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 7시 조금 넘어 일어나서, 부랴부랴 셔츠에 정장 바지를 챙겨입고 아침 찬바람을 맞으면서 둔촌동 집으로 왔다. 부지런히 걸어나오다가 오랜만에 신는 바닥이 매끈한 구두 덕에 질펀한 바닥에 슬라이딩 할 뻔했다. 휴~
2.
둔촌동에 도착, 어머니가 끓여주신 떡국을 맛나게 해치웠다. 신정때 끓이신 왠지 낯선 맛의 떡국에 조금 마음이 쓰였는데, 이번에는 기가차게 맛나게 끓여주셨다. 뽀얀 떡국의 하얀색, 노란색 고명은 뽀인뜨~. 편찮으셨던 이후로 간혹 음식 간을 잘 못보셨었는데, 다행이도.. 오늘 떡국 쵝오!
3.
과일 몇가지와 돗자리를 챙겨들고 성묘길에 올랐다.
서울 외곽순환도로가 완전히 뚫린 뒤로, 아버지의 고향에 가는 길이 한결 빨라졌다. 불암산 터널을 지날때는 "여기 불암산이야~"라고 흉내내는 떡메 목소리가 떠올랐고, 사폐산 터널을 지날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사폐산 터널 진짜 오지게 길다.
4.
사폐산 터널을 나올때쯤 눈발이 날리다가, 이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햇살이 훤하다. 눈은 쌓이지 않고, 참 밝았으며 기분은 평온해 졌다. 한동안 자동차의 브러쉬질을 하지 않은 촉촉한 전면을 누리며 운전해 갔다.
5.
성묘를 드리러 산에 올라 절을 드리는 순간 최고로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펑펑 내리는 와중에 아버지와 돗자리에 앉아서, 감을 한조각 깍아 먹으면서 조상님들께 드리고 남았던 술을 한 잔씩 나눠서 음복하였다. 산을 내려오는 길, 마른 나무가지에 풍성히 내려앉은 눈 나무 터널을 먼저 내려가시는 아버지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무거운 사진기는 꼭 필요할 때는 없다.
6.
아버지가 고향 친구분을 만나시는 사이, 난 새해맞아 혼자 싸우나로 고고씽~. XX랜드라는 이름이 십리 밖에서도 보일 법한 시골에 들어온 이마트 같은 거대 사우나였다. 소금 뭐시기 옥 싸우나 완전 뜨거워서 3분만에 얼굴이 벌개져서 나왔다. 아.. 뜨거.
아싸아 땀 쪽~. 뭐냐 그럼에도 그새 살찐거냐. 언젠가 꿈에 담배를 끊고 얼굴이 동그랗게 부어올라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가는 꿈을 꾼적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7.
아버지 친구분께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시는 걸, 어머니가 저녁준비 하신다면서 정중히 사양했더니, 언제까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을게냐고 한 소리 들었다. 끙.
8.
돌아오는 길.. 아하. 명절 전날에 이렇게 움직이면 길이 하!나!도! 막히지 않는 구나.
9.
집앞서 장을 보면서 담배를 한갑 샀다. 항상 담배를 살 때는 '원 초록색 주세요'라고 하는데, 대부분 원 파란색을 내민다. 처음 이것을 인지한 이후로 얼마나 사람들이 초록색, 푸른색, 파란색을 실제 언어를 통해서 혼동하는지 궁금해서 계속 "초록색 주세요"라고 물어본다.
실제 초록색의 신호등을 파란 신호등이라고 하는 것과, 푸른하늘(파랑)과 푸른산(초록)의 색의 혼용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해서 검색해 보았다.
10.
어머니가 저녁을 푸짐히 차려주셨다. 나? 무지하게 맛나게 많이도 먹었다. 뭐 그렇다. 난 철없는 아해..(흠흠. 아저씨)다.
11.
테라스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태우며 바깥을 내다보는데, 멀리 두꺼운 코트를 입은 여자분이 추운날 씩씩하게도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내 손에 들려진 담배와 촐랑촐랑대는 여자분의 묶은 머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12.
천추태후라는 대하드라마를 보았다. 다음회를 볼 기회는 없겠지만;; 오, 생각보다 재미있다. 근데 마지막에 채시라가 드라마에 첫 등장하면서 힘차게 활을 쏘던 모습.. 뭔가 힘이 들어가 있어서 허전해 보였다.
13.
그 뒤에 보았던 오늘의 하일라이트.
"여든아홉, 그녀의 바다"
울릉도의 여든 아홉 잡순 해녀 할머니 이야기. 유쾌한 터치로 그려냈지만, 그만큼 유쾌하지만은 않은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다큐였다. 목소리도 카랑카랑 하시지만, 뭍에서는 영락없는 등이 굽으신 할머니이신 분이 바다에서 그리도 자유로워 보였다. 자신의 영달을 위할 것도 없는 할머니의 매일같은 '물질'은 관성에 따른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끔 버거워도 보이는 할머니는 나완 너무도 다른 패러다임 속에 행복해 보였다.
난 또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서른 넷, 너의 바다는 어디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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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넷. 너의 바다는 어디더냐. 멋진 말이군.
과연 나의 바다는 어디인지 한 동안 생각해 봐야겠다.
저 다큐를 본 이후로 많은 불평불만을 접고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다. 궁시렁대며 바닷가 뭍에서 얼쩡얼쩡 앉아서 바다 안을 난 다 알아. 라고 말해봤자 나에게 도움이 되는게 없는거 같더라. 지금 생각은 이것 저것 따져보지 않고 한동안 닥치고 열심이다 보면, 그게 내 바다가 될 것도 같다.
씨디로 궈서 독일로 보내주고 싶고나. 저 다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