
- "혹시 한국인이세요?"라고 반갑게 말을 건네니
- (무척 경계를 한다.)"네, 무슨일이시죠?!" - 아뿔싸. 무슨일이시죠무슨일이시죠무슨일이시죠?????
- "아닙니다"
하고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 버스는 여권심사를 마치고 유유히 내 옆을 미끄러져 갔다. 안에서는 누가 이런 곳을 걸어서 건너?라는 듯 잔뜩 짐을 든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쑥덕거린다. 쳇, 한국사람들 머 이래. 인사를 용건으로 되묻다니, 그것도 기분 나쁜 어투로 말이다. 누가 태워달랠까봐??
생각해 보니 유럽에서 이렇게 걸어서 국경을 건넌적이 없었다. 비록 도장은 자동차 모양의 도장을 받았으나 걸어서 국경을 건너는 기분은 꽤나 삼삼하게 좋았다. 폴란드 돈을 모두 슬로바키아 돈으로 환전하고 길을 나섰다. 어익후 우표까지 붙인 폴란드 엽서는 기념품이 되어 버렸군~
작은 개천을 돌아 내려오니 그곳에 버스한대가 서있었다. 무조건 '뽀쁘라드'라고 외치니 타란다. 짐을 놓고 나왔다. 보아하니 조금 있다가 출발할 듯 싶어서 사진기를 가지고 나왔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내생에 다시는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첩첩산중에는 와볼일이 없을 것 같았다. 눈이 멈추니, 눈이 너무! 시원해졌다.
자, 이제 포프라드로 가자! 버스는 하얀색이 점점 적어지는 시골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해가 지고 나서야 포프라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에 한 저녁 7시쯤 되니 길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책에서는 이곳저곳이 우범지대;;라고 했다. 그나마 괜찮다던 옛날 독일식 건물이 늘어선 곳에서 호텔을 찾아서 하루 묵었다.
호텔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닭가슴살 요리를 추천해 주었는데 음! 완전 맛났다. (메뉴 두번째. 읽어보시라! 으하하)
이곳도 길가에 다니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산책도 할겸 카메라를 들쳐메고 나왔으나 사람도 없고 특별히 눈이 즐거운 곳이 없어서 멀리 보이는 편의점을 들러서 간단히 장을 보고 들어왔다. 들어오는 길에 열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 둘이 담배를 빌려달라고 말을 걸어와 깜짝 놀랐다.
짐을 들고 너무 오래 걸어다녔나 보다. 늘어지게 잤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난후 호텔의 뒷마당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비수기라 아직 깔끔하게 정리가 안되어 있지만 그래도 나름 귀엽게 꾸며져 있었다.
머리속에 동화가 천개 이상 들어가 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
자, 이제 기차역에 가서 Zillina로 가는 기차를 타고, 사촌형을 만나러 가자!
호텔에서 콜해서 올걸, 길거리에서 택시가 없어서 결국 걸어나갔다.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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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관련 글이 읽기에 많이;; 긴 것 같아서 짧게 쓰려고 했는데, 카즈메르 지역에 관련된 내용은 길어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지구가 있었던 이곳에서 찍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screen shot과 내가 찍은 사진으로 글을 남겨보려한다. 이곳은 단 하루를 돌아보았지만, 동유럽에서 다른 분쟁이 있었던 지역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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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서 맛나게 차려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사진기와 책을 가지고 나섰다. 이 책은 관련 역사에 관한 시간 순서대로의 설명과 카즈메르 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루트로 구성된 책이었다. 그중 나는 실제 이곳에 남겨진 유대인 지구의 유적들을 돌아다니는 루트3번과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를 돌아보는 루트4번을 중심으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예전에 그 영화를 보았지만 그저 나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역사적인 슬픈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는 것이었고, 이러한 슬픈 사건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으나 사실 실제로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배경이 폴란드 인지도 몰랐었고 그 안에서 순차적으로 벌어졌던 사건의 순서도 사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밖의 것이었다. 전날에 쉰들러 리스트를 다시 본 후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순서대로의 사건에 대하여 읽어 내려간 다음 실제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돌아보았다. 그 영화속의 울부짖음이 마치 70년전의 그들의 울부짖음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을때 때때로 멍해져 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어찌되었건 전쟁이라는 것의 참혹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스필버그의 힘을 빌어 전세계에 publish할 수 있었던 유대인들이 힘이 부러웠고, 우리나라도 역량있는 감독들을 통해서 우리의 힘들었던 20세기초 역사를 세상으로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그러게, 전쟁은 참 슬픈 것이다.
(난 이렇게 깔끔하게 읽기 좋게 편집된 책이 좋다. 책에도 인터페이스가 숨어있다는 사실.)
일단 게토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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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 (Ghetto) -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역사적으로는 1179년 제3회 라테라노공의회에서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교도와의 교류를 금지한 데서 발단하였다. 1280년 모로코에서 회교도들이 유대인을 분리된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게토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4세기에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자 유대교도에 대한 차별정책은 더욱 심해져 일반적으로 유대인 거주지역은 그리스도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게 되었다. 게토라는 말은 이탈리어이며 어원(語源)은 히브리어 ‘절연장(絶緣狀)’을 뜻하는 ‘get’에 유래한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게토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다른 지역과 분리되어 있었다. 또 그 내부사회는 유대인의 공동체로서 어느 정도의 자치가 허용되었으나, 시민권은 허용되지않았다.
중부 유럽에서는 특히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체코의 프라하 등지의 유대인 거주지역이 전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서 ‘게토’라는 말은 당시까지는 사용되지 않고, 1516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설치된 유대인 거주지역에 처음으로 사용되고 1555년 로마에 게토가 설치된 후 일반화되었다. 18세기 말 이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유대교도 해방과 더불어 이 차별주의는 붕괴되었으나, 러시아·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년 이후에는 나치스 독일이 폴란드 등 그들의 점령지 곳곳에 게토를 설치하고 유대인들을 강제로 수용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바르샤바의 게토는 유명하다. 나치스의 게토는 중세의 게토를 부활시킨 것처럼 보였으나, 인종론(人種論:안티세미티즘)에서 발상한 것이어서, 중세의 게토와는 다르다. 이 유대인 거주지역은 보통 벽이 둘러지고 그 바깥 지역으로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통행이 금지되었으며, 외출할 때는 특정한 모자 또는 두건을 쓰고 윗저고리에는 황색의 표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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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쪽에 오래된 Synagogue(유대인 교회)가 있는 이곳 광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루트를 따라 걸어갔다. 이 Synagogue의 뒷편에는 많은 무덤이 있었고, 벽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벽에 붙여놓은 동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65,000명의 학살된 유대인을 기리는 비문이 있었다.
이 광장은 영화 내에서 필수 근로자를 뽑기 휘하여 유대인들을 줄세워놓고 근로허가증을 발급하던 광장으로 사용된다. 이곳에서 근로 허가증을 받지못한 유대인들은 트럭에 태워져서 어디론가로 끌려간다. 슈탠(쉰들러의 회계사)의 유대인들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루트를 따라 몇군데를 지났고, 전날 보았던 장면중 인상깊었던 장면중의 하나를 촬영한 장소에 이르렀다. Ghetto Liquidation 중인 어느 건물이었는데, 이곳에서 아직 꼬마였던 카포가 자신의 친구 어머니를 숨겨서 살려주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 Ghetto Liquidation : 유대인 지구의 사람들을 플라초프 수용소로 옮겼던 사건을 일컬음. (1943.3.13)
* 카포 : 일종의 독일군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유대인의 자치경찰
코너를 돌자마자, 영화초반 쉰들러가 자신의 회계사 슈텐을 처음으로 찾아가던 건물이 보였다.
바로 비스와강을 건넜다. 영화에서 촬영된 다리는 아니지만, 실제 사진속의 다리를 건너서 1941.3.20일까지 유대인들은 모두 Ghetto 지역으로 이주된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과거 Ghetto 지구였던 곳이 나왔다. 사진에 보이는 길을 가로막으며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입구가 설치되었고, 이 구역의 사방을 둘러싸는 벽이 설치되었다. Getto입구 첫번재.
과거 jewish counsel이었던 건물. 첫번째 Ghetto입구 바로 우측에 있다.
우측편을 따라 낮은 언덕을 물어물어 올라갔다. 물어물어 올라간 공원은 전날의 비로 질척거렸고 멀리 지금은 아무도 드나들것 같지 않은 작은 교회예배당이 언덕을 내려다 보면서 서있었다. 언덕끝을 돌아들어가 옆의 흉칙해 보이는 둥그런 건물 뒷편으로 오스카 쉰들어가 Gthetto liquidation 당시 언덕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장면과 동일한 view를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유대인 Ghetto지역이 한눈에 보인다. 쉰들러는 그곳에서 빨간 옷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이 공간은 마치 폐가 처럼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공간 같았다. 이 공간과, 희뿌연 안개와, 그들의 역사를 써내려간 책자와, 이를 실감나게 그려낸 영화 모두가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다시 언덕을 돌아내려왔다. 가슴아픈 곳을 지났다. 저 철창 너머의 안쪽의 공간에서 여러 단계에 거쳐 병들고 나이든 유대인들을 집합시켜서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플라초프 수용소로 모두 이동했던 Ghetto liquidation이 일어나기도 전 일들이다. 저곳에 모여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동일한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낡은 아파트였다.
이곳이 유대인 Ghetto내에 있던 병원이다. 영화에서는 Liquidation때 환자들이 독일군에게 비참한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직접 독약을 먹였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곳.
이곳은 게토의 다른입구에 위치한 유대인 격리병원 자리.
Bohaterow Getta Square. 유대인 지구의 또다른 입구에 있는 광장에는 덩그라니 빈 의자가 놓여있는 전시물이 있었다. 근처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미 오래 되어버려서인지, 혹은 다른 나라 사람의 역사여서 인지(세계2차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폴란드의 유대인은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 그저 그들의 삶의 한 공간인 이곳은, 지나치는 이곳 폴란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가끔씩 폴란드 사람으로 안 보이는 고등학생 정도의 관광객 무리들이 까르르 대며 지나갔다. 처한 현실은 다른 것인데, 난 왜 자꾸만 저 의자에 시선이 가는지 잘 모르겠다.
이곳을 벗어나, 쉰들러가 공장을 만든 곳을 가보려고 했으나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곳을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실제 이 공장은 현재 다른 공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Ghetto의 세번째 입구를 지났다. 이곳은 플라초프 수용소로 가는 길목이다.
게토를 나오면서 그곳을 둘러싸고 있었던 Ghetto wall의 남아있는 조각을 보러갔다. 이곳은 누군가가 끊임없이 꽃을 걸어두는 듯 이제 막 시들어 보이는 꽃들이 이곳 저곳에 놓여 있었다.
한 20분 남짓 큰 길을 따라, 계속 가면 크라쿠프를 벗어날 것 같은 외곽길을 걸었다. 큰길에서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들어가는 샛길에 작은 간판이라도 하나 있을 것 같았는데 꼭 힘들었던 과거를 애써 숨기려는 듯, 한참을 헤멘 오솔길가 언저리에 저 간판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오던길에 버려진 단층짜리 굴뚝이 있던 건물이 보였고, 영화에서 처럼 뒤로 낮은 언덕이 보였다. 저 간판 옆으로 한사람 정도가 밟고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수풀사이의 오솔길이 나있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갔다. Liquidation이후 게토의 모든 유대인이 수용되었으며, 이곳의 소장 아몬 괴트 소위 등에 의한 노동력 착취와 많은 학살이 이루어 지고, 전쟁 말기에 그동안 학살된 만여구의 시체를 소각 했던, 그곳은 현재 어떠한 건물도 없이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없는 그렇게 버려진 땅처럼 아무렇게나 팽겨처져 있는 듯 했다. 수풀 사이를 걸어들어가면서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옅은 안개에 촉촉한 바닥의 느낌에 일순간 어느 공포영화를 보던 순간 보다 서늘해졌다. 음. 이것은 실제였다.
조금더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그당시 사람들이 뭍힌 비석하나 없는 공동묘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진 두장을 찍고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다시 길가로 나왔을때 이 곳으로 가는 다른 입구에는 학살당한 Unknown들을 위한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 묘비 옆으로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이 건물이, 플라초프 수용소 당시 독일 SS대원들이 유대인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장소였다. 수용소 건물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듯 했다.
빠꼼히 보이는 지하 창문의 창살이 그리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싹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까의 나즈막한 언덕이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에서 플라초프 수용소장인 괴트말고 딱 한명 부하의 이름이 거론된적이 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열차에 쉰들러가 물을 뿌려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쉰들러가 이곳에 도착하자 괴트 소위가 반갑게 맞으면서, 의자를 내어주기 위해서 앞의 앉아있던 부하에게 "Go, Hujar. Move"라는 대사를 한다. 굳이 이 Hujar에 대한 설명도 행적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굳이 이름을 거론한 저의는 바로, 이 사람이 SS대원들 중에 가잔 잔인한 대원으로 알려진 Hujar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학살을 저질르고 시체를 소각했던 바로 그 언덕을 그의 이름을 따서 Hujar Hill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위인의 이름을 따서 지역의 이름을 통용할 터인데, 이 사람은 악명이 높아서 그 이름을 따서 언덕이름을 붙였다니.. 아마도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누군가에 의해서 이름이 붙여진 듯 하다.
영화를 유심히 보면, 스토리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 이 Hujar라는 사람은 가끔씩 주목을 받는 행동을 하는 화면을 보여줄 때가 있다. 스필버그는 하고 싶었던 말을 장장 3시간이 넘는 스토리에도 모두 포함시킬 수 없었을 만큼 할말이 많았던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의 시체를 발굴해서 소각하는 장면에서 분노하며 그 불길더미를 향해 총을 난사하는 Hujar를 잠시 비추어 준다.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자리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바로 2분정도 다른 쪽으로 걸어나오니 단촐한 아파트와 낮은 건물들이 나왔다. 가판에서 담배를 한갑 사서 꺼내물고 난 후, 길건너 전차 정류장으로 나왔다.
8시간의 카즈메르 지구 걷기를 마치고, 전차를 타고 다시 크로카우 구 도심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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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구도심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여전히 안개는 뿌옇게 서려 있었지만 부슬거리던 비가 멈춰서 다행이었다. Main square의 St. Mary's Church가 꼭 멀찌감치 서있는 것만 같았다. 광장의 동쪽에서 북쪽으로 나있는 길은 쇼핑거리여서 그런지, 사람을 한명도 못마주쳤던 플라초프 수용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광장 중심부 건물. 이 광장의 많은 간판들이 더이상 기존의 '동유럽'의 이미지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맥도널드 역시 사진에서 중심부 건물의 건너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군데의 서점에 들렀다. 주인장이 빌려주었던 카즈메르 관련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꼭 사가지고 가고 싶었으나 여러군데의 서점에 들른 결과 한곳의 폴란드어 버전 말고는 동일한 서적을 구할 수가 없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숙소로 들어와서 또 주인장 부부와 술을 한잔 했다. 그날의 육체적 혹은 그보다 심했던 정신적 피로때문인지 맥주를 자주 들이키게 되었다. 자꾸 플라초프의 그 쓸쓸한 초원이 떠올랐다. 그 심적 먹먹함을 달래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슬로바키아 쪽으로 서둘러 가기로 했다. 론리플레닛에서 국경을 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고, 나는 자코판(폴란드)에서 포프라드(슬로바키아)로 국경을 넘어가기로 정했다. 마침 자코판은 주인장 부부가 추천한 휴양 도시였다. 그곳에는 론리플레닛에 추천이 되어 있을 정도로 멋진 타트라 산맥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주인이 그곳에서 먹어보았던 맛나는 음식을 직접 적어서 주고, 자코판에 대해서 이런 저런 정보도 주었다.
급하게 예약했는데도 친절하게 맞아준 이 분들에게 감사했다. 한인민박은, 2002년도 유럽행을 포함 몇군데 들러보지는 않았지만,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으로 여행을 나와서 굳이 한국사람을 만나러 숙박을 잡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젊은 부부의 아직 오래되지 않은 이 민박은 그래서 오히려 훨씬 편안하고 친근하게 머물렀다가 갈 수 있던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2시가 넘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러 가면서, 문득 이 카즈메르 지역을 둘러본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 먹먹함을 느끼고 가는 것이 나의 삶에 대한 감사와 그들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남겨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행여 유럽을 가는 친구가 폴란드를 들른다면 꼭 크라쿠프의 이 카즈메르 지역을 한번 둘러보기를 권한다. 비록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무겁고, 관광을 하라고 특별히 도통 꾸며놓지도 않은 이곳이 여행자에게 팽팽한 inspiration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게토지역을 돌아보면서 영화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도 사뭇 인상깊은 기억이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다음날도 비가왔지만, 마지막의 크라쿠프를 보기위해서 걸어서 버스터미널로 갔다.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사촌형에게 전화를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연락을 드리고 서둘러 미니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아마 르노차지?? 오래된 이 깜찍한 파란색의 차가 잠깐 가지고 싶었다;;
여름이 되면 풍성하고 아름다운 길 모양새를 선사해줄 것 같은 곳.
자, 이제 자코판이다. 타트라 산맥. 넌 꼭 보고싶다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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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파란선이 시즌2! 입니다.
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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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동유럽으로 여행을 나선 다는 것은 서른 둘의 아저씨에게도 참 묘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는 혼자 차를 몰로 이곳 저곳 가봤지만, 결정적으로 어디서 보았던, 혹은 누구에게 들었던, 그런 멋스러운 싱글여행객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했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영어도 잘 안통한다는 동유럽이다.
어떻게 다니는 것이 좋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어차피 한국사람은 없을 것이고, 관광다니는 다른 외국애들과 말을 터봐?? 별로 낯설게 말을 트는 성격이 아닌 나는, 가능하다면 그저 로컬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늦은 저녁 크라쿠프 공항에 내렸다.
공항 인포메이션에서 이런 저런 정보를 얻고 환전을 한 뒤, 바깥으로 나오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생각보다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날씨였다. 공항을 지키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버스정류장을 물어보는데는 영어가 아닌 바디 랭귀지가 이용되었다.
버스는 낡았으나 그리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 가운데는 짐을 싣는 공간이 있었고, 짐하나당 얼마씩을 내어놓아야 그곳에 짐을 놓을 수가 있었다. 구도심까지 한시간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한 삼십분 남짓 지나자 갑자기 버스 기사가 나보고 내리라는 제스처를 보여줘서 헐레벌떡 그 어둔 정류장 앞에 내렸다. 노트북을 꺼내어 지도를 살피고 사람들에게 물어 구도심 근처로 걸어갔다. 어느새 빗줄기는 굵어져 있었고 가방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우산을 꺼내지 않고 미리 예약해 놓은, hostelbooker.com에서 무려 96%의 지지도를 가진 giraffe hostel을 찾았다. 거리는 한산했고 가끔 지나는 사람들도 모두들 굵어진 빗줄기에도 우산하나 받쳐든 사람이 없었다. 분위기는 약간 음산할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유명한 호스텔이라 간판이라도 크게 있을 줄 알았는데 한참만에 찾은 호스텔은 조그만 간판을 가진 허름해보이는 곳이었다. 들어가서 체크인을 했고 방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지못한 나는 리셉션을 통해 할인된 가격의 피자한판을 시켜먹었고, 방으로 들어갔더니만... 으하하 또 나말고 어린 여학생이 다섯명, 모두 일행인, 폴란드 친구가 끌고온 네명의 미국인이었다. 다섯명의 여자가 샤워를 하고 블라블라 수다떨던 곳에 아저씨가 뚝떨어지고 나면 그 어색함은 참 이루말할 수 없다. 인사를 나누고 몇분 이야기를 하다가 영 불편해서 노트북을 들고 바에 나갔다. 맥주를 한잔 하면서 검색도중 크라쿠프에 한인민박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다음날 숙소를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바텐에게 담배불을 빌리는데 농염한 어투와 표정으로 빌려줘서 어익후. 했다.
암튼, 다음날 아침 일찍, 전날의 남은 피자를 뎁혀먹고선 '오로라 민박'이라는 곳을 향했다. 이곳은 여름방학의 손님맞을 채비를 하기 위하여 최근에 이사를 했었고, 그래서 아직은 침대가 많지 않았다. 으하하하 호스텔과 같은 값을 지불하고 혼자 편히 쉴 수 있는 곳, 맘에 들었다.
이곳 주인장이 많은 책과 근처 관광정보를 알려주었고, 이것 저것 알아본 다음 일단 소금광산에 나가보기로 하고는 길을 나섰다. main market square를 중심으로 한 구도심은 5분거리에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보다 생기있는 이곳을 구경할 수 있을뻔 했다.
이곳에서 우산을 쓰고 잠시 머물면서 사람들을 구경했었는데, 그동안 유럽에서 보았던 사람들과 확실히 인종이 달라 보였다. 눈이 더 깊었고,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쓸쓸한 감상을 머금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가운데에 있는 메인건물의 남북으로 통하는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했다. 이곳의 기념품들은 물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이라도 보다 차분한 색감이었으며 보다 옛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광장을 지나 남동쪽으로 내려와서 소금광산을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렸다. 폴란드의 전차 한컷.
조금 큰 봉고같은 버스에 올랐다. 다행이 노선의 출발지점이었기 때문에 앉아갈수 있었지만, 비가 오는 가운데, 아주 붐볐던 그 작은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랐다가 내렸다.
드디어 소금광산 도착!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나는 시골동네 한가운데 우두커니 내렸다. 길을 물어 소금광산으로 내려가다가, 햄버거를 파는 아주 작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버거세트를 시켜서 먹었다. 동유럽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콜라나 스프라이트를 주문하면 항상 나오는 콜라는 한국에서는 보지못한 작은 병에 들어있는 녀석이었다. 동네사람들이 지나면서 수염을 기른 키큰 동양인이 햄버거 먹는 것을 유심히들 쳐다보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한참을 걸어 소금광산에 도착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고, 영어안내를 하는 시간에 맞추어 기다렸다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금광산은 오래전 바다였던 곳에서 물이 증발하여 남은 염화칼슘이 암염으로 변한 것을 캐내던 곳으로 소금이 귀했던 시절의 나라의 재정에 큰 보탬이 되던 그런곳이라고 했다. 20세기 후반에 소금채취를 멈췄고 지금은 유네스코가 자연유산으로 지정해서 관광지화 되어 있다고 한다. 헝가리로 시집을 갔던 공주가 이 금광을 발견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이곳은 소금을 캐낸 빈공간을 활용해서 다양하게 꾸며놓은 방들을 중심으로 관광이 이루어졌다.
일단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몇백계단 내려갔다. 자주 한글로 씌여진 낙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어발음이 통~통~ 튀는 폴리쉬 아저씨가 가이드를 맡았다. 발음만큼이나 유머러스한 아저씨였다. 이곳은 처음 들어갔던 방. 천장에 하얗게 응결되어 있는 것들도, 샹들리에도, 조각들도 모두 소금이다.
응?? 어. 그렇다. 슬쩍 벽에 혀 대보았다. 짜다;;;;
사실 이곳은 '소금''광산' 이 자체가 신기하고 대단했던 거였지, 사실 그리 신기한 볼거리가 많거나 하지는 않았다. 인디아니 존스에 나올법한 여러방들을 스쳐지나갔고, 이곳에 얽힌 전설과, 일하던 모습을 담아놓은 밀납 인형, 여러 조각상들, 심지어는 작은 호수 같은 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원래 처음에는 호수에서 배를 띄워 타는 관광 코스가 있었다는데 20세기 초에 오스트리가 군대가 단체관광와서 열몇명이 그대로 익사한 뒤로는 그러한 코스가 없어졌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호수가 제법 다크 포스를 유발한다.)
가장 유명했던 커다란 예배당. 실제로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사실 암염으로 이런 조각을 만든 것더 신기하고, 약간 투명한 느낌을 주는 것도 신선했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입체감이 잘 살아나는 이러한 최후의 만찬 같은 조각이었다. 민박집에서 준 자료에 자세하게 나와있던 내용이 명확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저 조각은 미적 재능이 있던 광부가 만든 것으로 나와있었다. 그것도 온전히 한 사람이 아닌 그 자식의 후대에 걸쳐서 완성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사진을 보면 잘 와닿지 않겠지만,
위의 것도 아래 그림과 같이 정밀하게 입체로 조각된 작품이었다. 그 완성도가 한참이나 시선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암염의 회색톤이 더욱 진한 고난의 여운을 남기는 그리스도 상이다.
생각보다 길었던 두시간의 관광이 끝나고 이곳을 나왔다.
바깥에 나와보니 벌써 어두워져 있었고 추웠으며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이미 빗줄기는 굵어져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잡아타고 크라쿠프 시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덜덜덜.. 가지고 왔던 점퍼를 영국에서 잃어버려서 아쉬웠다. 다음날 부터는 옷을 더 껴입고 나가야겠군.
돌아오면서 광장 한컷. 민박집 주인장이 친절해서 혼자온 관광객의 식사를 제공해 줄것 같았지만 민폐끼치는 것 같아서 스파게티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 먹었다.
이날 저녁 비로서 이곳 오로라 민박집의 주인과 간단히 맥주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린 두사람이 한국에서 결혼을 한뒤에 한국인 민박이 없는 이곳에 오게되었다고 한다. 안주인 되시는 분이 유럽여행중에 이곳의 유대인 지구를 둘러보고 이곳이 좋아져서 무작정 오게된 사연을 들으면서 대단도 하였고, 처음 해보는 일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을텐데 일견 대견도 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두분의 꿈이 잘 영글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아무튼 다음날에는 민박집 주인에게 추천받았던 2차세계대전 중 유대인의 게토(getto)가 있었던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에 비치되어 있는 영어책자가 이 카즈메르 지구에 대해서 잘 나와있었고, 이곳에 올때까지도 몰랐던 이 카즈메르 지역의 역사적 사실에 흠뻑 빠져들어 버렸다. 나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장소가 이곳 폴란드 인지도 몰랐다. 주인이 권해준 쉰들러 리스트를 늦은밤 모두 보고, 저 책을 한참이나 읽고 나서야 새벽잠이 들었다.
밖에 내리던 비는 어느새 펑펑 내리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불과 열흘전에 스페인 바닷가에서 태닝했었는데... 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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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버스 앞자리에서 좋은 날씨에 버스를 타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옥스포드에서 벗어나자 마자, 아직 이른 봄이었음에도 정말 푸르디 푸른 초원을 보여주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의 잔듸는 아직 누렇지 않은가!) 앙상한 나무와 그 반대의 푸른 초원들과 낮은 구릉너머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글거리면서 뛰어올 것 같았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
차는 한시간을 훌쩍 넘겨 북적대는 런던에 도착하였다. 노팅힐을 지나 빅토리아 스테이션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첫번째로 눈에 띄던 녀석을 한장 찍어봤다. 알았다고 멈출께;;
런던의 첫인상은 강했다. 예전 런던에 하룻밤만 (정말 밤에만) 잠깐 머물러 본적은 있지만 비가 부슬거리는 날이어인지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 화창한 날의 런던은 심지어 무채색일지라도 컨트라스트가 강한 색감이 인상적이 었다. 물론 대도시 답게 사람들의 걸음은 무척 빨라 보였다.
아! 길 건너편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뮤지컬이 상영되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오면 한번 봐주마!
지하철은 tube라는 애칭답게 동그란 모양으로 생겼으며 경전철로서 그리 멀지 않은 역사이를 지나던 사람들의 걸음걸이 만큼이나 빠르게 인파를 토해놓고 바로 삼키고는 이동하였다.
특정 지하철 라인의 승강장에 가면, 어디행으로 써놓기 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Northern bound" - "Southern bound"라는 구분 표시였다. 즉 동서남북으로 구분하여 지도상 내가 갈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심플하고 센스있었으나 사실 지도, 적어도 지하철 노선도를 숙지하지 않으면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초보자에겐 낯선 방식이었다. 그리고 신기했던건, 다른 라인의 지하철을 갈아탈때 내린 곳의 바로 맞은편 (즉,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라인의 반대방향으로 가는 전철)에서 바로 갈아타는 곳도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에 굉장히 실제 physical한 선로를 설계할 때 여러 라인을 한번에 설계한 듯 보였으며, 같은 라인의 반대방향이 서로 마주보는 우리나라 지하철 보다는 직관적이지는 않았지만 갈아타느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우리나라의 지하철 보다는 편해 보였다. 뭐랄까. 영국의 지하철은 Effectiveness가 좋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지하철은 Learnability가 좋다고 할까? (그럼 우리나라 지하철은 삼성의 천지인?? 우히. 그렇나 나 UI했었다. ㅎㅎ)
건 그렇고 런던 지하철내 공기 완전 별로다. 한번타면 아이쿠나 콧속이 쌔카맣고나~
The Elephant castle 역의 승우의 지인이 운영하는 곳에 짐을 풀고, 늦은 시간 런던 거리로 나섰다. 빅벤 - 웨스트민스터 사원 - 트라팔가 광장 - 피카디리 서커스 - 소호 - 옥스포드 서커스를 신나게 걸어다녔다. 아이고 다리야.
이 사진에서 승우는 잘 안나왔지만, 빅벤과 지나는 버스와 친구가 잘어울린다. Hello London!
(사진삭제)
웨스트민스터 사원, 이곳 건축물의 디테일이 장난아니다. 그 옛날 대영제국의 영화로운 권력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권력은 어디서부터 창출되서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들었다. 왜 인간은 바벨탑을 쌓으려 하는가. 머 그런;;
트라팔가 광장으로 걸어가는 길. 우연히 그 다음날 보게될 고등학교 후배 두명을 마주치게 되었다. 한 친구는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었고, 한 친구는 미국에서 이친구 보러 놀러왔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사이에서 아는 얼굴이 참 반갑다. ^.^
자 그럼 광장으로 가보자. 어둑한 런던이 운치있다.
가는길에 빠꼼히 보았던 런던아이. 그리 유명할 것도 없지만서도 이름으로 많이 회자되는 걸 보면 관광도 지극히 사업이란 생각이 든다.
자, 2002년에 새벽한시가 넘은 시각. 기어이 런던을 구경하겠다고 버스를 타고 유일하게 나와봤던 트라팔가 광장. 이곳은 변함없지만, 나는 많이도 변했구나. 사실 나는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들고 그 변화를 유럽서 던져주었던 한 친구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한참을 걷다가 힘들어서 들어간 정종집. 런던에서 정종을 먹을 줄이야;; 크하하하. 정종을 마시면서 승우의 전공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나같이 미적지근하게 미래를 그리는 사람에겐 부러운 일이다. 우리 친구들이 좋아하는 학문적 탐구에 대한 지적인 그리움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이 난데 없이 맛난 정종을 마시는 헨형 사진에 페이쏘스가 잔뜩이다. 아마 정종값이 비싸서였으리라;;;; 일본에서는 여름에는 차가운 정종을 네모난 잔에 먹는 다는 것을 부지런해 보이는 일본 주인아저씨가 가르쳐주었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곳에 붙어있던 광고들. 저기서 "러브 액추얼리"에 나왔던, "콜린" - 배낭에 콘돔 잔뜩 싸가지고 미국으로 여행가는 얼빵한 영국 샌드위치 배달원 - 역으로 나왔던 사람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뮤지컬 광고를 지나칠 수 있었다. 아저씨 안웃으니 더 웃겨;; 우히히
간판도 조크를 날린다. AD 932도 조크인것 같다.
런던에 갔으니 그리 좋아하는 빈한 목소리들의 브릿팝을 들어보려고 뮤직바에 가려고 서점에서 론리플레닛을 뒤져서 제일 처음 나오는 곳을 찾아갔더니, 게이바란다. (고 앞에 얼쩡거리던 아저씨가 우리 둘이 들어가면 볼만하겠다고 켁켁 웃는다;;) 아쉬운대로 근처에 시끄러운 rock(보다는 death metal에 가까웠다;;)을 틀어주는 정말 붐비는 바에가서 기네스 한잔을 마셨다. 주문 받는 누님의 눈빛에 힘이 서려있다. 옆에 있는 누님은 키가 나를 훌쩍 넘어보였다. 오. 분위기 좀 무섭다.
사람들. 사진에는 없지만, 이곳에 dark force를 가진 눈빛, 옷차림, 생김새를 한 사람들로 가득가득이었다. 종업원도 손님도 간지가 좔좔좔.. 화장실로 가는 컴컴한 지하1층으로 가는 계단에 서서, 이곳을 내려가면 내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잠깐 걱정이 스쳤다. ^.^
우리도 간지 내보자. 승우 쿨샷~
(사진삭제)
나에겐 언어도 언어지만, 어째 동양인은 많은 낯선 백인들 사이에서는 이방인이 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사람 자체와 잘 섞이지 않으려는 나에겐 인물사진이 별로 없는 것이 쉽게 설명이 되었다. 그뒤로 현지 로컬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이후에는 동유럽을 더욱이 혼자다니면서 숙소를 private room으로 잡아서 더욱 어려웠던거 같다. 담번에는 좀 로컬들과 놀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음. 사라질것 같은 화장실로 가는 지하1층 계단은 없는 곳에서. 으흐흐
다음날,
오늘은 서울서도 별로 가본적 없는;; 동창회 가는날~. 우연히도 런던 체류기간중에 영국내의 고등학교 동문 사람들(및 가족)이 모이는 모임일정이 있어서 여행자로서 참석했다. 의외로 몇몇 아는 사람이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같이 여유있는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2기 선배님의 부인되시는 분이 삼성내에서 의외로 관련이 깊은 부서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어서 슬쩍 반가웠다. 자 동문모임이니 단체사진도 한컷~
3기 선배분의 딸. 아주 생글생글하니 성격이 활달해서 귀여웠다.
모인 곳은 Canary Wharf라는 동네였는데, 새로 생긴 거대한 빌딩들에는 주로 금융관련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고 했다. 일종의 New town이라고 할까. 여유있는 맑은 일요일의 낮 산책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이곳이 Canary Wharf의 건물들. 런던이 헤지 펀드로 유명하지. 이곳에서 일하는 banker들은 음.. 소득 수준이 쫌! 되더라. 부동산 등의 물가가 지천으로 비싼지라 메리트가 감소되기는 하지만 나름 칼퇴근의 그 소득 수준만큼은 부러웠다.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 한장을 건졌다.
일방통행 도로에서의 친절한 영국씨. (사실 일반 도로에도 좌측통행이므로 건널때 우측을 보라는 표식이 많이 눈에 띄었다. "클로져"에서도 나탈리 포트만이 왼쪽보다가 사고나지 않던가 흐흐)
일행들과 헤어져서 런던브리지를 보기위해 템즈강변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장. 나 또 시장에서 사람구경하는거 대따 좋아한다 ^.^
일요일은 사람의 걸음도 느릿하게 만든다.
가는 길에 보았던 일종의 귀신의 집. 줄이 완전 길다. 아이부터 어른까지의 설레는 얼굴이 귀여웠다.
자, 템즈 강변 도착.
어느 건축가가 만들었을 법한 계단위를 아이들이 뛰어논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언제봐도 보기 좋다. 단, 그들이 "꾸애액-"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채광을 위해서 건축 구조를 저렇게 지었다던 유명한 건축물. 이 건물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정작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강변에서 이러고 놀았다;;
저녁에는 낮에 동문모임에서 만났던 숙경이가 자신의 친구의 flat에 초대해서 그곳에 들었다.
가는길에 저 버튼을 누르면 언제 파란불이 켜지는지에 대해서 궁금했었지만, 몇번을 눌러봐도 규칙성이 없어서 그 메커니즘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아는 사람 손??
숙경이도 런던에서 금융관련해서 잠시 일하고 있으며, flat 주인인 친구도 런던에서 뱅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집은 런던의 집답게 아담했으나, 전망이 좋았고 살기 좋아보이는 그런 집이었다. 아마도 런던 중심에서 이 정도면 월세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정말 생각보다도 대단히 비싸다;;) 처음에는 말을 잘 못알아듣겠는 호주계 아시안들이 많아서 좀 지루했으나, 그네들이 우루루 clubbing 나가고, 숙경이의 대만친구들이 나중에 다시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은 퍽 재미있었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우가 처음이었고, 낯선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쫌 재미있어졌다. 머 대화가 아주 원활하지 않아도 말이다 ;)
숙경이의 친구인 이 호주 아저씨(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한살 어린 친구였다.)는 인상도 좋고 예의바르고 낯설어 하는 우리에게 참 잘 대해 주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모임 말미에 이 뱅커 친구는 진지하게 "돈만벌면 뭐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했으나, 그래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 모두 공돌이가 된 친구들에게 주어지는 pay가 떠올려지면서, 그만큼 벌면 보람있게 사세요. 라는 이야기를 건네주고 싶었다. 그러게 누구에게나 각자의 입장과 원하는 바가 다른것임을. 그리고 원하는 것을 이룸은 또다른 원함의 시작이라는 것을.
좋은 시간을 제공해준, 이날의 호스트 숙경이와 뱅커친구에게 땡큐 베리 감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대만아해들은 촛점이 어긋나 배경처리가 되버린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어익후, 나도 얼굴 뒤로 뺄껄;
문제는 그이후였다.
버스는 24시간 한다는 말을 철떡같이 믿고 12시가 넘은 시간에 나왔는데 벌써 일반버스는 다 끊기고 심야버스만이 남아버린 것이데, 택시는 타기 싫고 버스 정류장은 참 어렵게 이곳저곳에 숨어있었다;; 결국은 걷다가 버스타고 걷다가 갈아타고 등등 해서 2시 가까이 들어와 버렸다. 런던 밤바람 진짜 차다;; 그래도 이것도 관광이라고 신나게 걸어다녔네. (사실 그렇게 런던 새벽 거리를 은근~은근~ 걸어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ㅎㅎ)
승우가 밤을 새고 새벽비행기를 타러 나섰다. 안녕~ 나보다 한국음식 먼저 먹는구나 부럽다아~~
다음날 아침, 지하철을 타고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왔다. 지하철 한번 타는데 4파운드다.(1-6존. 난 겨우 1존에서 1존으로 8정거장 가는데 말이다. 티켓 발매기가 고장나서 역무원에게 가장 싼티켓 물어보고 샀는데 뻥친거 아냐.) 1-2존을 웬종일 타는 것이 5.x파운드인데 6존이라지만 한번 타는게 4파운드라니.(6존이라고 그리 먼곳도 아니었다.) 참 이곳은 가격체계가 순진하지 않다. 훨씬 자본주의스럽다. 어떤 재화의 가치라는 것이 그 재화가 가지는 고유의 가치(웬지 원가 같네. ㅋㅋ)에 의해서 결정된다기 보다는 시장에서 화들짝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동네다. 그러니 고속버스도 원웨이 10파운드면 리턴이 11파운드지. 하나사면 하나 더주는 상품도 많고, 이지젯도 시간대에 크리티컬하게 가격이 요동치는 거 보면, 재화의 가치가 아니라 거기에 재화를 사는 시점, 또 꼭 필요한 재화(예를들면 원웨이 티켓) 여부에 따라서 그 가치가 한국에서보다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암튼 8정거장에 4파운드는 드럽게 비싸다는 얘기.
영국은 좀 웃기다. 지들끼리 월급많이 주고, 또 엄청나게 '가격이' 비싼 재화들을 소비하거나 엄청 비싼 월세에 살아야하니 말이다. 개개인이 벌어들이는 수입만큼, 개인이 잘사는 나라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난 수입은 그들보다 적어도 양문형 냉장고가 넉넉히 들어가는 집이 많은 한국이 좋아.(영국서 냉장고 Usability Test를 하는데 큰 냉장고에 대한 니즈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니 니즈도 그렇지만 그래도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UT였는데 부억에 큰 냉장고가 들어갈 공간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도대체 영국에선 다른 나라보다 싼게 없다. 저렴한 것이라면 마크&스펜서 정도 ㅎㅎ
영국의 서비스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자면, 한가지 불만은 내가 비싼 곳을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으례 기대하는 서비스 정신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길거리에서 길을 물어볼때 대답해주는 사람들이 친절하지 절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친절한 경우를 별로 겪어 보질 못했다. 음 역시 싼곳만 다녀서 그런가 ㅋㅋ 이사람들의 서비스는 너무 간결하다. 내가 동양인이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은 별로 안든다. 뭐 그래도 영어로 소통은 되니, 바르셀로나 보단 낫다. 훙.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누구나 다 알겠지만 미국에는 그 옛날 노예계급이었던 흑인들이라면, 영국에서는 대체로 인도인이 낮은 직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속버스는 영국 아저씨가, 조그맣고 허름한 버스는 인도 젊은 사람이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검표원, 허드렛일, 카운터 등등은 거의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이다. 참 그런게 편견이라는 건가보다. 실제 인도인 등의 다른 유색인종들이 내가 런던에서 머물렀던 flat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모여사는 것 같았고, 어떤사람은 그 모여있는 지역이 평이 좋지 않은 곳이라는 말을 한다. (하긴 런던은 노팅힐 뒤쪽의 서북쪽 빼고는 다 그렇다는 말도 있다고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도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일을하고 있다. 사실 그들이 대도시에는 아직 많이 살고 있지 않고, 정말 한정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곳에 자리를 잡은 그들의 자손과, 상희에게 들었던 농촌에서의 혼혈아들이 어떤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시간이 오게되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도 영국이나 미국과 비슷한 현상이 생겨나게 될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말을 제대로 못하는, 황인종보다도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을 그리 존중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이렇게 바깥으로 나와보면 여행객인 나도 비슷한 대접을 받을때가 종종있다고 느껴진다. 어찌보면 이러한 굴레는 역사가 뒤집어지고 반복되어도 벗어날수 없는 사람들의 멘탈러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가치를 어디에 둘지를 몰라서 그런가, 남의 가치를 폄하해서 자신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것 말이다. 본능이라는 것의 또 다른 단면을 본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했다.
아무튼, 조그만 인도인 아저씨가 운전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루통공항으로 향했다. 동유럽을 혼자 간다는 묘한 여운에 싸여 이지젯에 올랐다.
폴란드의 크로카우는 어떤 동네일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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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헨형 유럽가다- 1부를 마칩니다. 석달전 여행기를 쓰기가 쉽지 않네요. 최근에 다녀온 중국 여행기부터 올려야 겠습니다.
언젠가 발리 사진을 보여드릴 날이 오겠죠;;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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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서로 투덜대기도 하고 그랬지만 그래도 누나라고 누나역할을 잘하려고 하는 것이 귀엽게 듬직했다. 티격태격도 하고 성격이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이 되어서 충돌이 일어날 지언정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게 다 가족이 좋은게 그런 이유다. 게다가 언어가 되는 누나 덕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수월하게 다닐 수 있었다. Thanks for your help! (= Muido Obrigada!)
그리고 여행기간 중 발견한 한가지는 먼가 신경써서 이야기 할때의 나는 하나의 토시의 뤼앙스까지 잘 전달하려고 하는 "부가설명"맨이 되지만, 보통 신경써서 이야기 하지 않을때는 생략이 많다는 점이다. 에이 이정도의 흐름은 알겠지. 아~니죠! 좀더 친절한 민철씨가 되어야 겠는걸. 명색이 사용자 인터페이스 관련 일을 했는데 말이야 ㅋㅋ
자,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헨형.
새벽을 꼬박 새고난 다음 돌아온 옥스포드. 반갑다 "The works" 세비아의 먼지공사에 괴롭다가 옥스포드에 오니 공기가 깨끗 그자체다. "먼지없는 송파"의 노하우를 세비아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먼지가 많아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스크도 안쓰고 그냥 다닌다는게 신기했다. 먼지 많던데;; 우리나가였으면 왜 요즘 그 코까지 올라오는 우스꽝스러운 마스크를 하고 다녔을텐데.
영국에 다시 돌아온 기점으로 이제 여행은 중반을 치닫고 있었고,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다니고 있었다. 이후 런던으로 가서 폴란드로 날아가면 이번 유럽행에서 기대했던 본격적인 동유럽의 시즌2가 펼쳐진다. 흐흐흐
먼저 들른 곳은 승우네 기숙사. 일단 짐을 풀고 아침을 먹었다. 외지에서 먹는 신라면 대따! 맛난다. ^^
잠깐 자고 일어난 후 이젠 익숙한 시내를 또 돌아다녔다. 먼저 며칠 있었더니 이젠 지리도 빠삭해졌다. 반갑다 빨간버스야~~
사실 다시 돌아와서는 관광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보냈다. 한국들어가는 승우편으로 보낼 부모님께 드릴 옷과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다녔고 장도 봤다. 요아래는 쇼핑센터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의 작은 광장.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막스&스펜서에서 구입한 옷을 어머니가 아주우 마음에 들어하셨다. 이 자리를 빌어 "물건"을 전해준 승우군에게 감사의 말씀~ 딩동댕!
이 동네의 저녁소리와 바람냄새를 찬찬히 맡을 수 있던 날이었다.
승우와 들른 Old school이라는 펍에서 우연히 옆자리의 할아버지와 말을 트게 되었다.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부를 멈추면 안된다던, 무릎 관절염을 앓던 할아버지는 자신이 쓰고 있는 논문을 자랑스레 보여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옥스포드 내의 스테인글라스에 대한 연구를 한다던 할아버지는 뜬금없이 "스트레스 바스터"(고스트 바스터의 바스터를 생각하면 된다 ㅋ)라는 세가지 운동을 가르쳐 주셨다. 흥미진진하게 우리는 그 "배워봅시다"시간을 일어나서 몸소 체험했었다. 흐흐
높임말이 따로 없는 언어사회에서 이렇게 다른 연령대가 편하게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고나 할까. 물론 사회변화에 따라서 이곳에서도 세대차이라는 것은 존재하겠지만 언어의 특성상 소통의 단절이 덜 일어나는 현상이 사실 더 바람직해 보이긴 했다. 물론 어린넘이 어르신에게 이름부르는 건 나로선 상상이 안되지만 말이다. ^^; 사실 언어의 특성도 특성이지만, 전통이 오래되고 그 오랜 전통안에서 변화가 적은 사회라서, 연령대의 차이마저도 동시대로 인정이 너그럽게 되는 그런 요인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암튼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울릴 수 있고 그래서 터득할 수 있는 간접적인 지혜가 많다는 뜻에서 보면 부러운 점이다.
또 한가지 느낀건, 환경이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personality는 정말 대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고싶은 것을 능동적으로 하면서 인생을 길게 산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 할아버지는 논문을 네부인쇄해서 하나는 도서관에, 하나는 (가물~), 하나는 가족에게 그리고 마지막은 자신이 보관한다고 했다. 이것 저것 자신에 관해서 소위 자랑일수도 있는 이야기 꺼리들을 늘어놓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부담스럽지도 않고 그냥 마음이 편해지는게, 스스로에 대한 겸손만이 미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만남이었다.
다음날도 시내 구석구석 다시 돌아보았다. 처칠의 생가를 가려고 했으나 여건상 못가고 시내에서 옥스포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곳에서 유명하다고 승우가 추천해준 Ben's Cookies. 저 할아버지는 아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저 공간에서 생활 하셨을것 같다. Cornmarket Street의 허리쯤에 있는 동쪽건물 실내에 위치한 시장에 있음. 여기 대박 맛있다. 으하하
승우가 잠시 통화중인 동안 길거리에서 털레털레 들고 혼자 많이 먹어버려서 좀 미안했다 크하.
Cornmarket Street~
자전거 패닝샷. 이런 일상의 모습이 좋다.
서점에도 잠깐 들르고. (꽃 장식 촌스럽다)
맥주도 마시고 ;)
아는 사람이 와서 보여준, 20파운드짜리 새지폐를 구경하기도 했다. 돈에 빤딱이 다는 것이 요즘 화폐의 트렌드~
담배는 만원~
그렇게 일상적인 하루는 보내고 들어오는 길. 이제 이 컬리지의 기숙사를 걸어들어오는 것이 마지막이어서 그런지 아쉬움이 묻어난다.
다음날 떠날채비를 하고 짐을 끌고 나왔다. 잘잤어~ 숙사야~~
스테인글라스 할아버지를 만났던 올드 스쿨바. 터미널 바로 옆에 있다.
터미널의 출구표시. 한국어는 왜! 없냐고! (저렇게 많은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살짝 부러운 일이다.)
자, 드디어 런던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다행히도 지독하게 맑은 날의 선명한 날들만을 보여준 옥스포드와 친한 녀석의 자리잡고 있는 생활터전을 구경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녀석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던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도시중 하나이다. Thanks 양면~
런던으로 가는 이층버스의 제일 앞자리에 신나하면서 촌스럽게 자리잡았다. 통로 건너편 앞자리에는 온몸에 문신을한 젊은이가 앉아서 씨익 웃어줬다.
Goodbye Oxford,
런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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