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관련 글이 읽기에 많이;; 긴 것 같아서 짧게 쓰려고 했는데, 카즈메르 지역에 관련된 내용은 길어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지구가 있었던 이곳에서 찍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screen shot과 내가 찍은 사진으로 글을 남겨보려한다. 이곳은 단 하루를 돌아보았지만, 동유럽에서 다른 분쟁이 있었던 지역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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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서 맛나게 차려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사진기와 책을 가지고 나섰다. 이 책은 관련 역사에 관한 시간 순서대로의 설명과 카즈메르 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루트로 구성된 책이었다. 그중 나는 실제 이곳에 남겨진 유대인 지구의 유적들을 돌아다니는 루트3번과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를 돌아보는 루트4번을 중심으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예전에 그 영화를 보았지만 그저 나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역사적인 슬픈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는 것이었고, 이러한 슬픈 사건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으나 사실 실제로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배경이 폴란드 인지도 몰랐었고 그 안에서 순차적으로 벌어졌던 사건의 순서도 사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밖의 것이었다. 전날에 쉰들러 리스트를 다시 본 후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순서대로의 사건에 대하여 읽어 내려간 다음 실제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돌아보았다. 그 영화속의 울부짖음이 마치 70년전의 그들의 울부짖음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을때 때때로 멍해져 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어찌되었건 전쟁이라는 것의 참혹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스필버그의 힘을 빌어 전세계에 publish할 수 있었던 유대인들이 힘이 부러웠고, 우리나라도 역량있는 감독들을 통해서 우리의 힘들었던 20세기초 역사를 세상으로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그러게, 전쟁은 참 슬픈 것이다.




(난 이렇게 깔끔하게 읽기 좋게 편집된 책이 좋다. 책에도 인터페이스가 숨어있다는 사실.)




일단 게토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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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 (Ghetto)
-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역사적으로는 1179년 제3회 라테라노공의회에서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교도와의 교류를 금지한 데서 발단하였다. 1280년 모로코에서 회교도들이 유대인을 분리된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게토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4세기에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자 유대교도에 대한 차별정책은 더욱 심해져 일반적으로 유대인 거주지역은 그리스도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게 되었다. 게토라는 말은 이탈리어이며 어원(語源)은 히브리어 ‘절연장(絶緣狀)’을 뜻하는 ‘get’에 유래한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게토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다른 지역과 분리되어 있었다. 또 그 내부사회는 유대인의 공동체로서 어느 정도의 자치가 허용되었으나, 시민권은 허용되지않았다.

중부 유럽에서는 특히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체코의 프라하 등지의 유대인 거주지역이 전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서 ‘게토’라는 말은 당시까지는 사용되지 않고, 1516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설치된 유대인 거주지역에 처음으로 사용되고 1555년 로마에 게토가 설치된 후 일반화되었다. 18세기 말 이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유대교도 해방과 더불어 이 차별주의는 붕괴되었으나, 러시아·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년 이후에는 나치스 독일이 폴란드 등 그들의 점령지 곳곳에 게토를 설치하고 유대인들을 강제로 수용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바르샤바의 게토는 유명하다. 나치스의 게토는 중세의 게토를 부활시킨 것처럼 보였으나, 인종론(人種論:안티세미티즘)에서 발상한 것이어서, 중세의 게토와는 다르다. 이 유대인 거주지역은 보통 벽이 둘러지고 그 바깥 지역으로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통행이 금지되었으며, 외출할 때는 특정한 모자 또는 두건을 쓰고 윗저고리에는 황색의 표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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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쪽에 오래된 Synagogue(유대인 교회)가 있는 이곳 광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루트를 따라 걸어갔다. 이 Synagogue의 뒷편에는 많은 무덤이 있었고, 벽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벽에 붙여놓은 동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65,000명의 학살된 유대인을 기리는 비문이 있었다.



이 광장은 영화 내에서 필수 근로자를 뽑기 휘하여 유대인들을 줄세워놓고 근로허가증을 발급하던 광장으로 사용된다. 이곳에서 근로 허가증을 받지못한 유대인들은 트럭에 태워져서 어디론가로 끌려간다. 슈탠(쉰들러의 회계사)의 유대인들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루트를 따라 몇군데를 지났고, 전날 보았던 장면중 인상깊었던 장면중의 하나를 촬영한 장소에 이르렀다. Ghetto Liquidation 중인 어느 건물이었는데, 이곳에서 아직 꼬마였던 카포가 자신의 친구 어머니를 숨겨서 살려주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 Ghetto Liquidation : 유대인 지구의 사람들을 플라초프 수용소로 옮겼던 사건을 일컬음. (1943.3.13)
* 카포 : 일종의 독일군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유대인의 자치경찰








코너를 돌자마자, 영화초반 쉰들러가 자신의 회계사 슈텐을 처음으로 찾아가던 건물이 보였다.







바로 비스와강을 건넜다. 영화에서 촬영된 다리는 아니지만, 실제 사진속의 다리를 건너서 1941.3.20일까지 유대인들은 모두 Ghetto 지역으로 이주된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과거 Ghetto 지구였던 곳이 나왔다. 사진에 보이는 길을 가로막으며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입구가 설치되었고, 이 구역의 사방을 둘러싸는 벽이 설치되었다. Getto입구 첫번재.






과거 jewish counsel이었던 건물. 첫번째 Ghetto입구 바로 우측에 있다.




우측편을 따라 낮은 언덕을 물어물어 올라갔다. 물어물어 올라간 공원은 전날의 비로 질척거렸고 멀리 지금은 아무도 드나들것 같지 않은 작은 교회예배당이 언덕을 내려다 보면서 서있었다. 언덕끝을 돌아들어가 옆의 흉칙해 보이는 둥그런 건물 뒷편으로 오스카 쉰들어가 Gthetto liquidation 당시 언덕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장면과 동일한 view를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유대인 Ghetto지역이 한눈에 보인다. 쉰들러는 그곳에서 빨간 옷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이 공간은 마치 폐가 처럼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공간 같았다. 이 공간과, 희뿌연 안개와, 그들의 역사를 써내려간 책자와, 이를 실감나게 그려낸 영화 모두가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다시 언덕을 돌아내려왔다. 가슴아픈 곳을 지났다. 저 철창 너머의 안쪽의 공간에서 여러 단계에 거쳐 병들고 나이든 유대인들을 집합시켜서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플라초프 수용소로 모두 이동했던 Ghetto liquidation이 일어나기도 전 일들이다. 저곳에 모여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동일한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낡은 아파트였다.







이곳이 유대인 Ghetto내에 있던 병원이다. 영화에서는 Liquidation때 환자들이 독일군에게 비참한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직접 독약을 먹였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곳.



이곳은 게토의 다른입구에 위치한 유대인 격리병원 자리.




Bohaterow Getta Square. 유대인 지구의 또다른 입구에 있는 광장에는 덩그라니 빈 의자가 놓여있는 전시물이 있었다. 근처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미 오래 되어버려서인지, 혹은 다른 나라 사람의 역사여서 인지(세계2차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폴란드의 유대인은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 그저 그들의 삶의 한 공간인 이곳은, 지나치는 이곳 폴란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가끔씩 폴란드 사람으로 안 보이는 고등학생 정도의 관광객 무리들이 까르르 대며 지나갔다. 처한 현실은 다른 것인데, 난 왜 자꾸만 저 의자에 시선이 가는지 잘 모르겠다.






이곳을 벗어나, 쉰들러가 공장을 만든 곳을 가보려고 했으나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곳을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실제 이 공장은 현재 다른 공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Ghetto의 세번째 입구를 지났다. 이곳은 플라초프 수용소로 가는 길목이다.




게토를 나오면서 그곳을 둘러싸고 있었던 Ghetto wall의 남아있는 조각을 보러갔다. 이곳은 누군가가 끊임없이 꽃을 걸어두는 듯 이제 막 시들어 보이는 꽃들이 이곳 저곳에 놓여 있었다.




한 20분 남짓 큰 길을 따라, 계속 가면 크라쿠프를 벗어날 것 같은 외곽길을 걸었다. 큰길에서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들어가는 샛길에 작은 간판이라도 하나 있을 것 같았는데 꼭 힘들었던 과거를 애써 숨기려는 듯, 한참을 헤멘 오솔길가 언저리에 저 간판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오던길에 버려진 단층짜리 굴뚝이 있던 건물이 보였고, 영화에서 처럼 뒤로 낮은 언덕이 보였다. 저 간판 옆으로 한사람 정도가 밟고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수풀사이의 오솔길이 나있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갔다. Liquidation이후 게토의 모든 유대인이 수용되었으며, 이곳의 소장 아몬 괴트 소위 등에 의한 노동력 착취와 많은 학살이 이루어 지고, 전쟁 말기에 그동안 학살된 만여구의 시체를 소각 했던, 그곳은 현재 어떠한 건물도 없이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없는 그렇게 버려진 땅처럼 아무렇게나 팽겨처져 있는 듯 했다. 수풀 사이를 걸어들어가면서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옅은 안개에 촉촉한 바닥의 느낌에 일순간 어느 공포영화를 보던 순간 보다 서늘해졌다. 음. 이것은 실제였다.

조금더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그당시 사람들이 뭍힌 비석하나 없는 공동묘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진 두장을 찍고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다시 길가로 나왔을때 이 곳으로 가는 다른 입구에는 학살당한 Unknown들을 위한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 묘비 옆으로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이 건물이, 플라초프 수용소 당시 독일 SS대원들이 유대인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장소였다. 수용소 건물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듯 했다.



빠꼼히 보이는 지하 창문의 창살이 그리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싹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까의 나즈막한 언덕이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에서 플라초프 수용소장인 괴트말고 딱 한명 부하의 이름이 거론된적이 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열차에 쉰들러가 물을 뿌려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쉰들러가 이곳에 도착하자 괴트 소위가 반갑게 맞으면서, 의자를 내어주기 위해서 앞의 앉아있던 부하에게 "Go, Hujar. Move"라는 대사를 한다. 굳이 이 Hujar에 대한 설명도 행적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굳이 이름을 거론한 저의는 바로, 이 사람이 SS대원들 중에 가잔 잔인한 대원으로 알려진 Hujar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학살을 저질르고 시체를 소각했던 바로 그 언덕을 그의 이름을 따서 Hujar Hill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위인의 이름을 따서 지역의 이름을 통용할 터인데, 이 사람은 악명이 높아서 그 이름을 따서 언덕이름을 붙였다니.. 아마도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누군가에 의해서 이름이 붙여진 듯 하다.
영화를 유심히 보면, 스토리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 이 Hujar라는 사람은 가끔씩 주목을 받는 행동을 하는 화면을 보여줄 때가 있다. 스필버그는 하고 싶었던 말을 장장 3시간이 넘는 스토리에도 모두 포함시킬 수 없었을 만큼 할말이 많았던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의 시체를 발굴해서 소각하는 장면에서 분노하며 그 불길더미를 향해 총을 난사하는 Hujar를 잠시 비추어 준다.




플라초프 수용소가 있던 자리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바로 2분정도 다른 쪽으로 걸어나오니 단촐한 아파트와 낮은 건물들이 나왔다. 가판에서 담배를 한갑 사서 꺼내물고 난 후, 길건너 전차 정류장으로 나왔다.

8시간의 카즈메르 지구 걷기를 마치고, 전차를 타고 다시 크로카우 구 도심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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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구도심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여전히 안개는 뿌옇게 서려 있었지만 부슬거리던 비가 멈춰서 다행이었다. Main square의 St. Mary's Church가 꼭 멀찌감치 서있는 것만 같았다. 광장의 동쪽에서 북쪽으로 나있는 길은 쇼핑거리여서 그런지, 사람을 한명도 못마주쳤던 플라초프 수용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광장 중심부 건물. 이 광장의 많은 간판들이 더이상 기존의 '동유럽'의 이미지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맥도널드 역시 사진에서 중심부 건물의 건너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군데의 서점에 들렀다. 주인장이 빌려주었던 카즈메르 관련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꼭 사가지고 가고 싶었으나 여러군데의 서점에 들른 결과 한곳의 폴란드어 버전 말고는 동일한 서적을 구할 수가 없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숙소로 들어와서 또 주인장 부부와 술을 한잔 했다. 그날의 육체적 혹은 그보다 심했던 정신적 피로때문인지 맥주를 자주 들이키게 되었다. 자꾸 플라초프의 그 쓸쓸한 초원이 떠올랐다. 그 심적 먹먹함을 달래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슬로바키아 쪽으로 서둘러 가기로 했다. 론리플레닛에서 국경을 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고, 나는 자코판(폴란드)에서 포프라드(슬로바키아)로 국경을 넘어가기로 정했다. 마침 자코판은 주인장 부부가 추천한 휴양 도시였다. 그곳에는 론리플레닛에 추천이 되어 있을 정도로 멋진 타트라 산맥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주인이 그곳에서 먹어보았던 맛나는 음식을 직접 적어서 주고, 자코판에 대해서 이런 저런 정보도 주었다.
급하게 예약했는데도 친절하게 맞아준 이 분들에게 감사했다. 한인민박은, 2002년도 유럽행을 포함 몇군데 들러보지는 않았지만,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으로 여행을 나와서 굳이 한국사람을 만나러 숙박을 잡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젊은 부부의 아직 오래되지 않은 이 민박은 그래서 오히려 훨씬 편안하고 친근하게 머물렀다가 갈 수 있던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2시가 넘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러 가면서, 문득 이 카즈메르 지역을 둘러본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 먹먹함을 느끼고 가는 것이 나의 삶에 대한 감사와 그들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남겨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행여 유럽을 가는 친구가 폴란드를 들른다면 꼭 크라쿠프의 이 카즈메르 지역을 한번 둘러보기를 권한다. 비록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무겁고, 관광을 하라고 특별히 도통 꾸며놓지도 않은 이곳이 여행자에게 팽팽한 inspiration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게토지역을 돌아보면서 영화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도 사뭇 인상깊은 기억이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다음날도 비가왔지만, 마지막의 크라쿠프를 보기위해서 걸어서 버스터미널로 갔다.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사촌형에게 전화를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연락을 드리고 서둘러 미니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아마 르노차지?? 오래된 이 깜찍한 파란색의 차가 잠깐 가지고 싶었다;;







여름이 되면 풍성하고 아름다운 길 모양새를 선사해줄 것 같은 곳.





자, 이제 자코판이다. 타트라 산맥. 넌 꼭 보고싶다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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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타 2007/08/19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이번 여행기 진짜 멋진걸...
    영화 속의 장면들과 매치되는 사진..
    이런 건 꼭 올블로그로 보내줘야지..

    • Favicon of http://www.henbros.com BlogIcon minchul 2007/08/19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갑자기 올블로그 타령이냐?
      암튼 기억이 잘 안나서 여행기 올리기가 쉽지 않네. 바로바로 올려놓을껄. 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