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티슬라바에서 깨끗한 기차를 타고 한시간 남짓 달려서 빈의 남부역에 도착했다. 원래 크로아티아를 가는 기차가 빈에서 출발해서 브라티슬라바에서 이곳으로 왔지만, 열차시간 미스로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로 가는 기차가 오전 5시 넘어서 있는 한대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결국 당일 이동은 포기하고 하루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남부역 tourist information의 퉁퉁한 아저씨는 참 불친절했다. 숙소정보를 물어보니 아무말 없이 손가락으로 브로셔가 있는 곳을 까딱-하고 가리켰다. 내 다음차례의 백인에게 친절했던 것을 보고 컴플레인을 할까 하다가 참았다. 동양인을 뭘로보는 거냐?! 음. 흥분했다. 암튼, 다음날 일찍 나오려면 남부역 근처의 숙소를 잡아야 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도통 만만하게 가볼 만한 곳이 없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결국 서역 근처의 한인민박행.

빈은 미리 준비해간 자료도 없고, 사실 계획에 없던 도시라 무얼 둘러봐야 할지 몰랐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과 음악회가 유명한 이곳. 일단 짐을 내려놓고, 숙소에서 받은 지도하나 달랑 들고 길을 나섰다. 부다페스트에 이어 날씨는 맑아서 그래도 다니기가 좋았다.

서역에 있던 샌드위치 가게. 메뉴가 뭔지는 모르지만 하나 집어먹고선 맛나서 으하하하 거리면서 나중에 한번 더 사먹었다.






부랴부랴 했던 웹검색에서 봤던 코스를 걷기로 하고 시청청사 건물로 지하철을 타고 나갔다.
센스 반점의 흡연 벌금광고.




큰 길가에서 시청을 관통해서 뒷쪽으로 나갔다.






와, 이것이 그 유명하다던 시청건물. 건물은 완전 멋있었지만, 이젠 슬슬 옛스런 건물에 감흥이 덜해간다.




여행중에 시기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풍성한 나무의 모습을 담지 못한 거였다. 여름이 되어 뭉글뭉글 거리는 나무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이 길을 걷으면, 같은 길이어도 또 다른 기분을 선사해 줄것 같았다.




길을 내려와 호프부르크 왕궁에 도달했다.
역동적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크게 느껴졌던 카를4세의 기마상 앞에서 꽤 한참을 머물렀다.






슈테판 성당을 보기 위해서, 헬덴 광장을 돌아나온 곳으로 계속 걸어갔다. 빈의 왕궁을 비롯한 건축들은 부다페스트의 그것들 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길도 널찍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이 합스부르크 왕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왕가의 대표하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그 막내딸 마리 앙뜨와네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얼추 상당히 번화한데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인지를 잘 모르겠네... 싶었던 영화는 거의 이 합스부르크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찍었더라.




신왕궁의 이 조각상의 사실적인 묘사는 좀 섬뜩했다.




암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슈테판 성당으로 가는 번화가에는 역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사람들을 사이로 한낮의 산책을 즐기던 중, 'Bitte foto~"라고 외치는 귀여운 여자아이 두명을 찍어줬다. ^.^

 


슈테판 성당. 헉. 생각했던 것보다 웅장하고 장식이 화려했다.






성당 입구 기준 좌측의 첨탑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랐다. 생각보다 빈은 크고, 생각보다 빈은 작은 도시 모습을 보여주었다. 뭐랄까, 역사는 위대했고, 현재는 아기자기 하다고나 할까??






내려오면서 성당안에서 초를 하나 구입하여 불을 붙여놓고 돌아섰다. 그때 소원을 빌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게 되어버렸다.
음. 아쉽게 되어버린 기원이 잦아질 수록 소원을 비는 마음이 조금 덜 경건해져 가지만서도, 대략 10년전 어느 밤 묵묵히 떠올렸던, 욕심도 많은 내 다섯가지 소원 중, 세개나 이루어졌었던 기억 하나 만으로(나머지 두개 중 하나는 노력중이고, 하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이후 트레비 분수 이런데서도 동전 꼭 던진다. ;) 나는 여전히 '소원을 빈다'는 것은, 쉬이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과도 같은 내안의 공간에, 특정 사건에 대하여 언젠가는 발현될 능동성을 심어놓는 것이라고 믿는다.



오른쪽이 내꺼!




오페라 극장. 건물을 못나게 지었다고 해서 건축가가 자살을 할 정도 매도 당하던 건물이 예전 빈의 유적들이 소실되었을 당시 복원 1순위로 뽑혔다는 아이러니 함을 간직한 건물이다.




이런 친절한 시스템을 우리의 거리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빈에 왔으니, 비엔나 커피 한잔!




날은 저물기 시작했고,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우연히 비어있는 가족실에 짐을 옮겨 혼자 머물수 있었다. 나이스!

사실 처음에 빈에 머무르게 되면서, 5년전 머물렀던 짤쯔부르크가 생각났었다. 다정다감했던 건물들과 그 아담했던 도시의 분위기를 생각했으나, 빈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있었다. ^.^;; 빈은 부다페스트와 닮았으며, 그 권력 또한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이 두 도시가 20세기 격동의 시간을 거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웹검색을 해보니, 빈 또한 야경이 멋있던데. 해가 진 직후쯤 숙소에 도착해서 다음 일정을 짜느라 다시 못나가본 것이 아쉽다. 숙소아저씨가 크로아티아로의 이동에 있어서 기차보다는 버스를 추천해 주었다. 실제 가격도 Euroline이 기차의 반값이었다. 사촌형네서 생각보다 더 머물고, 빈에서도 하루 머물게 되어 일정이 빠듯할 것 같았던 난 고민 끝에 자그레브가 아닌 훨씬 남쪽의 사라예보로 바로 직행 하기로 결정했다. 부랴부랴 자그레브의 민박집에 보내놓은 메일을 취소하고 사라예보로 가는 무려 13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온라인으로 예약하려 했으나 잘 안되서 다음날 그냥 오프라인으로 가서 사기로 했다.

늦은밤 한참 웹질중인 내 옆으로 술파티가 벌어졌다. 한국민박의 요즘 트렌드인 듯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재미 또한 이들에게는 여행의 재미인 듯 했다. 실제로도 이들에게 들어보니 여행을 다니는 동안만 커플이 되거나, 혹은 그냥 숫자맞추어서 동행하거나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듯 했다. 한잔 하시라고 참하게 권하는데 웬지 안끼면 왕따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열살은 어려보이는 친구들 사이로 잔을 들고 앉았다. 실제로 아래 사진 속의 친구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즘의 유럽여행은 굳이 남녀관계를 떠나서도 여러종류의 일탈이 이루어 지는, 현실위에 떠있는 그런 공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나도 5년전 아무생각없이 유럽에 왔었지.(사실 난 입사로 바빴고, 남들이 세워놓은 계획에 숟가락만 담근 경우긴 했다.) 그때는 차로 다니면서 남들이 못가본 곳을 가보는게 좋았다. 5년전보다 지금의 좀더 나이들어 다니는 내 모습은 어떤가 그냥 잠깐 생각해 봤다. 지금은 낯선도시에 하루이틀 머물면서 겉보기로 사진을 찍고 기억으로 남기는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좀 반성했다. 그러게 여행의 중반을 넘어가면 습관적으로 아무생각없이 돌아다니게만 되는게 못내 아쉬웠나 보다. 그래서 더욱 남들이 덜가본 곳을 빠득빠득 가려고 했나보다.

암튼 어린 친구들과 술한잔 마셨다. 일본 녀석에게 한국 비속어를 가르쳐 주던 한 재미난 친구가 있었다. 늦은밤 군대가기전 마지막 여행이라면서 아쉬움을 달래던 한 친구도 생각난다. 이사람 저사람이 자리를 바꿔가면서 숙소에 있던 사람은 다본것 같다. 처음에 그들이 모두 같이온 일행인줄 알았다. 전날 술먹으면서 친해진거란다 ;)




...

다음날 오전에 지하철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사라예보 행 버스표를 구입하러 나갔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사진정리를 하고 노트북에 이런저런 글을 적은다음, 민박집 홈페이지에 올릴 사진을 찍어 주고는 신라면 4개를 답례로 받아서 좁은 배낭에 챙겨 넣었다.

한시간이나 일찍 남부역 옆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렸으나, 버스 놓칠뻔했다;;; 아무도.. 남부역의 반대편으로 돌아선 외진 주차장에 먼 곳으로 떠나는 버스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짐들고 막판 20분 완젼 쑈했다. 표파는 아가씨는 왜 이상한 곳을 가르쳐준거야;;;

장장 13시간에 걸친 여행. 오스트리아 out - 슬로베니아 in - 슬로베니아 out - 크로아티아 in - 크로아티아 out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in까지 여권꺼내는 재미에 1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하면 믿을사람!!
사라예보에 도착한 것은 폭우가 쏟아지던 오전 7시.




환전을 했다. 저 예쁜 동전 하나면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시내로 들어가려고 짐을 메고 우산을 받쳐들고 나오는데,
버스터미널 맞은 편 건물이 보였다.
그 3층짜리 건물 한켠에 수백발의 총탄 자국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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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짱아 2007/09/17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쿠! 젋음이 좋구만- 부럽다, 저 아이들의 저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