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아침에 호텔을 나섰다. 밤사이 비가 많이 왔었고, 아침에도 비는 부슬거렸지만 터미널까지 짐을 들고 걸어갔었다. 출발시각 15분전쯤 도착했었는데 벌써 사람들은 모두 버스에 승차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중국에서 버스를 이용할때에는 보통 30분전에 도착해있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항상 일찍 도착해서 모두 승차해 있다가 5~10분전에라도 버스에 승차하려고 하면 약간 눈치를 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무튼 이 버스를 타는데 또 가관이었다. 짐을 실으려고 하자 버스안의 맨 뒷자석에 실으라는 운전사의 말에 가지고 오르는데, 버스에 오르자마자 땀이 비오듯 올정도로 후텁지근 했고, 버스에 오르는 우리 뒤에서는 자기자리에 앉을까봐 큰소리로 외치며 우리 사이를 역동적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버르장머리가 이미 있을만한 나이의 꼬마애 때문에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다. 결정적으로, 버스 맨 뒤의 공간에 짐을 놓으려 근처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이곳에 짐을 놓겠다..고 했더니 자기 손에 든 작은 손가방을 그 꽤 넓은 빈공간의 가운데 턱-하나 놓고선 자리가 없다고 하며 바깥을 바라본다. 우리의 좌석번호가 있는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고, 우리가 비켜달라고 하자 결과적으로 대여섯명이 자리를 reorganize하면서 멀뚱한 시선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미니버스보다는 약간 큰 버스의 좁은 좌석에 짐을 바리바리 놓아놓고 바깥으로 나왔다. 마침 또 버스는 고장이었고, 30분뒤 시꺼먼 매연을 와르르 토해놓고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가는 이 버스는 연신 크락숀을 울려대며 그 좁은 계곡길을 빠른 속도로 달렸고, 맞은편의 계곡의 커브길에서 추월을 하려다 바로 눈앞에서 버스와 여러번 마주치고도 살아남는 운전솜씨를 보여주었다. 다들 카레이서 하세요. 계곡의 굽은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운전자는 흡사 좋지 않은 인프라에서도 성장을 향해 돌진하는 중국인들을 닮았다. 개,소, 닭, 돼지등의 각양각색의 동물과, 동네에서 놀러나와 앉아있는 꼬마아이들과, 큼지막한 낙석들 부지런히 피해서 달렸다. 급회전 급가속 급감속의 4시간 동안 온전한 짐짝이 된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버스 앞쪽에서는 아까 그 버릇없는 아이가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창문도 열어놓지 않은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에어컨도 부실해서 몸이 후텁지근함에 늘러붙는것 같았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그냥 내버려 두자 응?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잖아~" 드디어 let it be로 모토가 바뀌었다.
잠시 멈춰선 휴게소. 또 그냥 떠날까봐 버스근처에서 얼쩡얼쩡댔다. 자연경관 하나는 기똥차다.


중간에 정체가 있어서 4시간 반만에 봉황도착. 버스에서 하차하면서 '통쾌함'을 느꼈다.
택시를 타고 관광지로 갔다.

물어물어 숙소를 잡았다. 들어간 곳은 강남장성'객잔'. 이곳에서는 여관정도의 수준을 객잔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가 좋아보여서 떡메가 참 마음에 들어했다. 방은 약간 꼬질했으나, 방값이 저렴했고 무엇보다 주인장이 좋아서 괜찮았다. 우리는 짐을 놓고 대강 정리한 후 바깥으로 나왔다. 멀리서 보이는 봉황 유원지는 강가로 전통가옥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군데군데 물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그런 곳이었다. 시각적으로 즐거워 보이는 곳은 없었다. 일단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시내쪽으로 걸었다. 그래도 우리는 한국사람들이 잘 못와본 곳을 온거야 그치? 그게 어디야. 떡메야...하는 순간 지나치던 PC방의 "안녕하세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아흑.
괜찮아 보이던 음식점의 2층에 앉아서, 한 두시간 동안 머물렀던 것 같다. 피곤도 했었지만 도무지 더운 바깥에 나가는 것이 내키지를 않았다. 음식은 그래도 맛났고, 백주 한병을 비웠다.

계산하러 내려왔는데 계산대 위에 올려진 이것들을 보고 깜짝 놀랬다. 오오오!

자, 다시 힘내서 관광시작!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 대찬 구경거리 보다는 이런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곳인 것 같았다. 막상 이곳에 오니 마음이 편안한 것이 한참을 걸어다녔다.


지금은 집집마다 에어컨이 달려있지만, 그 옛날 더운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옛날 집들 사이로 빼곡하게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았던 모택동 어록. 문득 사람들이 그때를 그리워 할까, 지금을 더 좋다고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대전 유성에서 장이선 날, 길거리에 앉아계셨던 어느 할머니가 생각났다.

각양각색의 술을 파는 집. 으하하 저거 다 도수 40도 이상이다.

강변 성곽에 올랐다. 이곳에서 일정금액을 내면 8가지 관광포인트를 모두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이 있었지만, 그리 좋아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그냥 돌아다니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장 건졌다.

저런 홍등을 보면 지우펀에서 주렁주렁 달렸던 꼭 그 계단이 생각난다.

강을 건넜다. 그곳은 강 반대편 보다 훨씬 북적이는 곳이었다. 음식과 골동품 등을 파는 골목골목을 돌아 어느 바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까 중국에 와서 노래를 틀어놓고 있는 곳을 가보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중국노래가 아닌 낯선 이국의 노래가 틀어져 나왔고, 떡메는 뮤지션 이름을 물어보았다.

우리에게 장흥과 같은 연인들의 추억의 장소가 바로 여기 봉황인 듯 했다. 실제로 길거리에는 많은 연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예서 글씨체로 예쁘게 적은 어느 한 쪽지가 눈에 띄었다.

이곳의 많은 건물들은 목조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더욱 옛스런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바깥으로는 강 맞은편의 건물들이 보였다. 옆테이블에는 어느 여자가 혼자 책을 읽고 있었고, 나와 떡메는 칭다오 한잔을 주문했다. 여유가 있는 곳이었다.

해가지기전에 더 구경해 보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이제는 모택동은 이런 관광상품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저렇게 건물을 지었다고 했다. 영화 "향수"에 나오는 향수를 판매하고 제조하는 가게가 있던 프랑스의 어느 다리 모습이 떠올랐다.

좁은 골목을 길 가마다 많은 노점상들이 있었고, 가끔씩 그 여자분들은 구성진 가락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곳이 봉황 관광의 핵심포인트라고 했다. 어두워 지면서 하나둘씩 건물에 line을 살려주는 전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체를 비춰주는 조명이 더 좋긴 하지만, 옛스러운 이곳의 약간은 촌스런 조명도 잘 어울어지는 듯 했다.

관광객들이 부산히 지나다니덧 길에서 벗어나 실제 이곳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엿봤다. 집앞으로 공통의 하수구가 있었고, 그것을 건너서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보였다. 하수구의 악취는 심했지만, 이곳의 건물들은 나름대로 운치있었다.

동네사람들끼리 장기두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장기판도 장기알도 커다랗다.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아무런 변형없이 우리와 똑같은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웬지 정겨워 보였다. 옆에는 구경 및 훈수를 두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

해가진 골목을 다시 걸어들어와 관광객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자꾸만 사진에 뭔지 모를 아쉬움이 뭍어난다.

사람은 시원한 밤이 되면서 훨씬 늘어서, 좁은 길은 발디딜틈이 없었다. 늦은 시간이 되자, 강물에 불을 붙여 띄우는 초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소원을 빌어 이곳에 띄운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소원을 빌어 조심스레 강에 띄우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한쪽에서는 그 소원을 큰 소리로 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떠한 시스템의 전형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소원은 클 수록 비싸더라.

"소원을 팝니다."

골동품을 파는 가게에서 이런 가락이 흘러나왔다.
이제 강가를 벗어사 시내쪽으로 향했다. 밤이되니 정말로 번화해 졌다. 큰 대로의 양쪽으로 사람들이 가득가득했다. 쇼핑을 하는 사람들, 재래시장에 가는 사람들, 이곳 관광지를 드나드는 사람들, 사람들. 그 틈사이로 한 어린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뒤에서 찍었다. 나는 그래도 돈을 내밀 수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오자 주인아저씨가 장가게로 다시 돌아가는 차편의 시간을 알아봐 주셨다. 그리고 운남성의 쿤밍에서 대학생이 혼자 왔는데 다음날 장가게를 가니 동행해서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시고선 그 학생을 불러다 주셨다.
같이 통성명을 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벼락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여학생은 대학교 1학년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친구 같았다. 아는 가이드의 패키지 여행에 슬쩍 끼어 단독으로 이동하면서 관광지를 다닐때만 같이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쿤밍이면 사실 이곳에서는 엄청 멀다.(동차조가 없으니 기차로 대략 스무시간 이상을 걸려서 이곳에 왔을듯 하다.) 아마 상해보다도 더 멀듯. 이 친구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앉은 자리에서 대략 세시간 정도는 족히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운남성의 자치구 이야기(중국에는 50여개의 자치구가 있고, 운남성에만 26개의 자치구가 있다.), 쿤밍(운남성의 수도) 도시와 음식 이야기, 전체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영국에서 학교를 마치고 상해에서 회계사를 한다고 했다. 자기 자신도 회계를 전공하며, 나중에 상하이에 가서 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친구도 운남성 자치구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부락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민족말, 운남성 지방 말, 표준어 모두 세가지의 중국어를 한다고 했다. 이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중 몇가지를 이야기 해보면,
운남성에는 "다리를 건너는 쌀국수"라는 이름을 가진 맛나는 쌀국수가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는, 공부하는 남편을 위해 쌀국수를 만들어 다리를 건너 섬으로 매일같이 전해주던 아내가 있었는데, 그 아들이 장난삼아서 닭고기를 그곳에 슬쩍 넣었다고 한다. 아이를 꾸짖고 난다음 그 국수를 전해주러 다리를 건너는데, 오히려 닭에서 나온 기름때문에 국수가 덜 식고 더 맛있게 남편에게 전해주게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여학생은 가오잡힌 목소리로 "다른 곳의 국수는 모두 맛없어요. 운남성의 국수가 제일로 맛있어요!"라고 했다. 흐흐
운남성의 어느 지역에는 "남자의 천국"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 사람들은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으며, 남녀가 서로 좋아하게 되면 야밤에 남자는 여자의 집에 가서 일을 치룰 수 있고, 남자는 그길로 떠날 수 있으며, 아이는 여자의 집에서 기르게 되는 곳이 있다고 했다. 문화의 다름은 참 신기하다.
이 학생은 중국이 땅들을 대만 및 주변 국들에게 너무 많이 내어주어서 중국이 작아졌다고 했다. (말도안돼! 티벳을 독립시켜라!) 음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괜한 논쟁이 싫어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 학생과 이야기 하면서 전체적으로 느낀 점은, 자신의 국가를 지나친 부분까지 자랑스러워 하고 있으며, 한 개인 보다는 전체적인 국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듯했다. plus, 극대화된 중화사상을 보여주었다. 사실 틀렸다고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더더군다나 사람이 많아서인지 개인들의 희생에도 불구한 어떤 성장에의 집착이 느껴졌고 그부분을 느끼게 되는 순간 조금 서늘했다. 중국이 조금더 여유롭게 살 수 있게 되면,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가져갈 수 있는 마인드도 더불어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강인한 자신감을 표출하는 이 여학생은 같은 맥락에서 운남성에 대해서도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 한번 놀러오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이야기 했다. 사실 쿤밍은 가보고 싶은 동네였다. 이번 중국여행이 좀 여러모로 훨씬 "나중"으로 기약을 미루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
아무튼 조금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이런 뚝심있어보이는 젊은이가 일견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긴대화가 반가웠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12시가 넘은 시각 먼저 들어가겠다고 안했으면 밤새 이야기할 참이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셋이서 조우한 다음 동네 포장마차에서 쌀국수를 먹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떡메의 말로는 중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극찬했다. 사천 지방이 가까워서인가 약간 매콤한 쌀국수였다. 버스 시간을 보니 원래 시간의 버스는 자리가 없고, 30분뒤에 작은 버스가 하나더 출발한다고 했다.(원래 시간표에는 없는 버스였다. 다행다행) 우리는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눈 다음 같이 장가계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5시간씩 불편한 버스를 타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래도 장가계로 돌아가는 이 버스는 찬찬히 운전해서 좋았지만, 중간에 고장이 나서 결국 비가 부슬거리는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올 수 밖에 없었다. 가던중 기름냄새가 심하게 나서 결국 차는 멈췄고, 비가 오는 길의 배수로 사이로 기름이 둥둥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시 장가게 도착! 이 아가씨는 우리가 전날 맛나다고 한 운남성이 산지인 담배 한 갑과 이메일 주소를 주었고, 떡메가 답례로 다이어리용 귀여운 스티커 모음을 주었다.

운남성 학생과 빠이빠이를 했다. 사진한장 찍겠다고 했더니 혼자 찍는다고 좀 머쓱해 한다. 당찼던 운남성 아가씨. 떡메야 사진은 보내줬어?? 응??
장가게에서 좀더 머물까 하다가 바로 창사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이 버스는 널찍하고 사람도 적고 편안해서 오는 내내 푹자면서 왔다. 이 날도 우린 도합 열시간이나 버스를 타는 기염을 토했다. ;) 아무튼 장사에서 이틀밤을 자고 나면 이제 상해로 가는 기차를 탈것이고 그 다음 날은 바로 비행기로 서울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여행의 여정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고, 이곳의 여러 경험들도 점차 기억이 되려 하고 있던 찰나,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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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버스를 타는데 또 가관이었다. 짐을 실으려고 하자 버스안의 맨 뒷자석에 실으라는 운전사의 말에 가지고 오르는데, 버스에 오르자마자 땀이 비오듯 올정도로 후텁지근 했고, 버스에 오르는 우리 뒤에서는 자기자리에 앉을까봐 큰소리로 외치며 우리 사이를 역동적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버르장머리가 이미 있을만한 나이의 꼬마애 때문에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다. 결정적으로, 버스 맨 뒤의 공간에 짐을 놓으려 근처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이곳에 짐을 놓겠다..고 했더니 자기 손에 든 작은 손가방을 그 꽤 넓은 빈공간의 가운데 턱-하나 놓고선 자리가 없다고 하며 바깥을 바라본다. 우리의 좌석번호가 있는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고, 우리가 비켜달라고 하자 결과적으로 대여섯명이 자리를 reorganize하면서 멀뚱한 시선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미니버스보다는 약간 큰 버스의 좁은 좌석에 짐을 바리바리 놓아놓고 바깥으로 나왔다. 마침 또 버스는 고장이었고, 30분뒤 시꺼먼 매연을 와르르 토해놓고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가는 이 버스는 연신 크락숀을 울려대며 그 좁은 계곡길을 빠른 속도로 달렸고, 맞은편의 계곡의 커브길에서 추월을 하려다 바로 눈앞에서 버스와 여러번 마주치고도 살아남는 운전솜씨를 보여주었다. 다들 카레이서 하세요. 계곡의 굽은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운전자는 흡사 좋지 않은 인프라에서도 성장을 향해 돌진하는 중국인들을 닮았다. 개,소, 닭, 돼지등의 각양각색의 동물과, 동네에서 놀러나와 앉아있는 꼬마아이들과, 큼지막한 낙석들 부지런히 피해서 달렸다. 급회전 급가속 급감속의 4시간 동안 온전한 짐짝이 된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버스 앞쪽에서는 아까 그 버릇없는 아이가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창문도 열어놓지 않은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에어컨도 부실해서 몸이 후텁지근함에 늘러붙는것 같았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그냥 내버려 두자 응?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잖아~" 드디어 let it be로 모토가 바뀌었다.
잠시 멈춰선 휴게소. 또 그냥 떠날까봐 버스근처에서 얼쩡얼쩡댔다. 자연경관 하나는 기똥차다.
중간에 정체가 있어서 4시간 반만에 봉황도착. 버스에서 하차하면서 '통쾌함'을 느꼈다.
택시를 타고 관광지로 갔다.
물어물어 숙소를 잡았다. 들어간 곳은 강남장성'객잔'. 이곳에서는 여관정도의 수준을 객잔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가 좋아보여서 떡메가 참 마음에 들어했다. 방은 약간 꼬질했으나, 방값이 저렴했고 무엇보다 주인장이 좋아서 괜찮았다. 우리는 짐을 놓고 대강 정리한 후 바깥으로 나왔다. 멀리서 보이는 봉황 유원지는 강가로 전통가옥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군데군데 물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그런 곳이었다. 시각적으로 즐거워 보이는 곳은 없었다. 일단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시내쪽으로 걸었다. 그래도 우리는 한국사람들이 잘 못와본 곳을 온거야 그치? 그게 어디야. 떡메야...하는 순간 지나치던 PC방의 "안녕하세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아흑.
괜찮아 보이던 음식점의 2층에 앉아서, 한 두시간 동안 머물렀던 것 같다. 피곤도 했었지만 도무지 더운 바깥에 나가는 것이 내키지를 않았다. 음식은 그래도 맛났고, 백주 한병을 비웠다.
계산하러 내려왔는데 계산대 위에 올려진 이것들을 보고 깜짝 놀랬다. 오오오!
자, 다시 힘내서 관광시작!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 대찬 구경거리 보다는 이런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곳인 것 같았다. 막상 이곳에 오니 마음이 편안한 것이 한참을 걸어다녔다.
지금은 집집마다 에어컨이 달려있지만, 그 옛날 더운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옛날 집들 사이로 빼곡하게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았던 모택동 어록. 문득 사람들이 그때를 그리워 할까, 지금을 더 좋다고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대전 유성에서 장이선 날, 길거리에 앉아계셨던 어느 할머니가 생각났다.
각양각색의 술을 파는 집. 으하하 저거 다 도수 40도 이상이다.
강변 성곽에 올랐다. 이곳에서 일정금액을 내면 8가지 관광포인트를 모두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이 있었지만, 그리 좋아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그냥 돌아다니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장 건졌다.
저런 홍등을 보면 지우펀에서 주렁주렁 달렸던 꼭 그 계단이 생각난다.
강을 건넜다. 그곳은 강 반대편 보다 훨씬 북적이는 곳이었다. 음식과 골동품 등을 파는 골목골목을 돌아 어느 바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까 중국에 와서 노래를 틀어놓고 있는 곳을 가보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중국노래가 아닌 낯선 이국의 노래가 틀어져 나왔고, 떡메는 뮤지션 이름을 물어보았다.
우리에게 장흥과 같은 연인들의 추억의 장소가 바로 여기 봉황인 듯 했다. 실제로 길거리에는 많은 연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예서 글씨체로 예쁘게 적은 어느 한 쪽지가 눈에 띄었다.
이곳의 많은 건물들은 목조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더욱 옛스런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바깥으로는 강 맞은편의 건물들이 보였다. 옆테이블에는 어느 여자가 혼자 책을 읽고 있었고, 나와 떡메는 칭다오 한잔을 주문했다. 여유가 있는 곳이었다.
해가지기전에 더 구경해 보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이제는 모택동은 이런 관광상품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저렇게 건물을 지었다고 했다. 영화 "향수"에 나오는 향수를 판매하고 제조하는 가게가 있던 프랑스의 어느 다리 모습이 떠올랐다.
좁은 골목을 길 가마다 많은 노점상들이 있었고, 가끔씩 그 여자분들은 구성진 가락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곳이 봉황 관광의 핵심포인트라고 했다. 어두워 지면서 하나둘씩 건물에 line을 살려주는 전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체를 비춰주는 조명이 더 좋긴 하지만, 옛스러운 이곳의 약간은 촌스런 조명도 잘 어울어지는 듯 했다.
관광객들이 부산히 지나다니덧 길에서 벗어나 실제 이곳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엿봤다. 집앞으로 공통의 하수구가 있었고, 그것을 건너서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보였다. 하수구의 악취는 심했지만, 이곳의 건물들은 나름대로 운치있었다.
동네사람들끼리 장기두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장기판도 장기알도 커다랗다.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아무런 변형없이 우리와 똑같은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웬지 정겨워 보였다. 옆에는 구경 및 훈수를 두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
해가진 골목을 다시 걸어들어와 관광객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자꾸만 사진에 뭔지 모를 아쉬움이 뭍어난다.
사람은 시원한 밤이 되면서 훨씬 늘어서, 좁은 길은 발디딜틈이 없었다. 늦은 시간이 되자, 강물에 불을 붙여 띄우는 초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소원을 빌어 이곳에 띄운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소원을 빌어 조심스레 강에 띄우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한쪽에서는 그 소원을 큰 소리로 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떠한 시스템의 전형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소원은 클 수록 비싸더라.
"소원을 팝니다."
골동품을 파는 가게에서 이런 가락이 흘러나왔다.
이제 강가를 벗어사 시내쪽으로 향했다. 밤이되니 정말로 번화해 졌다. 큰 대로의 양쪽으로 사람들이 가득가득했다. 쇼핑을 하는 사람들, 재래시장에 가는 사람들, 이곳 관광지를 드나드는 사람들, 사람들. 그 틈사이로 한 어린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뒤에서 찍었다. 나는 그래도 돈을 내밀 수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오자 주인아저씨가 장가게로 다시 돌아가는 차편의 시간을 알아봐 주셨다. 그리고 운남성의 쿤밍에서 대학생이 혼자 왔는데 다음날 장가게를 가니 동행해서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시고선 그 학생을 불러다 주셨다.
같이 통성명을 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벼락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여학생은 대학교 1학년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친구 같았다. 아는 가이드의 패키지 여행에 슬쩍 끼어 단독으로 이동하면서 관광지를 다닐때만 같이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쿤밍이면 사실 이곳에서는 엄청 멀다.(동차조가 없으니 기차로 대략 스무시간 이상을 걸려서 이곳에 왔을듯 하다.) 아마 상해보다도 더 멀듯. 이 친구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앉은 자리에서 대략 세시간 정도는 족히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운남성의 자치구 이야기(중국에는 50여개의 자치구가 있고, 운남성에만 26개의 자치구가 있다.), 쿤밍(운남성의 수도) 도시와 음식 이야기, 전체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영국에서 학교를 마치고 상해에서 회계사를 한다고 했다. 자기 자신도 회계를 전공하며, 나중에 상하이에 가서 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친구도 운남성 자치구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부락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민족말, 운남성 지방 말, 표준어 모두 세가지의 중국어를 한다고 했다. 이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중 몇가지를 이야기 해보면,
운남성에는 "다리를 건너는 쌀국수"라는 이름을 가진 맛나는 쌀국수가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는, 공부하는 남편을 위해 쌀국수를 만들어 다리를 건너 섬으로 매일같이 전해주던 아내가 있었는데, 그 아들이 장난삼아서 닭고기를 그곳에 슬쩍 넣었다고 한다. 아이를 꾸짖고 난다음 그 국수를 전해주러 다리를 건너는데, 오히려 닭에서 나온 기름때문에 국수가 덜 식고 더 맛있게 남편에게 전해주게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여학생은 가오잡힌 목소리로 "다른 곳의 국수는 모두 맛없어요. 운남성의 국수가 제일로 맛있어요!"라고 했다. 흐흐
운남성의 어느 지역에는 "남자의 천국"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 사람들은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으며, 남녀가 서로 좋아하게 되면 야밤에 남자는 여자의 집에 가서 일을 치룰 수 있고, 남자는 그길로 떠날 수 있으며, 아이는 여자의 집에서 기르게 되는 곳이 있다고 했다. 문화의 다름은 참 신기하다.
이 학생은 중국이 땅들을 대만 및 주변 국들에게 너무 많이 내어주어서 중국이 작아졌다고 했다. (말도안돼! 티벳을 독립시켜라!) 음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괜한 논쟁이 싫어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 학생과 이야기 하면서 전체적으로 느낀 점은, 자신의 국가를 지나친 부분까지 자랑스러워 하고 있으며, 한 개인 보다는 전체적인 국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듯했다. plus, 극대화된 중화사상을 보여주었다. 사실 틀렸다고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더더군다나 사람이 많아서인지 개인들의 희생에도 불구한 어떤 성장에의 집착이 느껴졌고 그부분을 느끼게 되는 순간 조금 서늘했다. 중국이 조금더 여유롭게 살 수 있게 되면,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가져갈 수 있는 마인드도 더불어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강인한 자신감을 표출하는 이 여학생은 같은 맥락에서 운남성에 대해서도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 한번 놀러오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이야기 했다. 사실 쿤밍은 가보고 싶은 동네였다. 이번 중국여행이 좀 여러모로 훨씬 "나중"으로 기약을 미루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
아무튼 조금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이런 뚝심있어보이는 젊은이가 일견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긴대화가 반가웠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12시가 넘은 시각 먼저 들어가겠다고 안했으면 밤새 이야기할 참이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셋이서 조우한 다음 동네 포장마차에서 쌀국수를 먹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떡메의 말로는 중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극찬했다. 사천 지방이 가까워서인가 약간 매콤한 쌀국수였다. 버스 시간을 보니 원래 시간의 버스는 자리가 없고, 30분뒤에 작은 버스가 하나더 출발한다고 했다.(원래 시간표에는 없는 버스였다. 다행다행) 우리는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눈 다음 같이 장가계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5시간씩 불편한 버스를 타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래도 장가계로 돌아가는 이 버스는 찬찬히 운전해서 좋았지만, 중간에 고장이 나서 결국 비가 부슬거리는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올 수 밖에 없었다. 가던중 기름냄새가 심하게 나서 결국 차는 멈췄고, 비가 오는 길의 배수로 사이로 기름이 둥둥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시 장가게 도착! 이 아가씨는 우리가 전날 맛나다고 한 운남성이 산지인 담배 한 갑과 이메일 주소를 주었고, 떡메가 답례로 다이어리용 귀여운 스티커 모음을 주었다.
운남성 학생과 빠이빠이를 했다. 사진한장 찍겠다고 했더니 혼자 찍는다고 좀 머쓱해 한다. 당찼던 운남성 아가씨. 떡메야 사진은 보내줬어?? 응??
장가게에서 좀더 머물까 하다가 바로 창사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이 버스는 널찍하고 사람도 적고 편안해서 오는 내내 푹자면서 왔다. 이 날도 우린 도합 열시간이나 버스를 타는 기염을 토했다. ;) 아무튼 장사에서 이틀밤을 자고 나면 이제 상해로 가는 기차를 탈것이고 그 다음 날은 바로 비행기로 서울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여행의 여정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고, 이곳의 여러 경험들도 점차 기억이 되려 하고 있던 찰나,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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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보내 줬다. 그랬더니 자기 사진 고맙다면서, 운남성 사진을 한 보따리 덧붙인 답장을 보냈더군. -0-;; 어쨌든, 저 날 아침에 먹은 2위앤짜리 쌀국수가 중국에서 먹은 중국 음식 중에 단연 최고였다. =_= 봉황 만세~!
근데 정말이지, 봉황에서마저 "안녕하세요"란 한글 간판 발견한 순간엔 식은땀 무지하게 나더군. ~_~ '나 여태껏 뭐한걸까...' 라는 생각이랑 함께.
보낼때 cc로 나좀 넣어주지 ㅎㅎ 운남성 아가씨 메일 포워딩해죠~
사실 그 쌀국수는 먹을때는 아침이고 정신도 없어서 몰랐는데, 돌아보니 참 맛났던거 같다. 근데 그 쌀국수가 떠오를때면 짠집과 양백원집과 궁보계정집이 번갈아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