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버스 앞자리에서 좋은 날씨에 버스를 타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옥스포드에서 벗어나자 마자, 아직 이른 봄이었음에도 정말 푸르디 푸른 초원을 보여주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의 잔듸는 아직 누렇지 않은가!) 앙상한 나무와 그 반대의 푸른 초원들과 낮은 구릉너머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글거리면서 뛰어올 것 같았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
차는 한시간을 훌쩍 넘겨 북적대는 런던에 도착하였다. 노팅힐을 지나 빅토리아 스테이션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첫번째로 눈에 띄던 녀석을 한장 찍어봤다. 알았다고 멈출께;;

런던의 첫인상은 강했다. 예전 런던에 하룻밤만 (정말 밤에만) 잠깐 머물러 본적은 있지만 비가 부슬거리는 날이어인지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 화창한 날의 런던은 심지어 무채색일지라도 컨트라스트가 강한 색감이 인상적이 었다. 물론 대도시 답게 사람들의 걸음은 무척 빨라 보였다.
아! 길 건너편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뮤지컬이 상영되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오면 한번 봐주마!

지하철은 tube라는 애칭답게 동그란 모양으로 생겼으며 경전철로서 그리 멀지 않은 역사이를 지나던 사람들의 걸음걸이 만큼이나 빠르게 인파를 토해놓고 바로 삼키고는 이동하였다. 특정 지하철 라인의 승강장에 가면, 어디행으로 써놓기 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Northern bound" - "Southern bound"라는 구분 표시였다. 즉 동서남북으로 구분하여 지도상 내가 갈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심플하고 센스있었으나 사실 지도, 적어도 지하철 노선도를 숙지하지 않으면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초보자에겐 낯선 방식이었다. 그리고 신기했던건, 다른 라인의 지하철을 갈아탈때 내린 곳의 바로 맞은편 (즉,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라인의 반대방향으로 가는 전철)에서 바로 갈아타는 곳도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에 굉장히 실제 physical한 선로를 설계할 때 여러 라인을 한번에 설계한 듯 보였으며, 같은 라인의 반대방향이 서로 마주보는 우리나라 지하철 보다는 직관적이지는 않았지만 갈아타느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우리나라의 지하철 보다는 편해 보였다. 뭐랄까. 영국의 지하철은 Effectiveness가 좋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지하철은 Learnability가 좋다고 할까? (그럼 우리나라 지하철은 삼성의 천지인?? 우히. 그렇나 나 UI했었다. ㅎㅎ)
건 그렇고 런던 지하철내 공기 완전 별로다. 한번타면 아이쿠나 콧속이 쌔카맣고나~



The Elephant castle 역의 승우의 지인이 운영하는 곳에 짐을 풀고, 늦은 시간 런던 거리로 나섰다. 빅벤 - 웨스트민스터 사원 - 트라팔가 광장 - 피카디리 서커스 - 소호 - 옥스포드 서커스를 신나게 걸어다녔다. 아이고 다리야.
이 사진에서 승우는 잘 안나왔지만, 빅벤과 지나는 버스와 친구가 잘어울린다. Hello London!
(사진삭제)

웨스트민스터 사원, 이곳 건축물의 디테일이 장난아니다. 그 옛날 대영제국의 영화로운 권력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권력은 어디서부터 창출되서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들었다. 왜 인간은 바벨탑을 쌓으려 하는가. 머 그런;;


트라팔가 광장으로 걸어가는 길. 우연히 그 다음날 보게될 고등학교 후배 두명을 마주치게 되었다. 한 친구는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었고, 한 친구는 미국에서 이친구 보러 놀러왔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사이에서 아는 얼굴이 참 반갑다. ^.^
자 그럼 광장으로 가보자. 어둑한 런던이 운치있다.

가는길에 빠꼼히 보았던 런던아이. 그리 유명할 것도 없지만서도 이름으로 많이 회자되는 걸 보면 관광도 지극히 사업이란 생각이 든다.

자, 2002년에 새벽한시가 넘은 시각. 기어이 런던을 구경하겠다고 버스를 타고 유일하게 나와봤던 트라팔가 광장. 이곳은 변함없지만, 나는 많이도 변했구나. 사실 나는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들고 그 변화를 유럽서 던져주었던 한 친구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한참을 걷다가 힘들어서 들어간 정종집. 런던에서 정종을 먹을 줄이야;; 크하하하. 정종을 마시면서 승우의 전공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나같이 미적지근하게 미래를 그리는 사람에겐 부러운 일이다. 우리 친구들이 좋아하는 학문적 탐구에 대한 지적인 그리움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이 난데 없이 맛난 정종을 마시는 헨형 사진에 페이쏘스가 잔뜩이다. 아마 정종값이 비싸서였으리라;;;; 일본에서는 여름에는 차가운 정종을 네모난 잔에 먹는 다는 것을 부지런해 보이는 일본 주인아저씨가 가르쳐주었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곳에 붙어있던 광고들. 저기서 "러브 액추얼리"에 나왔던, "콜린" - 배낭에 콘돔 잔뜩 싸가지고 미국으로 여행가는 얼빵한 영국 샌드위치 배달원 - 역으로 나왔던 사람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뮤지컬 광고를 지나칠 수 있었다. 아저씨 안웃으니 더 웃겨;; 우히히

간판도 조크를 날린다. AD 932도 조크인것 같다.

런던에 갔으니 그리 좋아하는 빈한 목소리들의 브릿팝을 들어보려고 뮤직바에 가려고 서점에서 론리플레닛을 뒤져서 제일 처음 나오는 곳을 찾아갔더니, 게이바란다. (고 앞에 얼쩡거리던 아저씨가 우리 둘이 들어가면 볼만하겠다고 켁켁 웃는다;;) 아쉬운대로 근처에 시끄러운 rock(보다는 death metal에 가까웠다;;)을 틀어주는 정말 붐비는 바에가서 기네스 한잔을 마셨다. 주문 받는 누님의 눈빛에 힘이 서려있다. 옆에 있는 누님은 키가 나를 훌쩍 넘어보였다. 오. 분위기 좀 무섭다.

사람들. 사진에는 없지만, 이곳에 dark force를 가진 눈빛, 옷차림, 생김새를 한 사람들로 가득가득이었다. 종업원도 손님도 간지가 좔좔좔.. 화장실로 가는 컴컴한 지하1층으로 가는 계단에 서서, 이곳을 내려가면 내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잠깐 걱정이 스쳤다. ^.^

우리도 간지 내보자. 승우 쿨샷~
(사진삭제)
나에겐 언어도 언어지만, 어째 동양인은 많은 낯선 백인들 사이에서는 이방인이 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사람 자체와 잘 섞이지 않으려는 나에겐 인물사진이 별로 없는 것이 쉽게 설명이 되었다. 그뒤로 현지 로컬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이후에는 동유럽을 더욱이 혼자다니면서 숙소를 private room으로 잡아서 더욱 어려웠던거 같다. 담번에는 좀 로컬들과 놀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음. 사라질것 같은 화장실로 가는 지하1층 계단은 없는 곳에서. 으흐흐
다음날, 오늘은 서울서도 별로 가본적 없는;; 동창회 가는날~. 우연히도 런던 체류기간중에 영국내의 고등학교 동문 사람들(및 가족)이 모이는 모임일정이 있어서 여행자로서 참석했다. 의외로 몇몇 아는 사람이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같이 여유있는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2기 선배님의 부인되시는 분이 삼성내에서 의외로 관련이 깊은 부서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어서 슬쩍 반가웠다. 자 동문모임이니 단체사진도 한컷~

3기 선배분의 딸. 아주 생글생글하니 성격이 활달해서 귀여웠다.

모인 곳은 Canary Wharf라는 동네였는데, 새로 생긴 거대한 빌딩들에는 주로 금융관련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고 했다. 일종의 New town이라고 할까. 여유있는 맑은 일요일의 낮 산책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이곳이 Canary Wharf의 건물들. 런던이 헤지 펀드로 유명하지. 이곳에서 일하는 banker들은 음.. 소득 수준이 쫌! 되더라. 부동산 등의 물가가 지천으로 비싼지라 메리트가 감소되기는 하지만 나름 칼퇴근의 그 소득 수준만큼은 부러웠다.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 한장을 건졌다.

일방통행 도로에서의 친절한 영국씨. (사실 일반 도로에도 좌측통행이므로 건널때 우측을 보라는 표식이 많이 눈에 띄었다. "클로져"에서도 나탈리 포트만이 왼쪽보다가 사고나지 않던가 흐흐)

일행들과 헤어져서 런던브리지를 보기위해 템즈강변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장. 나 또 시장에서 사람구경하는거 대따 좋아한다 ^.^

일요일은 사람의 걸음도 느릿하게 만든다.

가는 길에 보았던 일종의 귀신의 집. 줄이 완전 길다. 아이부터 어른까지의 설레는 얼굴이 귀여웠다.

자, 템즈 강변 도착.

어느 건축가가 만들었을 법한 계단위를 아이들이 뛰어논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언제봐도 보기 좋다. 단, 그들이 "꾸애액-"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채광을 위해서 건축 구조를 저렇게 지었다던 유명한 건축물. 이 건물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정작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강변에서 이러고 놀았다;;

저녁에는 낮에 동문모임에서 만났던 숙경이가 자신의 친구의 flat에 초대해서 그곳에 들었다. 가는길에 저 버튼을 누르면 언제 파란불이 켜지는지에 대해서 궁금했었지만, 몇번을 눌러봐도 규칙성이 없어서 그 메커니즘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아는 사람 손??

숙경이도 런던에서 금융관련해서 잠시 일하고 있으며, flat 주인인 친구도 런던에서 뱅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집은 런던의 집답게 아담했으나, 전망이 좋았고 살기 좋아보이는 그런 집이었다. 아마도 런던 중심에서 이 정도면 월세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정말 생각보다도 대단히 비싸다;;) 처음에는 말을 잘 못알아듣겠는 호주계 아시안들이 많아서 좀 지루했으나, 그네들이 우루루 clubbing 나가고, 숙경이의 대만친구들이 나중에 다시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은 퍽 재미있었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우가 처음이었고, 낯선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쫌 재미있어졌다. 머 대화가 아주 원활하지 않아도 말이다 ;)
숙경이의 친구인 이 호주 아저씨(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한살 어린 친구였다.)는 인상도 좋고 예의바르고 낯설어 하는 우리에게 참 잘 대해 주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모임 말미에 이 뱅커 친구는 진지하게 "돈만벌면 뭐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했으나, 그래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 모두 공돌이가 된 친구들에게 주어지는 pay가 떠올려지면서, 그만큼 벌면 보람있게 사세요. 라는 이야기를 건네주고 싶었다. 그러게 누구에게나 각자의 입장과 원하는 바가 다른것임을. 그리고 원하는 것을 이룸은 또다른 원함의 시작이라는 것을.
좋은 시간을 제공해준, 이날의 호스트 숙경이와 뱅커친구에게 땡큐 베리 감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대만아해들은 촛점이 어긋나 배경처리가 되버린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어익후, 나도 얼굴 뒤로 뺄껄;

문제는 그이후였다. 버스는 24시간 한다는 말을 철떡같이 믿고 12시가 넘은 시간에 나왔는데 벌써 일반버스는 다 끊기고 심야버스만이 남아버린 것이데, 택시는 타기 싫고 버스 정류장은 참 어렵게 이곳저곳에 숨어있었다;; 결국은 걷다가 버스타고 걷다가 갈아타고 등등 해서 2시 가까이 들어와 버렸다. 런던 밤바람 진짜 차다;; 그래도 이것도 관광이라고 신나게 걸어다녔네. (사실 그렇게 런던 새벽 거리를 은근~은근~ 걸어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ㅎㅎ)


승우가 밤을 새고 새벽비행기를 타러 나섰다. 안녕~ 나보다 한국음식 먼저 먹는구나 부럽다아~~
다음날 아침, 지하철을 타고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왔다. 지하철 한번 타는데 4파운드다.(1-6존. 난 겨우 1존에서 1존으로 8정거장 가는데 말이다. 티켓 발매기가 고장나서 역무원에게 가장 싼티켓 물어보고 샀는데 뻥친거 아냐.) 1-2존을 웬종일 타는 것이 5.x파운드인데 6존이라지만 한번 타는게 4파운드라니.(6존이라고 그리 먼곳도 아니었다.) 참 이곳은 가격체계가 순진하지 않다. 훨씬 자본주의스럽다. 어떤 재화의 가치라는 것이 그 재화가 가지는 고유의 가치(웬지 원가 같네. ㅋㅋ)에 의해서 결정된다기 보다는 시장에서 화들짝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동네다. 그러니 고속버스도 원웨이 10파운드면 리턴이 11파운드지. 하나사면 하나 더주는 상품도 많고, 이지젯도 시간대에 크리티컬하게 가격이 요동치는 거 보면, 재화의 가치가 아니라 거기에 재화를 사는 시점, 또 꼭 필요한 재화(예를들면 원웨이 티켓) 여부에 따라서 그 가치가 한국에서보다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암튼 8정거장에 4파운드는 드럽게 비싸다는 얘기. 영국은 좀 웃기다. 지들끼리 월급많이 주고, 또 엄청나게 '가격이' 비싼 재화들을 소비하거나 엄청 비싼 월세에 살아야하니 말이다. 개개인이 벌어들이는 수입만큼, 개인이 잘사는 나라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난 수입은 그들보다 적어도 양문형 냉장고가 넉넉히 들어가는 집이 많은 한국이 좋아.(영국서 냉장고 Usability Test를 하는데 큰 냉장고에 대한 니즈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니 니즈도 그렇지만 그래도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UT였는데 부억에 큰 냉장고가 들어갈 공간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도대체 영국에선 다른 나라보다 싼게 없다. 저렴한 것이라면 마크&스펜서 정도 ㅎㅎ
영국의 서비스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자면, 한가지 불만은 내가 비싼 곳을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으례 기대하는 서비스 정신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길거리에서 길을 물어볼때 대답해주는 사람들이 친절하지 절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친절한 경우를 별로 겪어 보질 못했다. 음 역시 싼곳만 다녀서 그런가 ㅋㅋ 이사람들의 서비스는 너무 간결하다. 내가 동양인이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은 별로 안든다. 뭐 그래도 영어로 소통은 되니, 바르셀로나 보단 낫다. 훙.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누구나 다 알겠지만 미국에는 그 옛날 노예계급이었던 흑인들이라면, 영국에서는 대체로 인도인이 낮은 직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속버스는 영국 아저씨가, 조그맣고 허름한 버스는 인도 젊은 사람이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검표원, 허드렛일, 카운터 등등은 거의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이다. 참 그런게 편견이라는 건가보다. 실제 인도인 등의 다른 유색인종들이 내가 런던에서 머물렀던 flat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모여사는 것 같았고, 어떤사람은 그 모여있는 지역이 평이 좋지 않은 곳이라는 말을 한다. (하긴 런던은 노팅힐 뒤쪽의 서북쪽 빼고는 다 그렇다는 말도 있다고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도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일을하고 있다. 사실 그들이 대도시에는 아직 많이 살고 있지 않고, 정말 한정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곳에 자리를 잡은 그들의 자손과, 상희에게 들었던 농촌에서의 혼혈아들이 어떤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시간이 오게되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도 영국이나 미국과 비슷한 현상이 생겨나게 될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말을 제대로 못하는, 황인종보다도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을 그리 존중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이렇게 바깥으로 나와보면 여행객인 나도 비슷한 대접을 받을때가 종종있다고 느껴진다. 어찌보면 이러한 굴레는 역사가 뒤집어지고 반복되어도 벗어날수 없는 사람들의 멘탈러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가치를 어디에 둘지를 몰라서 그런가, 남의 가치를 폄하해서 자신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것 말이다. 본능이라는 것의 또 다른 단면을 본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했다.

아무튼, 조그만 인도인 아저씨가 운전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루통공항으로 향했다. 동유럽을 혼자 간다는 묘한 여운에 싸여 이지젯에 올랐다. 폴란드의 크로카우는 어떤 동네일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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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헨형 유럽가다- 1부를 마칩니다. 석달전 여행기를 쓰기가 쉽지 않네요. 최근에 다녀온 중국 여행기부터 올려야 겠습니다. 언젠가 발리 사진을 보여드릴 날이 오겠죠;;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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