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 4 ARTICLE FOUND

  1. 2007/08/31 2007유럽여행 시즌2. 모스타르 (2)
  2. 2007/08/31 2007유럽여행 시즌2. 사라예보 (2)
  3. 2007/04/01 GoToEurope - Mostar
  4. 2007/03/28 GoToEurope - Sarajebo (4)


유럽을 떠나기 전에, 동유럽 관련 영국에서 론리플레닛을 산것을 제외하고 두권의 책을 가져갔었다. 하나는 루마니아 헝가리 등을 둘러본 일본서를 번역한 일러스트 위주의 여행서와 나머지 하나는 '예술의 도시'라는 기행문 형식의 여행서였다. 이 예술의 도시라는 책에 모스타르라는 낯선 도시를 보고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발칸반도의 리틀 터키라고 불리운다는 이곳은 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했고 상징적인 스타리 모스트라는 다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마침 론리플레닛에 사라예보에서 모스타르로 가는 기차길이 멋지다고 추천해 놓아서 아침일찍 기차를 타고 모스타르로 나섰다.

이른 아침의 객차에는 한동안 나밖에 없었다. 대략 직선거리로 70Km 정도 되는 거리를 기차로 두시간 반이나 가야한다고 해서 기차가 아주 낡아서 그럴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것 보다도 길 자체가 험해서 천천히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험한 돌산에 기차길을 건설한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바깥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출발하고나서 얼마후부터 기차는 산 능선을 따라 가면서 아래로 많은 시골마을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낯설고도 친근한 이런 마을의 모습은 난데없이 마음이 설레일 지경이었다. 날이 흐려서 사진으로 그대로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웠음.




기차는 초반 한시간 넘게 높은 산의 중턱을 달렸다. 막히면 뚫고, 높으면 다리를 놓고 그렇게 한시간 가량 가면서 드문드문 시골역에 정차하였다.







어느 역에서 보았던 전쟁중 망가진 객차.




후반 한시간 가량은 옆에 강을 끼고 산아래쪽으로 달렸다. 달리면서 정말 3초마다 터널이 나타나거나, 그 터널안에서 3초만 머무르는 경우가 부지기 수일 정도로, 모스타르로 가는 길에 많은 터널이 크지 않은 뾰족한 돌산을 뚫고 있었다. 강건너 산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모스타르 도착!
아싸 비온다. 동유럽 가는 곳마다 tourist information에서 하는 말이, "이상해요, 3월말에 이렇게 비가 다 오네요..." 아- 나는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더냐?!

택시 요금을 바가지 쓰고 기차역에서 스타리 모스트가 있는 다리로 내려왔다. 이 다리를 중심으로 근처에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론리플레닛에 있던 여행사에 들어가서 숙소정보를 얻었다.
이곳의 첫인상은.. 음, 너무 "예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 하다!"




사실 숙소를 잡을 계획은 아니었는데,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고민하다가 하루 머물다가 가기로 했다. 여행사 아주머니도 '에이 우리동네서 하루 자고가요~' 그런다;;

암튼 private room으로 널찍한 곳을 저렴하게 빌렸다. 주인장에게 포크와 냄비를 빌려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불이 느무느무 약해서 느무느무 뜨뜨미지근한 라면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암튼 밥을 먹고 나와보니, 억수같던 빗줄기가 개어있다. 일단 스타리 모스트 다리로 나갔다.




이곳 구도심의 건물들은 밝은 파스텔 톤의 돌로 장식이 되어 있어서 건물들이 생기있어 보였고, 돌길 또한 아담하고 예뻤다. 생각보다 인상적인 건물들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비가 그치자 관광객이 하나둘 보이다가 우르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다리 양쪽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관광지를 제외한 다리 양쪽의 건물이나 사람들의 모습들이 사뭇 달랐다.




사실 이 모스타르도 보스니아 내전시 격전지중 하나였다. 초록색의 네레트바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눠야 했던 이곳에서, 스타리 모스트라는 이 다리가 주는 의미는 색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었다. 한쪽은 이슬람 사람들이, 다른 한쪽은 크로아티아계 카톨릭을 믿는 사람들과 세르비안계가 살고 있었던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계가 일으킨 내전에서 크로아티아 카톨릭계도 이슬람의 반대편에 서서 싸우게 된다. 아직도 다리의 양쪽에는 양 종교의 상징적인 높은 첨탑이 그때의 대치 형국을 보여주는 듯 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울려퍼지는 코란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말이다.





정말 가파른 어느 계단;; 저 느낌표가 클만 하다.




관광지를 조금 벗어나자, 사라예보보다 훨씬 더딘 재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그저 말을 아끼고 싶은 사진들이다.









"the WAR"..


그래도, 봄은 오고 저렇게 새순도 난다.
동유럽을 돌아다니며 늦은 겨울을 길게 겪다보니 봄이 오는 소식을 깜박할뻔했다. ^.^;




현재 이 모스타르는 너무 작고 예쁜도시다. 관광객이 많이 들어서 부자 도시 되었으면 좋겠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니, 시끄러운 소리가 윗층 주인집에서 들린다. 한참을 참고 들으니, 아 글쎄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소리더라. 아까 밖에서 길을 물어보는데 왜 성을 내지??라고 생각했던 궁금증이 이제사 해소 되었다. 원래든 아니면 그 이후가 되었던, 사람들이 조금 호전적이다.

소화 시킬겸 야경을 시그마 30.4로 찍으니 불빛이 쩌억 갈라져 나왔다. 호호호






이 예쁜 동네는 다음번에 누군가와 같이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가 화사해진 초여름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저 스타리 모스트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맛난 와인을 곁들인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방에 그 흔한 라디에이터도 없다. 추워죽겠다. 코끝이 시렵다. 덜덜덜.


다음날, 나는 그 유명하다던 휴양지! 듀브로브니크로 떠난다.
아 기대기대기대. 그토록 기다려왔던 아드리아 해를 보러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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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짱아 2007/09/17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8도의 경사라니! 엄청난걸-

    + 저 기차길은 꼭 어느 영화속에선가 본듯한 기분이야. 액션 영화 같은데서 ㅋ

    • Favicon of http://www.henbros.com BlogIcon minchul 2007/09/18 0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스타르는 참한 분위기의 조그마한 도시더라.
      바닥에 깔린돌이고 건물을 지은 돌이고 돌들이 얼마나 빛깔이 좋던지.

      저 기차길을 자그마치 론리플레닛 추천 코스라네~!





여행을 출발할 당시 나는 모든 루트를 정하지 않았었다. 사실 일러스트가 멋진 어느 일본 여행서에 나온대로, 아마도 폴란드에서 슬로바키아로 내려와서 헝가리를 지나 루마니아까지 들어가겠거니.. 운이 좋으면 불가리아 까지 한번 들어가 보자.. 이런 심산으로 처음에는 유럽 여행길에 올랐었다. 하지만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의 유대인 지구를 둘러본 영향때문인지, 루마니아의 예쁜 건물이 있는 브라쇼보 같은 곳보다 최근 복잡한 역사를 지닌 구 유고연방의 여러곳을 둘러보고 싶어졌었다. 그래서 어느날 버스에서 잠을 깨어보니, 아침 7시의 사라예보에 있더라.
결국은 궂은 날씨과 무거운 공기로 휴양지 쪽으로 들렀다가 독일로 비교적 일찍 올라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사라예보 - 모스타르 - 듀브로브니크를 지나서 동유럽의 지속적으로 오는 비에 안되겠다 싶어서, 비행기를 타러 스플릿으로 와서 독일로 와버리게 된다. 웃긴건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나니 듀브로브니크 둘째날에서부터 날씨가 좋아졌다. 교통편이 조금 어렵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세르비아, 코소보 지역과 몬테네그로를 향해 꿋꿋하게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사라예보. 나 어릴적 세계사를 배울때만해도 '유고 연방'란 이름이 익숙했던 곳. 대학교 언저리의 TV뉴스에 '보스니아 내전'으로 이름을 기억했던 곳. 1차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되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이 벌어진 '사라예보'. 세계 정세를 논할때 '불안'한 지역으로 꼽았었던 '발칸 반도'의 한 중심에 난 서 있었다.


이곳에 읽어볼만한 글이 있다. 필요한 내용을 발췌해보면,
...
한 국가 울타리 안에서 살던 사람들이 상대에게 무서운 증오심을 품고 끔찍한 폭력을 자행했던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앞에서 보았던 몇몇 국가들의 독립선포였다. 옛 유고 연방은 3개의 언어, 3개의 종교 그리고 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였다. 여러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수백년간 지속된 민족, 종교 갈등이 마침내 폭발한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포하자 세르비아 공화국 주도의 유고 연방군이 침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유고 내전 초기에는 세르비아 공화국과 나머지 공화국의 전쟁이었지만, 곧 사정이 달라진다. 각 공화국 내의 세르비아계가 독립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문자 그대로의 내전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독립을 선언한 대부분의 공화국은 내부로부터의 전화에 휩싸이게 된다.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포하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세르비아 공화국의 지원을 받는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가 무장 투쟁을 벌이면서 내전 발발 1년만에 보스니아 지역의 70%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한다. 보스니아에서의 내전은 민족 갈등 뿐 아니라 종교 갈등의 측면도 강하다. 이 지역의 인구분포를 보면 그리스 정교를 믿는 크로아티아계가 18% 정도이다. 각 분파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그리고 민족의 이익을 앞세워 극렬하게 맞부닥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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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연방의 해체와 보스니아 혹은 코소보 사태에 대한 글을 검색하면 할 수록 사실 좀 복잡했던 것이 사실이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구 유고연방의 중심에 있던 세르비아 공화국이 일으킨 국가전쟁에서,
각국의 세르비아계가 동조하고 세르비아 공화국이 이를 지원하게 되여 결국 국가내 민족분쟁으로,
또한 이러한 민족 분쟁 가운데에 그동안 쌓여왔던 종교에 대한 분쟁으로 까지 확대된,
아주 비참한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유대인을 모두 잡아들였던 2차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는 세르비아계의 다른 인종에 대한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다. 그의 일환으로 남자는 죽임을 당하고, 낙태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면서 이슬람의 여자를 범하는 대목이 가장 극에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웃긴건, 이 모든것이 불과 10년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사실 낯선 이방인으로서 이곳의 뿌리깊은 갈등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크로아티아-세르비아계, 알바니아계-무슬림.. 등과 같이 나라-인종-종교가 모두 뒤섞인 이 지역에 사람들이 현재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이곳은 아직도 온전히 평화가 정착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평화적이어 보인다고 할지라도, 또다시 그 뿌리깊은 갈등을 내부로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족이 뭐길래, 종교가 뭐길래.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소의'를 저버린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왜 아직 어린 세르비아계 군인이 전쟁중에 다른 종교의 친구에게 총을 쏘아대던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넓은 '대의'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보통, 정도나 등급의 차이로 사람들은 저버릴것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임의로 판단하긴 하지만 말이다.

발칸반도라는 세계의 중심부는 아닌, 비교적 최근의 전쟁은 후에 역사속에서 어떠한 조명을 받고 어떠한 결과로 그려질지 궁금하다. 세르비아 공화국이 전쟁을 시작한 것이지만, 3자의 입장에서 '전쟁'이라는 것에 있어서 이런 다름에서 출발한 전쟁의 선악구분이 참 어려워 지는 것을 느낀다. 그저, 전쟁은 안쓰러운 것이고, 내가 속한 입장이 있는 것일뿐. 탈레반과 항일 광복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뭐 이런 어리석은 질문 말이다. (실제 차이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다.) 답은, 현실속에서는 결코 바뀔수 없는 나의 입장..이란게 있다.. 이겠지?? 그래서 광복군은 좋고, 탈레반은 나쁜가?? 만약, 세상을 아우르는 신이 있고, 그 신이 데려가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공간이 있다면 대체 누굴 데려가야 한단 말이더냐. 이것은 믿음의 여부로 공간을 가르는 특정종교에서보다 훨씬 원초적인 문제다. 바로 공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말이 잘도 샌다;;)

그냥 그만큼 망연자실하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곳이 이곳,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였다.







암튼.

숙소를 잡고 짐을 푼다음 날이 잔뜩 흐린 길을 나섰다. 무슨 홈스테이 같이, 화장실과 샤워실을 쉐어한 그런 private room을 잡았다. 꼬득꼬득한 영어발음을 하던 travel agency 아주머니와 숙소까지 안내를 해주던 이빨 빠진 아저씨가 생각난다. 전후, 이런저런 후유증으로 딱히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니면서 나를 숙소에 데려다 주었다.



이곳은 카톨릭 성당.




이곳은 이슬람 모스크.




최근의 내전으로 인해서인지, 많은 건물의 곳곳이 이렇게 벌집이 된 상태로 그대로 건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의 흔적을 촬영하는 것이 혹시 이곳 사람들이 보기에 상처를 들추는 일이 될까 싶어서,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Latin Bridge. 국립도서관에서 강변을 따라 이곳으로 오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가브릴로라는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한,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시초가 되었던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론리 플레닛에 케밥이 이곳에서 유명하다고 써있었다.




이 곳의 케밥은 내가 알던, (영국에서 먹었던) 터키식의 케밥과 달리, 다진고기를 떡볶이 떡처럼 만들어서 양파를 넣어주는 방식이 제일 많았다. 사실 저거 먹고 나서까지도 금방 저것이 케밥인줄 몰랐다;; 무슨 특산요리 이름이 Cevapi 인가 했네..




시내는 생각보다 좁았다. 구석구석 돌아다녀도 한두시간이면 모든 골목을 구경할 수 있을 법 했다. 시내 가운데에는 낮은 건물의 기념품가게가 줄지어 있었고, 사이사이 모스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도심을 나와서 외곽을 걸어다녀 보기로 했다. 국립 도서관 앞에서 둘러보다가, 길건너의 언덕과 멀~리 보이는 호텔위의 전망대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문득 길을 건너려는데, 도서관 샛긴 건너편에서 히잡을 쓴 여인과 전쟁의 상흔를 한 시야에서 볼 수 있었다.




길을 건너자 사람이 한움큼 사라졌다.
관광객님아~ 요기를 봐요..라고 말해주는 것 보다, 골목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올라갈때는 아무생각없이 올라갔는데, 저 언덕의 끝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깜짝이야.
묘지를 가까운 곳에 두고 산다.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거나, 혹은 죽음이라는 것이 익숙해져서..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언덕을 내려와 시내와는 반대편 길로 한참을 걸었다. 시외각으로 빠져나가는 도로위로 마땅히 인도가 없었다. 아마 사람이 올라가는 길은 따로 있나보다.. 하면서 헥헥.. 오르막길을 올랐다. 오르는 길에 보았던 언덕위의 집들.




저 묘지의 우측 끝에 아까 서성거렸었다.
분홍색 집 한채를 보고, 쉰들러가 보았던 빨간코트의 여자애가 생각났다.




드디어 올랐다~
사실 올라오면 view가 좋을 거라고 내심 기대했었으나, 결과적으로 훨씬 더 많은 공동묘지 place만 찾아버렸다;;




꼬마아이를 데리고 올라온 어느 부인과, 노는 아해들로 보이는 몇몇이 질척거리는 정상위에서 머물고 있었다.




다시 도심길로 내려왔다. 내려오늘 길은 올라왔던 길보다 훨씬 안가파르고 훨씬 가까운;; 길이었다. 모스크의 빈도와 차림새로 보았을때, 이곳의 이슬람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생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무얼 믿는다기 보단, 그 안에서 존재해야되는 이유 자체가 그들의 생활인거다.

내려오는 길에 작은 슈퍼에서 귤4개, 사과1개, 물 1.5리터를 1유로 주고 샀다.




다시 도심으로 내려와서, 근처 호스텔의 바에 가서 인터넷을 잠깐 사용하고, 맥주를 한잔 마셨다. 나오니 그나마 날이 개고 있었다.




다시한번 시내구경 고~고~. 이사진 마음에 든다 ㅎㅎ











다음 목적지를 위해 travel agency에 들렀다. 사라예보 교통편 올림.




사라예보에서 모스트르로 가는 기차의 풍경이 좋다는 론리의 말을 믿고, 모스타르..라는 낯선곳으로 다음날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건물은 내 숙소건물.
목적을 가지고 발사된 총에는 맞힐 대상이 있었다는 말이다. 총알 구멍 앞에 멍하니 서있다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나뭇가지에 잎이 몇번 나왔다 떨어져 갈수록, 그 총알 구멍의 깊이도 얕아지겠지. 나같은 관광객이 폐허와 같은 건물을 보고 쓴웃음으로 지나칠때, 이곳 사람들은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재건에 온힘을 쏟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역설적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이 날밤, 독주를 한잔 마시고 잤다. 그 왜, 슬로바키아 군인이 가르쳐 준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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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짱아 2007/09/17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쿠! 여기도 총을 비롯해서 금지되는 것들이 많네-

    일본도 규슈지방 쪽엔 묘지가 시내 곳곳에 있던데, 가족이였던 가까운 사람들이라 오히려 잘 보살펴줘야해서 근처에 묘지를 마련한다더라구.
    멀면 잘 안 찾게되고 그건 가족의 도리가 아니라면서,, 그 말 듣고보니 그것도 맞는 말인듯 싶더라구-

    • Favicon of http://www.henbros.com BlogIcon minchul 2007/09/18 0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묘지를 볼때마가 가슴이 아팠던게,
      묘지가 전부 새거였다는거.
      1993년 이후 몇년동안의 년도가 묘비에 많이 새겨져 있더라.

      우리나라야 전설의 고향에서 많이 봐서 그렇지,
      가까이 모시고 기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함.



GoToEurope - Mostar

travEl 2007/04/01 18:31
Here is Mostar in Bosnia Hercegovina.

People say This brige has meaning to connect both Croats and Muslims who fought with each other from 1992 to 1995.




"Don't forget", but it's now a beautiful c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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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oEurope - Sarajebo

travEl 2007/03/28 23:10

여기는 사라예보입니다.
10여년이 지나도, 관광객이 많아도 이곳은 웬지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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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는이 2007/04/04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아래 사진 멋져요. 왠지 마음을 울리는...

  2. 2007/04/22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www.henbros.com BlogIcon minchul 2007/04/26 0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망원렌즈가 있었으면 훨씬 사람들과 밀착하여 촬영할 수 있었을텐데 많이 아쉬웠어요;; 카드만 중간에 안잃어버렸어도 현지에서 지르는건데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